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남지 않은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향후 계획을 확실히 해야 할 때가 왔다. 그의 비자는 반년도 채 남지 않았다. 세컨 비자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는 이때까지, 세컨 비자에 대한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국가 간 청년들의 교류를 증진시키기 위한 비자다. 20대 청년들에게 일 / 여행 / 체류가 1년간 자유로이 허락되는 비자다. 비자 신청을 하고, 신체검사를 한다. 이후 비자가 승인되면 비자비를 내고 1년 만기의 워킹홀리데이 비자(417 Visa)를 발급받는다.
호주의 경우,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1년 더 연장할 수 있다. 이른바 Second Visa다. 세컨 비자를 받으면, 원래의 비자에 더해 2년까지 체류할 수 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처음 신청할 때는 자격 요건이 따로 없다. 몸 건강한 20대는 돈만 내면 거진 발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Second Visa는 다르다. 호주에서 1년 더 지내고 싶다면 세컨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세컨 비자는 발급 요건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세컨 비자 발급 요건은, 호주 정부가 지정한 지역의 지정된 사업장에서 약 3달을 일하는 것이다. 호주의 국토는 대륙에 준하는 크기지만, 인구는 한국의 절반 정도인 2000만이다. 캐나다나 영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 발급이 더 수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땅은 거대한데 인구가 너무 적다. 대도시는 대부분 해안가에 위치해있고, 나머지 대륙은 광활한 목장이나 농장 지역 몇 군데 외에는 비어있다. 얼마 없는 인구도 대도시에 몰려 있다. 즉 목장이나 농장, 낙농업 산업계의 일손이 부족하다.
워홀러가 세컨 비자를 얻기 위해서는, 호주 정부가 지정한 사업장에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호주 정부가 지정한 사업장은 당연히 낙농업 산업군 관련 목장, 농장, 공장(육가공 등)이다. 3개월 동안 노동력을 제공한 뒤, 매주 월급을 지급받았다는 증빙과 서류 등을 제출해야 한다.
그의 경우 브리즈번의 육가공 공장에서 일하긴 했지만, 도심 인근이었기 때문에 세컨 비자 발급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 사업장이었다. 호주 정부가 원하는 노동력은, 일손이 부족한 격오지의 낙농업 사업장에서 일할 노동력이다.
그가 공장에서 겪었던 것처럼, 농장도 단순 노동이기 때문에 영어 실력을 그리 요하지 않는다. 많은 워홀러들이, 처음부터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려다가 시간과 돈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확실한 시골 오지의 농장이나 목장으로 향한다. 3개월 동안 일해서 세컨 비자도 따고 돈도 번 후에, 천천히 도시에서 적응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꽤 합리적이다.
경치 좋은 격오지의 농장에서, 좋은 친구를 사귀고 돈도 많이 벌고 세컨 비자까지 취득해서 도시로 상경한다. 농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헤어질 때 얼싸안고 울었다는 블로그 글도 많다. 하지만 그는 이런 아름다운 미담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는 워킹홀리데이 준비 시절, 실패 사례를 일일이 찾아 읽었다. 대부분의 실패 사례는 농장이었다. 그는 세컨 비자 관련해서도 주의해야 할 점들을 알아본다. 워킹홀리데이는 청년들의 열정과 패기로 빛나지만, 그 이면에는 악취를 풍기는 패악도 존재한다. 세컨 비자 관련해서도 주의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가 읽은 사례는 주로 농장이므로, 농장을 중점적으로 쓴다.
1. 악덕 고용주 측 - 세컨 비자 발급 신청을 무기 삼아, 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행태
악덕 농장주 중, 세컨 비자 발급을 무기 삼는 경우가 있다. 세컨 비자가 절박한 워홀러들은, 부당함을 뻔히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세컨비자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빼버리겠다느니, 신청을 안 해주겠다느니 하는 식으로 약점을 잡고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워홀러가 노동청에 신고해버리고, 스스로 서류들을 챙겨서 세컨 비자를 신청하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세컨 비자는 사업장에서 신청을 해준다. 가뜩이나 워홀 초창기부터 농장으로 직행했던 이들은, 농장에서 일만 해서 호주 관공서나 행정 절차에는 무지한 경우가 많다. 원래 다 이런 것이겠거니, 돈을 덜 받으면서도 어떻게든 기간을 채운다. 세컨 비자가 발급되면 욕을 하며 탈출하는 것이다.
