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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

16번째 기업, 18번째 면접 (대기)

 16번째 기업 건물에 도착하니, 시간이 너무 이르다. 그는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버렸다. 바로 들어가기가 애매해서, 그는 건물 1층 까페로 들어간다. 여기서 열심히 면접 준비 자료를 보고 있으면, 혹시라도 우연히 카페에 들렀던 16번째 기업 직원이 그를 눈여겨보지 않을까. 아니, 대놓고 카페에 잠복해 있는 것은 아닐까? 그의 망상 회로가 가동된다.

 

오렌지 주스를 주문하고, 그는 자리에 앉아 면접 준비 자료를 훑는다. 항상 그렇듯, 면접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도 불안하게 느껴진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배가 살살 아파온다. 괜찮을 줄 알았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는 화장실에 다녀온다. 그의 위장은 면접에 약한 편이다.

 

 

 다시 자리에 앉아, 면접 자료를 훑는다. 그런데, 어느새 옆자리에 새로 앉은 이들의 대화가 꽤나 시끄럽다. 면접 자료를 훑으면서, 그는 한쪽 귀로 옆 테이블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는다. 나이가 60이 넘어보이는 남자, 그리고 50대로 보이는 여자다. 여자는 남자에게 대표라고 부르고, 남자도 여자를 무슨 직함으로 불렀는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일에 관한 대화다.

 

  남자 : 아니, 내가 그때 그래서 만나서 얘기를 했는데, 뭐라고 했는지 알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거야!

  여자 : 아유, 잘 알죠. 원래 그런 사람인 거 잘 아시잖아요.

  남자 : 아니, 헛소리를 하니까. 그래서 내가 그랬지. 야, 너 한 번만 더 그런 소리 하면 죽여버린다고. 그랬더니 꽁지를 내리더라고.

  여자 : 잘하셨어요. 아주 강하게 잘하셨네요.

  남자 : 그러고 나서 뒤에서는 또 딴 소리 한다잖아. 그 새끼, 다음부터는 진짜 내가 죽여버릴거야. 그 새끼 내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한다니까?

  여자 : 맞아요 맞아. 대표님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더라고요. 그런데 아직 일이 마무리가 안돼서, 같이 데려가야 해요. 중국 쪽에 아는 인맥이 많다잖아요. 얼마 전에 중국 쪽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남자 : 아니,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런 새끼 필요 없어. 막말로 자네(직함이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가 맡아서 진행하면 되잖아?

  여자 : 아유 그러긴 한데, 아직은 저 사람이 필요해서 그래요. 대표님 마음 다 알아요. 저 사람이 마음에 안 드실텐데, 그래도 저 봐서 눈 딱 감고 조금만 참으세요. 앞으로는 저 사람이랑 직접 얘기하지 마시고, 저한테 말씀하세요 저한테

  남자 : 그 새끼. 어우 그 새끼 그거. 나랑 자네랑 둘이 일해도 충분하다니까! 아니.. !@@#@%$!@%!

  여자 : 맞아요 맞아요. 대표님 마음 충분히 이해.... !@#@!@#%!@%#

 

 대강 이런 내용이다. 시험이나 면접 등, 중요한 무언가를 앞두고 있을 때는 요상하리만치 다른 것들이 재미있는 법이다. 그는 한쪽 귀로 들은 정보를 통해, 옆자리 사람들이 무언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겠거니 생각한다. 남자는 성격이 꽤나 급해 보이는 할아버지고, 옆의 여자는 그런 남자를 계속 달래고 있다.

 

 

 

 이메일로 안내받은 시간이 10분 정도 남았을 무렵 그는 16번째 기업으로 올라간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인사팀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대기실로 그를 안내한다. 사무실 한켠의 넓은 탕비실 같은 곳이다. 대기실로 향하면서, 그는 사무실을 흘긋 훑어본다. 나란히 붙어 있는 책상들, 직원들의 컴퓨터 화면에는 엑셀이 띄워져 있고 칸칸이 숫자가 빼곡히 적혀 있다. 해외영업 직무도 저런 일을 하지 않을까, 그는 공연히 설렌다.

