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아일랜드에서 숙소까지는 다시 2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며, 그의 가족은 아직 저녁 식사를 하지 못했다. 그는 지친 가족들이 잠시 휴식도 취할 겸, 저녁을 먼저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필립 아일랜드 내에, 음식점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한다. 해는 완전히 저물어서 하늘이 새까맣다. 그는 레스토랑 중, 노란 조명으로 빛나는 가장 비싸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가족들을 데려간다.
외양도, 내부 인테리어도 꽤 고급 식당 느낌이 난다. 그의 가족들이 들어선 순간부터, 구릿빛을 띤 피부의 금발 웨이트리스가 그와 가족들을 담당한다. 웨이트리스의 복장은 각진 유니폼이 아니라 검은 티셔츠에 앞치마를 두른 캐쥬얼한 모습이다. 캐쥬얼하지만, 편안하면서도 깔끔한 복장이다. 테이블의 하얀 테이블보 위에 냅킨, 휴지, 포크와 칼 등이 준비되어 있다. 그와 가족들은 앉아서 메뉴를 고른다.
그는 지친 가족들을 위해, 메뉴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이든 드시라고 말한다. 하지만 메뉴판은 영어로 되어 있는 데다가 사진이 없으며, 가격도 30불대로 약간 높다. 가족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그가 나서서 메뉴를 추천하기 시작한다. 그는 연어 스테이크, 파스타, 새우구이를 추천한다. 모든 메뉴에는, 호주인들의 밥인 감자튀김이 함께 나온다. 가족들은 그가 추천대로 주문한다. 웨이트리스가 주문을 받다가, 알러지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는 철판요리 레스토랑에서 했던 웨이터 일이 떠오른다. 그의 가족들은 알러지가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하지만, 그래도 확인차 가족들에게 물어본다. 역시나 그와 가족들은 생선, 견과류, 글루텐 등 식재에 알러지가 전혀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온다. 이 레스토랑은 플레이팅에 신경을 쓴다. 음식들은 네모 각진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소스 등이 묻지 않게 마지막에 접시 가장자리를 닦은 것으로 보인다. 둥근 볼에 나온 파스타를 제외하고, 연어 스테이크와 새우는 모두 네모 접시에 담겨 나온다. 깔끔하게 담겨 있으니, 음식 맛은 나름 괜찮게 느껴진다. 연어 스테이크는 전형적인 피시 앤 칩스에서 생선 튀김을 연어 스테이크로 대체한 것이다. 샐러드, 수북이 쌓인 감자튀김 위에 연어 스테이크가 올라가 있다. 파스타는 미트볼이 들어간 토마토 파스타다. 다른 메뉴가 전부 해산물이니, 파스타는 토마토 소스와 미트볼로 주문했다. 그와 가족들은 조금 늦은 저녁 식사를 한다. 그는 식사를 하며, 연어 스테이크와 파스타는 마음에 든다. 하지만 새우 구이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가 상상했던 것에 비해 양이 너무 적다. 양은 적은데, 가격은 다른 메뉴와 비슷하다. 그는 속으로, 연어 스테이크와 파스타는 성공이지만 새우구이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와 가족들은 식사를 하면서,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에도 자리에서 펭귄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잠시 화장실을 갔다가 나오던 길에 웨이트리스와 마주친다. 웨이트리스는 식사가 어떻냐고 묻고, 그는 아주 좋다고 답한 뒤 그의 말문이 터진다. 그는 웨이트리스에게, 자신도 프랭스턴에서 웨이터 일을 하고 있다느니, 지금은 가족들이 여행을 와서 잠시 쉬고 있다느니, 펭귄을 보았다느니 등 구구절절 말을 한다. 웨이트리스는 그러냐며, 웃으며 들어준다. 돌이켜보면, 이때의 그는 혼자 신나서 웨이트리스를 붙잡고 자랑하듯 떠벌렸을 뿐이다. 웨이트리스가 말을 걸어주길 기다렸다가, 이때다 싶어 자랑을 한 느낌이 없지 않다. 조금 창피한 일이긴 하지만, 그는 이 정도로 가족과의 여행이 즐거웠고, 신이 난 상태였다.
식사가 끝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숙소를 향해 차를 몬다. 하지만 숙소를 가기 전에, 들를 곳이 또 있다. 늦은 밤이지만, 가족들은 그가 지내던 나레 워른에 가볼 생각이다. 그도 자신이 지내던 장소를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나레 워른은 볼 것이 없어 굳이 시간을 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필립 아일랜드는 멜버른 남쪽에 위치해 있으니, 나레 워른 쪽을 거쳐가는 경로다. 그는 시간이 너무 늦어 그냥 숙소로 가자고 했지만, 가족들은 나레 워른을 한 번 가보자고 한다. 시간은 자정이 되어가고 깜깜해서 볼 것도 없다. 그는 생각하다가, 자신이 매일같이 드나들던 K-MART가 생각난다. 나레워른 K-MART는 24시간 운영한다.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자신이 매일같이 드나들며 재고 떨이 행사를 찾아 헤매던 나레 워른 K-MART에 들어선다. 항상 그 혼자서 왔던 장소인데, 가족들과 함께 오니 어색하면서도 신기하다. 그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돌아다니던 경로대로 안내를 한다. 시간이 너무 늦어 K-MART를 제외한 식료품점과 푸드 코트 등은 모두 닫았다. 그는 K-MART의 의류, 작업화 코너 등등을 가족과 함께 돌아본다. 부모님은, 그의 캐리어가 너무 작으니 큰 것을 사야 되지 않냐고 물으며 캐리어 코너로 향한다.
부모님을 따라 캐리어 코너를 살피긴 하지만, 그는 캐리어를 살 생각이 없다. 그는 자신과 함께 역경을 해쳐온 조그만 캐리어에 정이 들었고, 굳이 새로운 캐리어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았고, 굳이 커다란 캐리어를 사서 자신이 추구하는 빠른 이동성을 저하시킬 생각도 없다. 그의 부모님은 이런저런 캐리어를 들어보고 가격을 살핀다. 가격도 100불이 넘는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캐리어를 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가 항상 드나들던 K-MART, 그가 지내온 나레 워른이지만 막상 가족들에게는 보여줄 게 마땅치 않다. 시간이 너무 늦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햇살 좋은 낮에 왔다고 해도 나레 워른은 볼 것이 많은 동네가 아니다. 그는 나레 워른을 제대로 보여드리고 싶지만, 그에게 나레 워른은 하루 만에 본 곳이 아니라 장기간 살면서 점차 익숙해진 곳이다. 이를 제대로 보여드릴 묘안이 없어, 그와 가족들의 나레 워른 방문은 K-MART에서 싱겁게 끝난다.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되어간다. 가족들을 공항에서 픽업했을 때와 비슷한 시간이다. 긴 여정에 지쳐서, 다들 씻고 잠자리에 든다. 피곤하긴 하지만, 필립 아일랜드에서 무사히 펭귄을 본 것에 의의가 크다. 그는 잠에 들기 전, 구글 맵으로 내일의 경로를 확인한다. 아직 굵직한 일정이 하나 더 남아있다. 자고 일어나서 시작될 그레이트 오션 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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