2. 악덕 워홀러 측 - 불법적으로 세컨 비자를 구매하는 행태
세컨 비자 발급을 위해서는 해당 기간 동안 격오지 사업장에서 일했다는 증명이 필요하다. 즉 사업장이 워홀러에게 임금을 지불한 내역이 필수다. 비자가 얼마 남지 않아 촉박한 경우나, 굳이 농장에서 일하지 않고 세컨 비자를 얻고 싶은 경우 워홀러들은 세컨 비자를 구매한다. 도시에는 세컨 비자를 판매하는 브로커가 있다. 격오지 사업장과 연락하면서 도시에서 세컨 비자 불법 거래를 알선하는 브로커다. 워홀러는 자신의 TFN, 통장 정보를 넘긴다. 브로커가 이를 농장에 전달하면, 농장은 서류상으로 해당 워홀러가 농장에서 일하는 것처럼 꾸민다. 실제로 일은 농장의 다른 사람이 하고, 돈을 지불한 워홀러는 세컨 비자 요건에 필요한 기간만 차곡차곡 쌓는 것이다. 해당 기간 동안 워홀러는 절대로 통장과 연결된 카드를 사용해선 안 된다. 서류상으로는 격오지 농장에 존재하기 때문에, 도시나 이외의 지역에서 카드를 사용하면 위치가 어긋나 세컨 비자 심사 과정에서 들킨다.
정확하진 않지만, 세컨 비자의 불법 거래 가격은 약 1000불이라고 한다. 호주 정부도 이런 세컨 비자 불법 거래를 손 놓고 보고만 있지 않는다. 농장에서 찍은 노동자의 사진과, 비자 신청인 사진을 대조해서 불일치할 경우 세컨 비자에서 탈락시키곤 한다. 이런 사례가 생기자, 농장에서는 세컨 비자를 구매하는 워홀러와 최대한 닮은 농장 노동자의 사진을 이용하는 등 편법을 쓴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편법을 쓰더라도, 정부 측에 걸리면 가차 없이 세컨 비자가 불허된다. 부정 행위가 탄로나면 워홀러는 1000불을 날린다.
위치를 속이기 위해 현금만 쓰면서 쥐 죽은 듯이 3개월을 채우고 세컨 비자를 신청하는 경우는 그나마 가능성이 높다. 3개월의 시간조차 없어서, 당장 서류를 위조해서 제출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당연히, 발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 워홀러는 세컨 비자에 대해 묻는 그에게, 그냥 브로커를 통해 사라고 말했다. 해당 워홀러의 말에 의하면 도시 워홀러들은 십중팔구 브로커를 통해 세컨 비자를 불법적으로 구매한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다.
그의 비자는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세컨 비자 발급 요건의 기간을 채우려면 당장 격오지로 달려가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는 일하면서 세컨 비자 기간을 채울 생각도, 불법적으로 구매할 생각도 없다.
그는 숙소를 수십 차례 옮기면서, 일자리를 수 차례 옮기면서, 그리고 여러 도시를 거치면서 나름 다양한 호주의 모습을 봤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이민자들의 삶도 조금이나마 봤다. 그가 내린 결론은, 호주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이다. 호주라고 막 좋지만도, 막 나쁘지만도 않다. 자연환경, 사회 분위기 및 제도, 언어, 문화, 사는 사람들 생김새가 다르긴 하나 결국 사람 사는 것은 비슷하다.
그는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다니다가 워킹홀리데이를 왔으므로 20대 중반이다. 그는 자신이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1년을 보내는 동안, 또래의 다른 이들이 한국에서 무엇을 할지 어렴풋이 알고 있다. 졸업을 향해, 취업을 향해 그보다 앞서가고 있을 터다. 2년을 호주에서 보낸다면, 그 격차는 줄일 수 없을 만큼 벌어질 지도 모른다. 그는 만일 자신이 세컨 비자를 취득해서 2년을 호주에서 보낸다면, 이민이든 취직이든 뭐가 되었든 호주에서 정착 비스무리한 확실한 무언가를 하나라도 달성할 수 있어야 수지가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가 판단하기에, 워홀 비자 2년 동안 호주에서 확실한 발판을 다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전례도 많지 않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호주에 정착해서 살 생각이 별로 없다.
그는 세컨 비자를 고려사항에서 배제한다. 호주에서의 워킹홀리데이 생활은 1년으로 족하다. 그는 다른 워홀러들의 2년보다, 자신의 1년을 다양한 경험들로 알차게 꽉꽉 채워 능가할 생각이다. 실제로 그의 시도 때도 없는 이동과 이직은 이를 가능케 하고 있었다. 다만 돌이켜보았을 때, 탁 트인 지평선과 자연을 좋아하는 그가 호주의 농장을 한 번쯤은 경험해보았어도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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