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이사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그는 다양한 이유로 갈등을 겪으며 이사를 다닌다.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생길 즈음 어김없이 일이 터진다. 마스터는 그에게 나가 달라고 하고, 그는 보증금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후 집을 나간다. 이사를 하도 많이 다녀, 짐 싸는 것이 익숙하다. 몇 번이고 이런 패턴이 반복되자, 그는 아예 처음 입주할 때부터 이사 갈 것을 전제하고 짐을 전부 풀지 않는다. 필요할 짐들만 최소한으로 꺼내 놓는다. 이렇게 자주 이사하면서도, 방세가 싸고 생활이 편하니 한인 쉐어하우스를 고집한다. 그가 돈을 벌기로 작정한 기간 동안에는 계속 한인 쉐어하우스에서 지낸다.
그는 정말 다양한 마스터를 만났고, 다양한 이유로 갈등을 겪는다. 그와 가장 격렬하게 부딪힌 유형의 마스터는, 보증금을 언급하는 마스터다.
이 유형의 마스터는, 세입자들이 사용하는 것에 문제가 생기면 보증금 얘기부터 꺼낸다. 그가 살던 한인 쉐어하우스는, 마스터와 세입자가 많은 것을 구분해서 쓴다. 냉장고, 화장실 등은 마스터용과 세입자용이 따로 있다. 세입자용 냉장고나 세입자용 화장실의 무언가가 고장 나면, 마스터는 세입자들의 보증금에서 수리비를 차감하겠다고 말한다.
고장 났거나 문제가 있다면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고, 그 원인에 따라서 보증금에서 차감할지 마스터가 부담해서 고칠지 결정할 일이다. 세입자들이 험하게 써서 고장 낸 것이라면 세입자의 부담이고, 집이 노후된 것이거나 단순 고장이라면 이는 세입자 부담이 아니다. 하지만 방어적인 마스터들은 문제가 생겼다고 하면, 지금까진 그런 문제가 없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하며 보증금부터 운운한다.
마스터들의 이러한 말투나 행동들은, 방어적 태도에 의해 튀어나온 습관성 발언이 많다. 그가 만났던 한인 마스터 중, 정말로 악독하고 보증금을 뜯어내려는 마스터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습관성 발언을 용납할 수 없고, 세입자가 을처럼 느껴지는 상황을 참지 않는다.
이러한 올곧고 강직하고 공격적인 그의 태도는, 어느 집 마스터에게나 눈엣가시다. 그에게는 여지없이 나가 달라는 말이 날아온다. 그는 그렇게 2달도 안되는 시간동안 집을 3차례 옮긴다. 마지막 이사 때는 언쟁을 하다가, 마스터가 지금 당장 나가라고 말한다. 당장 나가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보증금만큼은 확실히 받아내야 한다. 그는 보증금부터 보내라고 말한다. 마스터는 더러워서 준다는 식으로 보증금을 송금한다. 짐을 풀지조차 않았으니, 나갈 준비는 이미 되어있다. 마스터가 노티스를 지키지 않은 것이지만, 보증금을 더 얹어 줄 리가 없다.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그는 입금된 액수가 애초에 자신이 보낸 액수가 맞는지 확인한 뒤 짐을 챙겨 나간다.
노티스로 인한 준비 기간이 없이 나왔으니, 그는 어쩔 수 없이 차에서 잔다. 어차피 공장 주변에 한인 쉐어하우스는 널렸다. 그는 인스펙션과 입주가 동시에 가능한 한인 쉐어하우스에 연락하고, 차에서 빵을 먹는다. 언쟁으로 흥분된 상태가, 빵을 먹으며 조금씩 가라앉는다. 썩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그는 아늑함을 느낀다. 캠리가 그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느낌이다. 남의 집에서 눈칫밥 먹으며 셋집살이 하는 것보다, 돈 주고 산 차 안이 훨씬 편하고 아늑하다. 호주에서 그의 편은 캠리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이날 이후, 쉐어하우스에 입주하더라도 집 안에서보다 차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차창을 열고, 시원한 밤공기와 별들을 즐기며 차에서 쉬곤 한다.
이러한 일들은 그가 돈을 벌기로 작정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피곤과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예민해지고, 점점 더 공격적으로 변한다. 이 당시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의 공격성을 받아주고 마찰 없이 지낼 수 있는 한인 쉐어하우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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