본문 바로가기

회상/호주

127 - 조쉬의 도움

 페어 워크에 신고하려던 것이 무산된 후, 그는 반쯤 포기한 상태가 된다. 일하는 맛도 나지 않고, 몸에 힘이 빠지며 무기력하다. 그깟 돈 포기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생각처럼 그리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포기뿐만이 아니라,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는 무력감과 패배감이 그를 짓누른다. 


 그는 조쉬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주로 조쉬가 이야기하고, 그는 듣는 축에 속했다. 하지만 이 날은, 그가 심적으로 너무 피폐해져 조쉬에게 하소연하듯 이야기한다. 한 카페에서 설거지를 했는데, 돈을 받지 못했고 거의 포기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조쉬는, 고용주에게 전화를 걸라고 말한다. 고용주는 받지 않는다. 조쉬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일을 시작한 지 30분쯤 지났을까, 조쉬는 다시 전화를 걸라고 말한다. 그가 다시 전화를 건다. 고용주가 받는다. 조쉬는 전화를 넘겨달라고 말한다.


 전화를 넘겨받은 조쉬는, 고용주에게 욕을 퍼붓기 시작한다. 그가 기억하는 바에 의하면, 어이 OO씨, 잘 지냈나? 당신이 내 코리안 친구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어. 내가 누구냐고? 나는 코리안 친구의 동료인 조쉬야. 닥치고 당장 돈을 보내지 않으면 험한 꼴을 보게 될 거야. 아니 조용히 하고, 돈을 보내....


 조쉬는 호주 로컬답게, 욕을 제대로 섞어가면서 말한다. 그는 조쉬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본다. 그는 조쉬를 보면서, 희망이 차오르면서 동시에 불안하다. 조쉬가 괜히 고용주의 화를 더 돋우는 게 아닌지, 가만히 있던 고용주가 오히려 이를 계기로 그를 해코지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동시에, 이렇게 하는 조쉬가 부담스럽고 밉다. 조쉬가 오지랖 부리는 것 같다. 조쉬에게 괜히 말했다고 후회한다.


 조쉬는 이후에도 30분, 1시간 간격으로 그에게 전화하라고 이야기한다. 나중에는 아예 전화번호를 달라고 말한다.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조쉬가 시키는 대로 전화번호를 넘긴다. 전화번호를 받은 조쉬는, 그와 일하는 동안 7번이 넘게 고용주에게 전화해서 욕을 한다.



 조쉬는 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의 친구 중 온몸에 문신을 새긴 이가 있는데, 채권추심을 전문으로 하는 친구라고 한다. 만일 이 고용주가 돈을 보내지 않는다면, 자신의 친구에게 이야기해서 해당 카페에 계속 앉아있으라고 부탁할 심산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편이 생겼다는 생각에 든든하지만, 동시에 일을 크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싶어 불안하다. 당시의 그는 이 정도로 정신이 피폐하고 겁에 질려 있다.


 조쉬에게 통화 내용을 물어보니, 고용주는 조쉬에게는 맥을 못 춘다. 그에게는 강간을 하겠다느니 위협하던 고용주가, 조쉬에게는 맥을 못 춘다. 고용주는 그저 조쉬에게, 일이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느니,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느니 하며 징징거린다는 것이다. 고용주는,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전형적인 비겁자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걱정을 거두지 못한다. 고용주는 그에게 전화해서, 왜 멋대로 자신의 번호를 다른 이에게 넘겼느냐고 신고하겠다고 말한다. 그가 모르는 척 잡아떼니, 그에게는 또다시 욕을 하기 시작한다. 조쉬는 그에게,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전화를 받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조쉬가 전화번호를 가져가고 바로 다음날, 그의 계좌에 돈이 입금된다. 약 260불의 금액이다. 주말이었고, 캐주얼이어서 돈을 원래는 더 받아야 하지만 그는 이 정도 금액이라도 받은 것이 다행이다. 그는 액수가 제대로 된 금액인지 학인도 하지 않는다. 그저 돈이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조쉬에게 돈을 받았다며, 그만 전화해도 된다고 이야기한다. 조쉬는 그에게 정말로 돈을 받았느냐고 확인한 뒤, 알겠다고 한다.


 그는 조쉬가 계속해서 인도인 고용주를 자극해서, 그에게 피해가 오지 않을까 걱정할 뿐이다. 하지만 조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도와준 조쉬에게 감사한 마음보다, 불안하고 부담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괜히 일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해가 끼치면 조쉬가 도와줄 수도 없을 텐데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다. 우선 인도인 고용주는 그런 일을 펼칠 만한 배짱이 없었고, 조쉬는 감히 함부로 덤빌 수 없는 강인한 남자다. 그는 겁에 질려 이 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조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조쉬는 다른 현장 일을 시작했고, 그는 다른 일자리를 구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진다. 그의 겁에 질린 정신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와, 조쉬에게 고마움을 느끼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훗날 그가 호주 워킹홀리데이 전체 기간을 다시 돌아보아도, 조쉬만큼 소매를 걷어올리고 나서서 제대로 도와준 이는 없었다. 이 사건을 다시 곱씹고 곱씹을수록, 조쉬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그는 조쉬에게 감사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당시의 자신이 한심스럽고, 조쉬에게는 절절한 고마움을 느낀다.

'회상 > 호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9 - Teppanyaki Restaurant  (0) 2021.08.27
128 - Waitor 면접  (0) 2021.08.27
126 - Fair work  (0) 2021.08.27
125 - I will rape you  (0) 2021.08.27
124 - 낌새  (0) 2021.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