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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165 - 홀덴 렌트카

 어느새 넷째 날이 밝는다. 긴 줄 알았던 가족 여행이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캠리 고장으로 인해서 도심 일정을 앞당기고 차가 필요한 일정은 뒤로 미뤘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 그와 가족들은 그레이트 오션 로드보다는 조금 가까운, 필립 아일랜드를 먼저 가고자 한다.

 

 캠리에서 연기가 피어나긴 하지만, 그는 아직 캠리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번 가족 여행에서 캠리가 될 수 있는 데까지 함께 달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3시간 거리인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무리더라도, 그보다 조금 짧은 필립 아일랜드까지는 캠리로 다녀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을 품고 있다. 그가 캠리로 필립 아일랜드를 가자고 말하니, 아버지가 말린다. 그의 캠리로는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는 캠리 외에는 아예 생각을 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여행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아버지는 너무나도 간단히, 렌트카를 이용하자고 말한다. 만일 이때 아버지가 그를 말리지 않았다면, 그는 기어이 캠리를 운전해서 필립 아일랜드로 출발했을 터다. 그랬으면 그와 가족들은 도로 한가운데에 서서,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을 뻔했다.

 

 

 그는 렌트카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시야가 트이는 느낌이다. 재빨리 핸드폰으로 검색해보니, 마침 숙소 가까운 지점에 저렴한 가격의 차량이 있다. 즉시 예약을 하고, 렌트카 지점으로 향한다. 그의 아버지도 동행한다.

 

 그와 아버지는 숙소에서 나와, 도로를 따라 걷는다. 도로를 다니는 차량이 많다. 숙소 주변의 다리를 건너, 언덕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렌트카 지점이 나온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옆머리만 남은 중년의 백인 직원이 카운터에서 안경을 쓰고 컴퓨터를 보고 있다. 그와 아버지가 다가가서, 차를 렌트하러 왔으며 예약했다고 말한다. 직원은 모니터를 잠시 검색하더니, 예약 내역을 확인한다. 그는 중형 세단을 2박 3일, 보험을 포함해서 예약했다. 이런저런 서류에 싸인한 후, 직원이 따라오라고 말한다. 직원을 따라 바깥 주차장으로 나간다. 역시 렌트카 지점이라 차량이 많다. 대부분의 차량은 하얀색이며, 소형 스파크 차량이 많이 보인다. 직원은 그와 아버지를 구석에 있는 차량으로 안내한다. 그와 아버지는 직원이 가리키는 차를 보며 각각 감상이 다르다.

 

 

 직원에게 안내받은 차는, 번쩍번쩍 빛나는 빨간색 홀덴 차량이다. 그는 차량 브랜드가 홀덴이라는 점이 놀라우면서도 마음에 든다. 홀덴은 호주산 브랜드다. 그는 의미 부여를 좋아한다. 호주 가족 여행에서 호주산 브랜드 차량을 타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다. 그가 의미 부여를 하는 동안, 그의 아버지는 차량의 색깔이 빨간색인 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와 아버지는 번쩍번쩍 빛나는 빨간 홀덴 차량을 타고 숙소로 향한다. 숙소에 도착할 즈음 아버지가, 호주에 와서 이런 빨간 자동차를 다 타본다고 말한다. 그는 순간 당황해서, 지금이라도 다시 가서 바꿀 수 있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괜찮다고 한다. 그는 홀덴이라는 브랜드에 열중해서, 빨간 색상에 대해 어떠한 의견도 품고 있지 않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만일 한국이었다면, 또 자차였다면, 이런 빨간 차를 선택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호주에서, 렌트카로 잠시 타는 차량이었으므로 번쩍번쩍 빛나는 빨간색도 평상시보다는 거부감이 덜 느껴진 듯하다. 평상시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것들을 여행지에서는 열린 마음으로 해보는 셈이다. 아버지의 말투도, 차량 색상이 독특하다는 것이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와 가족들은 2박 3일 동안 빨간 홀덴 차량과 함께한다.

 

 

 차가 생겼으니, 곧바로 여행을 시작한다. 그와 가족들의 목적지는 필립 아일랜드다. 필립 아일랜드는 야생 펭귄이 유명한 관광지다. 필립 아일랜드에 가서 펭귄들을 보고 돌아올 계획이다. 그런데 필립 아일랜드로 가는 길에, 모닝턴 반도가 있다. 그는 조금 돌아가더라도, 모닝턴 반도 끝자락에서 드넓은 바다를 한 번 보고 필립 아일랜드로 가는 경로를 설정한다. 이로 인해 오히려 총거리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보다 길어졌고, 가족들도 차 안에서 약간 피로해한다. 결과적으로 그의 판단 미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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