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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

최종 결산 (취준 기간 정리)

 최종 합격 및 입사 확정으로 인해, 마침내 그에게도 감격스러운 순간이 찾아온다. 그는 자신의 길고 길었던 취업준비생 기간을 정리한다.

 

그의 취업준비 기간 최종 결산 성적표는 이렇다.

 

준비 기간 약 1년 반*

총 서류 지원 횟수 856회 (서류탈락 755회 / 서류합격 101회)

  서류 합격 101회 중 사기업 83곳

  필기 횟수 32회 (필기탈락 20회 / 필기합격 13회)

  면접 본 기업 41개사 (1차 면접 탈락 30 / 1차 면접 합격 11)

                                (최종 면접 탈락 9 / 최종 면접 합격 1)

 

서류합격률 11.8%/ 필기합격률 40% / 면접 합격률 대략 26%*

서류부터의 최종 합격률 0.1168%

 

* 대학교 막학기 이전 설렁설렁 지원한 서류 70여 회는 논외로 한다. 

* 필기의 경우 사기업과 공기업이 섞여있고, 면접의 경우도 두 번 보는 기업과 통합해서 보는 기업 등이 혼재되어있기 때문에 정확한 합격률은 산출하지 않기로 한다.

 

 

 그동안 기록해두었던 자료를 모아, 최종 결산을 한다. 서류 지원 횟수 856회.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계산하여 눈앞에 마주하는 느낌은 다르다. 856번. 856번이나 서류를 난사했구나. 그가 호주에서 길거리의 상점들을 일일이 방문해서 이력서를 돌린 것이 약 120군데였다. 호주에서는 아르바이트였고, 한국에서는 정규직이니 당연히 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어려우리라고는, 이렇게까지 길어질 것이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최종 합격을 했으니 망정이지, 이번에도 실패했더라면 이력서 지원 횟수만 대망의 1000을 찍을 뻔했다.

 

 

 최종 결산을 하며,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만들었던 면접 준비자료들도 정리한다. 면접을 볼 때마다 강박적으로 기업 분석을 하고 외웠던, 나중에는 그 혼자만의 고행처럼 만들었던 자료들이다. 1번째 기업의 1번째 면접 때부터 면접 준비 자료를 공들여 만든 탓인지, 그는 면접 준비 자료들을 버리는 것이 아까웠다. 그렇게 하나둘씩 모아놓은 것이, 어느덧 면접을 본 기업의 수만큼 쌓였다. 

 

 처음에는 면접 준비 자료들을 한 장짜리 비닐 파일에 끼워놓았다. 그런데 면접 횟수가 수십 번을 넘어가면서, 한 장짜리 파일로는 감당이 안되기 시작했다. 비닐 파일 밖으로 터져 나오는 면접 준비 자료들을, 그는 아예 40매짜리 커다란 클리어 파일에 끼워넣었다. 면접 준비 자료를 만드는 것과 면접에 탈락하는 것은 고통이었지만, 면접이 끝난 뒤 자료를 클리어 파일에 끼워 넣는 때만큼은 오묘한 희열이 있었다. 

 

 클리어 파일에는 그의 면접 준비 자료들이 계속해서 쌓였다. 그가 꼭 붙고 싶었던 기업들은 두터운 면접 자료에 더해 박람회 자료들이나 제품 카탈로그까지, 그다지 붙고 싶지 않았던 기업들은 한 두장짜리 얄팍한 면접 자료만 끼워졌다. 나중에는, 기업들로부터 면접비를 받았던 봉투까지 이 파일에 끼워두었다. 그의 취업준비 역사가 모여있는 일종의 전기인 셈이다.

 

 

 40장짜리 두꺼운 클리어 파일이 차곡차곡 채워질수록 그는 희열과 함께 불안함을 느꼈다. 설마, 이 클리어 파일이 전부 채워지기 전에는 취업을 할 수 있겠지. 이 두터운 파일을 다 채우고도 취업이 안된다면, 클리어 파일을 하나 더 준비해야 하나. 

 

 면접 횟수가 계속 늘어나면서, 그 두텁던 클리어 파일이 꽉 찰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속지를 더 끼워 넣어야 하나. 그는 우선,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아 면접 준비를 부실하게 한 기업들의 자료들을 양면으로 끼워 넣는다. 클리어 파일이 꽉 차기까지 조금이나마 시간을 더 벌려는 꼼수다.

 

 참으로 얄궂게도, 그가 최종 합격을 한 시점에 딱 맞춰 클리어 파일이 꽉 찬다. 41번째 기업의 면접 준비자료를 끼우는 비닐이, 클리어 파일의 마지막 장이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그는 신기하면서도 어이가 없다.

 

 

 그는 자신의 면접 준비 자료들로 꽉 들어찬 클리어 파일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음미한다. 처음 만났던 1번째 기업의 자료, 두터운 면접 자료에 더해 대리점을 방문하고 받았던 카탈로그까지 끼워져 있다. 1번째 기업 최종 탈락 직후 대강 준비했던 기업들, 중간중간 신경 써서 준비한 제조업체 해외영업 직무, 이번에 끝내고자 했던 ㄱ그룹 계열사들, 건설사 여럿, 박람회까지 참여하며 준비했던 29번째 기업 등 면접 준비 자료를 볼 때마다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면접 준비를 열심히 하여 비닐이 터질 것 같은 기업들은 모조리 떨어졌다. 반면 최종 합격한 39번째 기업은, 면접 준비 자료가 얇아 비닐이 넉넉하다. 양과 질 모두, 그가 열심히 준비했던 기업들의 반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전자는 떨어지고, 후자는 최종 합격했다.

 

 

서류 지원 횟수 856회

41개 기업을 찾아가 참석한 55차례의 면접

면접 준비 자료가 꽉 들어찬 40페이지 클리어 파일

 

 그가 취업 준비 기간 동안 행하고 남긴 것들이다. 그가 느끼기에 꽤 길었던 시간, 무식하리만치 반복했던 단순 작업이 모여 탄생한 결과물이다. 자랑스러워야 하는 것인가, 창피해야 하는 것인가. 조금 헷갈리지만, 그가 당장 느끼는 감정은 자랑스러움이 더 큰 듯하다. 

 

 면접 준비 자료를 모아놓은 파일을 다시 펼친다. 짙은 청색의 클리어 파일은 과도한 내용물로 인해 약간 비대해졌다. 파일의 속지를 넘길 때마다, 그가 인쇄하여 끼워 넣은 면접 준비 자료들과 면접비 봉투가 보인다. 신경 써서 준비한 자료들은, 직접 쓴 글씨까지 빼곡히 적혀있다. 

 

 면접 준비 자료들을 몇 번이고 넘겨보며, 그는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 편히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