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6번째 기업 면접에서 떨어졌지만, 마냥 정신줄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16번째 기업 면접을 보기 직전, 면접을 보고 난 직후 그에게 갑자기 서류 합격 메일이 무더기로 도착했기 때문이다. 17번째 기업, 18번째 기업, 19번째 기업, 그리고 2주 정도 텀을 두었다가 20번째 기업까지 4개 기업이 갑작스럽게 그에게 서류 합격 소식을 알린다.
떨어진 면접은 떨어진 것이다. 상황이 어떻든 기분이 어떻든, 취준생은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며 취업 활동을 해야 한다. 그는 우선 정신을 차리고, 이메일을 하나하나 읽는다.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것, 무엇이 당장 급한가.
서류 합격 메일을 보낸 순서는 17, 18, 19, 20번째 기업 순이지만, 기업마다 실시하는 전형이 조금씩 다르고 그 속도도 제각각이다. 그렇기에 합격 메일을 받은 순서대로 전형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며, 각 기업들의 채용 절차가 뒤죽박죽 섞여 있다. 이런 식이다.
16번째 기업 화상 면담
17번째 기업 서류 합격
17번째 기업 인적성, AI면접
18번째 기업 서류 합격
18번째 기업 AI 면접
16번째 기업 면접
19번째 기업 서류 합격
19번째 기업 인적성, AI면접
19번째 기업 면접
17번째 기업 사전 영어 면접
18번째 기업 면접
20번째 기업 서류합격
17번째 기업 면접
20번째 기업 AI면접
...
위에 적힌 전부가, 딱 1달 동안 이루어진 일들이다. 16번째 기업 면접을 진행하는 와중에 서류 합격 메일들을 받는다. 인적성과 AI 기한이 촉박한 경우는 미리 해놓고, 기한이 그나마 좀 긴 경우는 면접 뒤로 미룬다. 면접부터 보고, 미뤄둔 인적성과 AI를 처리하는 와중에 합격 메일이 하나 더 날아온다. 해당 기업의 인적성과 AI를 보고 있노라면, 이번에는 인적성과 AI면접을 합격했다는 소식과 함께 면접 일정이 날아든다. 면접 준비를 하면서 AI와 인적성 일정까지 체크하고 있는 와중에, 여기는 사전 영어 면접을 보겠다 하고 저기는 AI 면접 결과 통보를 보내주며 당장 며칠 뒤가 면접이다. 이렇게 정신없이 온갖 전형들과 면접을 치르는 가운데, 면접 탈락 통보도 날아온다. 그는 슬퍼할 틈이 없다. 눈앞에는 계속해서 다른 기업의 채용 전형 마감 기한이 닥쳐오고 있었기에.
그는 원체 서류를 미친 듯이 난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식의 바쁜 일정이 아주 드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이전에는 여러 기업 면접을 동시에 준비해야 된다 하더라도, 정말 가고 싶은 기업은 소수이고 난사하다가 얻어걸린 회사가 다수였다. 그래서 소수의 회사에 집중하면서, 나머지는 면접 준비 자료만 만들어놓고 비교적 널널하게 준비하곤 했다.
그렇지만 지금의 17, 18, 19번째 기업은 모두 거대 기업의 계열사들이다. 어쩌다가 얻어걸린 어중이떠중이 같은 기업이라면 널널하게 준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대 기업 계열사를 그런 식으로 설렁설렁 넘어갈 수는 없다.
17, 18, 19번째 기업의 각종 전형들을 간신히 처리하면서, 그는 미친 듯이 면접을 준비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거대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등용문이 눈앞에 3개나 서 있다. 이 기회를 절대 놓쳐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그다. 잠을 줄이더라도, 밤을 새서라도, 이 3개 기업만큼은 어떻게든 면접 준비를 제대로 해서 면접에 임하고자 한다.
미리 이야기하자면, 20번째 기업은 안타깝게도 앞의 면접과 날짜가 겹쳤다. 시간이 겹친 것은 아니어서 면접 참석은 가능하다. 하지만 면접 직전까지의 여러 다른 전형들과 상황으로 보았을 때, 물리적으로 20번째 기업에 할당할 시간이 부족하다. 어쩔 수 없다. 그는 20번째 기업 면접 때는 뚜렷한 어필이 아닌,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방어 전략을 구사하기로 결정한다. 운이 좋다면, 그런 식으로 방어만 해도 붙을지도 모른다. 아니, 20번째 기업은 솔직히 떨어져도 상관없다. 17번째 기업, 18번째 기업, 19번째 기업 이 세 군데 중 한 곳만 붙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다.
4개 기업으로부터 연이은 서류 합격과 면접이 기다리는 상황, 각 기업들의 내부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겉은 번쩍번쩍하다. 앞의 3개 기업 중 하나, 아니 4개 기업 중 하나만 붙어도 그는 무조건 충성하며 다닐 각오가 되어 있다. 그는 졸업을 더 유예하지 않고 졸업해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영락없는 백수다. 취업 준비 기간은 벌써 1년이 넘었으며, 그동안 서류 탈락만 수 백번, 면접 탈락도 어느새 10번을 훌쩍 넘는다.
그러한 그에게도 기회가 왔나 보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란 말이 있지 않나. 그는,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가 마침내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끝내야 한다. 수많은 전형들과 면접 준비 때문에 정신없고 바쁘긴 하지만, 지금의 기업들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17 / 18 / 19번째 기업에 붙는다면, 아니 20번째 기업에라도 좋다. 붙기만 해라. 붙기만 하면 된다. 취업준비를 하며 허비한 수많은 시간들, 미친 듯이 난사하고 미친 듯이 떨어졌던 수백 통의 이력서, 웃는 낯짝으로 면접관들 비위를 맞춰주다가 허무하게 떨어진 면접들, 이 모든 것들이 취업에 성공하는 순간 모조리 보상받으리라.
이번 기회에 끝내리라. 그는 다짐한다. 물론 세상일이 그가 다짐한 대로 흘러갈지 여부는 두고 볼 일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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