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상/호주

70 - 빨래 횟수 제한

 일터도 일터지만, 주된 갈등은 숙소에서 터졌다. 워홀 기간 중 외국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서 외국인 사대주의에 빠졌다고 볼 수 있었던 그가, 한인 쉐어하우스에서 생활하는 것은 애초에 잘못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대놓고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그는 은근히 한인 쉐어하우스에서 지내는 한국인을 얕잡아 봤다. 본인도 한인 쉐어하우스에서 생활하지만,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돈을 위해 잠시 머무는 것,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일 뿐이다. 하지만 여기 한인 쉐어하우스에서 계속 지내는 한국인들은 다르다. '그들은 호주에서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는 상당히 오만하고 몰상식한 견해다. 그를 대하는 한국인들이 이를 눈치챘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는 한인 쉐어하우스에서 살면서 여러 이유로 날이 서 있었고, 한국인들과 거의 매일 갈등을 겪는다.

 

 

 처음 갈등이 시작된 이유는 빨래였다. 그가 살고 있던 한인 쉐어하우스의 마스터(방세를 받는 사람)가, 그를 비롯한 세입자들에게 빨래를 주 1회만 하라고 단톡방에 공지를 올린다. 세탁기 소리가 시끄러웠던 것일까, 세입자들의 빨래로 인한 물세를 아끼려는 것이었을까. 이 공지는 안 그래도 날카롭던 그의 신경을 자극한다. 그는 이 공지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일단 그가 가진 옷이 너무 적다. 그는 워킹홀리데이를 구상하면서 짐을 최소화했다. 그의 짐은 조그만 캐리어와 배낭에 전부 들어갈 수 있다. 그가 가진 짐들의 부피가 작은 건, 특히나 의복이 적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에서 가져온 의복은 이렇다.

 

 반팔 5개 / 반바지 3개 / 긴바지 1개 / 속옷, 양말 5개 / 신발 2켤레 / 슬리퍼 1켤레

 

 그나마 얼마 없는 의복 중에서도 이벤트 청소 때 입었던 의복은 버렸다. 그는 호주에서, 몇 안 되는 옷들을 돌려 입는다. 이 시기 브리즈번은 햇빛이 좋고 더워서, 옷을 매일 갈아입어야 한다. 그가 가진 옷들로는 7일을 버틸 수 없다. 그는 3~4일에 한 번씩 빨래를 했다.

 

 

 의복도 의복이지만, 그의 신경이 거슬리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는 마스터가 이런 식으로 세입자들의 생활을 제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스터와 세입자의 관계가 암묵적 상하 관계에 가깝긴 하지만, 보증금 내고 정당한 권리를 갖고 입주한 세입자들이 설설 기고 마스터가 군림할 필요는 없다. 마스터와 세입자들 사이에는 노티스라는 상호 강제된 예의가 있다. 집을 나가고 싶거나, 나가라고 할 경우 서로에게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그는 노티스가 입주/퇴실할 때뿐 아니라, 쉐어하우스의 규칙을 바꿀 때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입자들이 빨래를 자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세입자들의 어떤 생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갑자기 공지를 올려 하루 만에 바꾸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는 마스터가 세입자들의 생활 방식에 제재를 가하려면, 노티스 기간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티스가 2주라면, 새로운 생활 방식도 2주 뒤부터 적용하면 된다. 빨래같이 세세한 부분까지 참견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런 식으로 노티스를 지키면 그나마 낫다. 2주 뒤부터 빨래를 적게 하도록 해라, 그렇다면 이 조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 세입자는 2주 뒤에 나가겠다고 말하면 된다. 하지만 그가 사는 쉐어하우스의 마스터는 아무런 상의나 적용기간 없이 당장 세탁 횟수를 줄이라고 공지를 올렸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때의 마스터(커플)가 정말 세입자들의 빨래 횟수를 일일이 세어가면서 통제할 만큼 빡빡한 인물들은 아니었다. 물세가 많이 나왔는지, 시끄러웠는지, 되도록이면 빨래를 1주일에 1번씩 하라는 식의 권고인 셈이다. 그는 이를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부당한 대우를 참으려 하지 않았다. 

 

 그가 눈치껏 빨래를 돌리거나, 빨래 몇 번째냐는 물음에 유연하게 대처하거나, 씩 웃으며 넉살 좋게 대처한다면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카카오톡 단톡방에 그대로 써서 올린다. 어투가 상냥할 리 없고, 당연히 마스터 커플도 그를 예의주시하기 시작한다. 다른 세입자들은 고분고분 가만히 있는데, 자꾸만 나서서 말대답하는 그가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마스터는 그에게, 자신들의 집에 맞는 것 같지 않다며 2주 뒤 나가 달라고 말한다. 그로서는 바라던 바다. 어차피 공장 지대에 한인 쉐어하우스는 널렸다. 

 

 그는 보증금을 떼이지 않기 위해, 지내던 공간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모든 짐을 뺀다. 사진을 찍어, 당당하게 마스터에게 보낸다. 그는 보증금이 계좌에 입금될 때까지 집 안에서 기다린다. 정확한 액수가 입금되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에야, 그는 집에서 나간다.

'회상 > 호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72 - 마스터와 세입자  (0) 2021.07.22
71 - 이사 중독  (0) 2021.07.22
69 - Fuck You  (0) 2021.07.22
68 - 폭식  (0) 2021.07.22
67 - Hungry Jacks  (0) 2021.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