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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187 - 이동 계획

 그는 가족들이 떠났을 때부터, 지역 이동을 꿈꾸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떠나고 일주일도 안 되어 캠리까지 떠나보냈다.

 

 그의 지역 이동을 제한했던 요소는 크게 두 가지, 캠리와 비자다. 열을 받아 김이 나는 캠리는 언제  멈춰버릴지 몰랐고, 얼마 남지 않은 비자 때문에 세컨 비자 관련해서도 결정을 내려야 했다. 캠리는 그의 마음을 읽은 것인지, 때마침 고속도로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멈춰버려서 폐차했다. 심사숙고 끝에, 세컨 비자도 고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의 지역 이동을 제한했던 요소가 모두 사라진다.

 

 

 그의 마음 한구석에 아직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 지역 이동 후에, 얼마 남지 않은 비자로 인해 일을 구하기 쉽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는 긍정적이다. 정 안되면 일용직 한인잡이라고 하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웨이터 일만 하면서 남은 워킹 기간을 보내는 것보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은 그다.

 

 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노트를 꺼내, 깨끗한 새 페이지를 펼친다. 브리즈번에서 옮겨올 때처럼, 지역 이동을 구상할 시간이다. 브리즈번에서는 지역 이동 결정이 갑작스러웠고, 목표 지점도 정확하지 않았다. 노트에 정리하지도 않고 출발했다. 그는 이참에 브리즈번에서부터의 이동 경로를 모두 정리할 생각이다.

 

 어떻게 정리해볼까 고민하던 차에,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는 아예 호주 대륙 전체를 그린다. 눈으로 보면서 화면을 따라 그리자니 호주 대륙의 모양이 자꾸 일그러진다. 몇 장을 버린 끝에, 간신히 마음에 드는 모양이 나온다. 우선, 브리즈번에서부터 시드니와 캔버라를 경유해 멜버른까지 온 경로를 표시한다. 호주 대륙 동부를 거의 아우르는 경로지만, 대륙 전체 크기의 지도에서 보니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다. 자신이 그린 호주 대륙 모양 그림에, 자신이 거쳐온 동부 해안선이 표시되어 있다. 가만히 보고 있던 그의 머릿속에서, 호주 대륙을 일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는다.

 

 

 그가 지나온 길은 호주 동부 해안선으로, 가장 대도시가 많고 개발도 잘 된 구간이다. 실제로 그가 브리즈번에서 멜버른으로 가는 동안, 혼자서 이동하면서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도시와 숙박 시설이 자주 보였다. 비교적 편한 로드 트립 구간이다. 그는 오프로드를 달리는 진정한 로드 트립을 하고 싶다. 가능하다. 호주 대륙의 중앙과, 서부 해안도로를 달리면 된다.

 

 그는 자신이 그린 호주 대륙 그림에, 도시들을 표시한다. 동부부터 시계방향으로 브리즈번, 시드니, 캔버라, 남부의 타즈매니아, 멜버른, 애들레이드, 서부의 퍼스, 북부의 다윈과 케언즈, 마지막으로 중심에 울룰루와 엘리스 스프링스가 있다. 그는 이 장소들을 모두 가보고 싶다. 브리즈번에서 출발했으니, 호주 전체를 빙 돌아서 다시 브리즈번으로 도착하면 일주 성공이다. 생각이 난 김에, 구글 맵으로 이리저리 경로를 설정해본다.

 

 그가 브리즈번에서부터 멜버른까지 거쳐온 경로를 확인하니, 약 2,000km가 나온다. 그는 계속해서, 퍼스와 다윈을 거쳐 호주 대륙 해안선을 따라 빙 돌아 다시 브리즈번으로 돌아가는 경로를 설정한다. 구글 맵 상으로 14,000km, 차로 149시간 거리다. 그는 14,000km의 호주 대륙 해안선 중, 7분의 1 밖에 안 되는 2,000km를 여행한 것이다. 그가 2,000km를 내려가는데 일주일 가량이 걸렸다. 단순 계산으로도 남은 12,000km를 같은 속도로 여행하면 42일이 걸린다. 대륙 해안선을 따라 도는데만 42일이다. 호주 중앙의 울룰루도 가보고 싶고, 멜버른에서 가까운 커다란 섬인 타즈매니아도 가보고 싶다. 그는 구글 맵으로, 경로를 이리저리 바꿔보면서 어떻게 여행하고 어디에 정착할지 구상한다.

 

 

 그는 호주 대륙 정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돌, 울룰루에 꼭 가보고 싶다. 그래서 해안선 경로에 울룰루를 추가한다. 1,500km 정도가 추가된다. 여행 중의 변수와 거리를 고려하면, 당장 호주 일주를 출발해도 모자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차량이 없고, 또 기나긴 거리를 혼자 여행하고 싶진 않다. 2,000km를 내려오는 데도 혼자 심심했던 그다. 그때보다 6배가 넘는 거리를 혼자 여행하고 싶지 않고, 오프로드가 구간은 위험할 수도 있다. 그는 실현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구글 맵에서 경로를 이리저리 설정하면서 재미를 느낀다.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구글 맵을 한참 만지다가, 결국 최상의 시나리오를 도출한다. 이미 브리즈번에서 시드니를 거쳐 멜버른까지 왔다. 타즈매니아 섬을 가보고 싶긴 하나, 타즈매니아는 멜버른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타즈매니아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은 경로가 중복돼서 시간이 낭비된다. 어쩔 수 없이 타즈매니아는 버린다. 혹시라도 멜버른에 다시 돌아온다면, 타즈매니아를 갈 수도 있으리라. 최상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브리즈번 - 시드니 - 멜버른(이미 완료) / - 에들레이드 - 퍼스 - 다윈으로 향하다가 꺾어서 울룰루 - 다시 올라가서 다윈 - 케언즈 - 브리즈번 도착

 구글 맵을 있는 대로 축소해야 보이는,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경로다. 그는 자신이 설정해놓고도 가슴이 설렌다.

 

 

 그는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하는 습관이 생겼다. 동시에, 최상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습관도 생겼다. 그러다가 그는 깨달았다. 최상의 시나리오와 최악의 시나리오는 둘 다 오지 않는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허상일 뿐이며, 최악의 시나리오는 대비하면 막상 그 상황이 오더라도 견뎌낼 수 있기 때문에 최악이 아닌 것이 된다. 신기하게도 그가 미리 상상하고 대비한 최악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준비하지 않았을 때는 언제나,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들이닥쳐 최악이 된다.

 

 그의 경험상 모든 일은 항상 최상의 시나리오와 최악의 시나리오 딱 중간, 그저 그런 정도에서 이뤄졌다. 

 그는 자신이 간절히 바래 마지않던, 브리즈번의 삼성 공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포기하고 에이전시를 통해 누구나 받아주는 공장에 들어갔다.

 마찬가지로 최악의 상황도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나 인종차별주의자 여럿이 몰려와서 자신을 폭행하진 않을까, 그는 항상 경계했고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주 가끔, 길가에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이가 스치듯 지나갔을 뿐이다.

 

 

 그는 모든 일이 언제나 최상과 최악의 중간에서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이를 살짝 비틀어 그답지 않게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모든 일은 최상의 반 정도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목표가 높으면 반이라도 간다, 그러니 목표를 높게 잡아야 한다는 식으로 변형했다. 호주 일주를 계획하며 그는 기분이 좋다. 가슴 뛰는 호주 일주를 하고 싶지만, 실행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목표는 크게 잡자. 목표가 높으면 반이라도 간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곧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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