 

 탕비실 같은 대기실에는, 그를 포함해 3명의 지원자가 도착해 있다. 그는 면접 준비 자료를 계속해서 보려고 하는데, 인사팀 직원이 말을 건다. 인사팀 직원은 보통 체격, 깔끔한 이미지의 남자 직원이다. 살가운 목소리로 지원자들에게 묻는다. 오늘 어떻게 오셨냐 / 대기실 온도는 괜찮냐 / 우리 회사 정보를 찾는데 힘들지는 않았냐 등의 질문이다. 그는 처음에는 대강 대답하고 면접 준비 자료로 눈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인사팀 직원은, 침묵을 참지 못하는 듯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나간다. 어색함을 참지 못하는 것인지,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계속된 인사팀 직원의 질문에, 지원자들은 마지못해 답을 하다가 하나씩 질문을 시작한다. 그도, 여기까지 와서 면접 준비 자료를 더 보느니 차라리 인사팀 직원에게서 정보를 캐기로 한다. 인사팀 직원을 계속 무시했다가 혹시라도 미운털이 박히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있다.

 

 

 지원자들이 조금씩 질문을 시작하자, 인사팀 직원은 입이 터진다. 이번에 많이들 지원했는데 면접에 모시는 인원은 얼마 되지 않는다느니, 회사가 알려지진 않았지만 알짜배기라느니, 자신도 이곳이 첫 회사는 아니고 이직해 왔다느니, 16번째 기업은 철강 업계여서 신입보다는 이직해온 인원이 많다느니 등의 자잘한 정보들이다. 

 인사팀 직원은 16번째 기업 로고가 박힌 후리스를 입고 있다. 아까 사무실을 훑어봤을 때도 해당 후리스를 입은 직원들이 몇몇 있었다. 그가 후리스에 대해 물어보니, 회사에서 지급하는 유니폼이라고 한다. 디자인도 좋고 기능도 좋아서, 다들 애용한다고 한다.

 

 

 얼마 뒤, 인사팀 직원은 대기하고 있는 3명 중 2명을 부른다. 1명은 다음 조이고, 그를 포함한 2명이 이번 면접 조라고 한다. 면접 직전에 대기하는 대기실이 따로 있단다. 그를 포함한 2명은 인솔을 받아 바로 옆 대기실로 향한다. 첫 번째 대기실은 탕비실 같은 느낌이었다면, 두 번째 대기실은 회의실이다. 한가운데에 넓은 테이블이 있고, 벽에는 나무로 짠 서랍장이 있다. 아래는 서랍장인데, 위는 뚫어서 각종 것들을 전시해 놓았다. 16번째 기업이 받은 각종 상패들, 대표적인 로프 제품까지 전시되어 있다. 그는 상패들을 살피고, 로프들을 한 번 만져본다. 면접 준비 자료를 만들며 정리했던 수많은 이름들, 그리고 몇 번을 외웠던 이름의 제품들의 실물을 비로소 마주한다. 

 

 두 번째 대기실에서도 대기 시간이 10분 이상 걸린다. 상패와 제품들을 모두 살펴보고 난 뒤, 그는 회의실 테이블 자리 중 하나에 앉는다. 몇 번이고 경험한 면접 대기 시간이지만, 면접 횟수가 추가될 때마다 그의 떨림은 점점 더 심해진다. 면접에 들어가서는 괜찮다. 오히려 면접을 기다리는 시간이 고역이다. 심할 때는 빨라진 자신의 심장 박동까지 들리는 그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고, 눈을 감고 진정하려 한다. 그런 그를 보며, 같은 조의 다른 인원이 말을 건다.

  면접자 : 많이 긴장하셨나 봐요.

  그 : 네? 아, 아닙니다.

 

침묵이 잠시 흐른다. 그와 같이 보는 면접자는, 긴장한 내색은 하지 않고 있으나 자리에 앉지 않고 계속 서 있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면접자에게 묻는다. 예전 1번째 기업 면접을 봤을 때, 그의 경쟁자들은 하나같이 주재원 아들이거나 해외파였다.

 

  그 : 혹시 해외파이신가요?

  면접자 : 아 네. 해외에서 살다가 왔습니다.

 

 그는 속으로, 역시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꿇릴 것은 없다. 1번째 면접 때도 해외파와 주재원 아들들을 뚫고 최종 면접까지 갔었다. 물론 직무가 변경되긴 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직무가 변경됐다는 것은 결국 해외파와 주재원 아들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해외영업은 탈락했다는 의미인가? 생각하지 말자. 긴장을 가라앉히기에도 벅찬 상태다. 그는 눈을 감고, 어서 면접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린다.

 

 이윽고, 인사팀 직원이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하얀 얼굴 씨, OO 씨의 면접을 시작하겠다고 한다. 그를 포함한 2명의 면접자는, 인사팀 직원의 인솔을 따라 면접실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