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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92 - 영주권 설명회

 그는 호주 관련해서 많은 단체 카카오톡방에 속해 있었지만, 말을 하지 않는 축에 속한다. 대부분의 카카오톡방은 친목 위주, 술 마실 사람을 찾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그가 속한 방 중, 유용한 정보가 많이 올라오는 단톡방이 딱 하나 있다.

 

 이 단톡방에 참가한 익명의 구성원들은, 호주 전역에 흩어져 있는 워홀러들이나 학생 비자를 지닌 유학생들이다. 다른 단톡방들은 대도시에 사는 이들이 절대다수다. 반면 이 채팅방은, 호주 전역, 특히 시골이나 이름조차 생소한 오지에서 홀로 생활하는 이들이 많다. 가끔씩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다들 독립심과 생활력이 강하고, 나름의 목표를 갖고 있다. 그는 다른 카톡방에서는 이야기하지 않지만, 이 방에서는 가끔씩 이야기를 하곤 한다. 워킹 생활 중 꽤나 유용한 정보, 호주 경제나 역사에 대한 글들도 올라오곤 한다. 이 채팅방을 만든 방장이 시드니에 살고 있다.

 

 그는 방장에게 카톡을 보내, 자신이 시드니에 왔는데 한 번 볼 수 있겠느냐고 제안한다. 방장은 흔쾌히 허락한다. 방장은 시드니 대학교에서 만나자고 말한다. 역시 학생 비자의 유학생이다. 캠리를 몰고 시드니 대학교로 향한다. 약속 시간이 되자, 그는 한 한국인 남성과 마주한다.

 

 방장은 30대, 시드니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유학생이다. 그는 워킹 생활 중 방장에게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은 편이어서, 상당히 반갑다. 부끄럽지만 서로의 닉네임을 확인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한다. 방장은 마침 오늘 호주 영주권 관련 설명회가 학교 대강당에서 열린다며,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새로운 경험이다. 그는 동행한다.

 

 대강당에는 여러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벼서, 그와 방장은 자리에 앉지 못하고 맨 뒤에 서서 설명을 듣는다. 이 설명회는 호주 영주권 취득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위해, 영주권 취득 방법과 정부의 정책 등을 설명하는 자리다. 단상 위에서, 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성이 설명회를 시작한다. 그는 영어에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지만, 비자나 정책 관련 용어들이 쏟아지다 보니 점점 알아듣기가 힘들어진다. 방장은 대학교에서 수업을 많이 들어서인지, 설명회를 알아듣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그가 간신히 알아들은 것과, 방장에게 들은 것을 조합한다. 설명회의 주된 내용은, 영주권 취득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호주 영주권의 인기와 수요가 계속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호주 정부는 영주권 취득 요건을 매년 갱신하고 있다. 올해에는 영주권 대상이었던 직업군이나 전공이, 내년에는 대상 요건에 포함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랬다가도, 다시 내후년에는 취득 요건에 해당될 수도 있다. 강단에서 설명하고 있는 사람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불확실하다'와 '알 수 없다'이다. 그래도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을 찾아서 꾸준히 영주권 취득을 위해 요건을 채워가라는 내용이다. 취득 요건에 해당하는 직업군과 전공은 정해져 있는데, 인원수를 맞추기 위해 매년 돌아가면서 배제하거나 허용한다고 한다. 취득 요건이었던 직업군이나 전공이 영원히 배제되는 경우는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식으로 설명회가 이어진다.

 

 불확실성이 높으니, 설명을 들은 학생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그는 이 광경을 보면서, 호주에 살고자 하는 이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한다. 한국의 여느 대학교 입시 설명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직 설명회가 끝나지 않았지만, 방장은 봐야 할 것은 모두 봤다며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짧은 시간 안에 요점을 파악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취해가는 방장의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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