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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166 - Philip Island

 빨간 홀덴 렌트카를 타고, 멜버른 남부를 향해 차를 몬다. 멜버른 남부에는 커다란 반도가 있는데, 이 반도를 Mornington Peninsula(모닝턴 반도)라고 부른다. 그는 가족 여행을 계획할 때, 구글 맵에서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봤다. 모닝턴 반도 끝자락, Point Nepean이라는 곳이 마음에 들었다. 들어가는 길목이 점점 좁아져, 가장 끝에 다다르면 거의 4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장소다. 그는 이 장소에서 가족들과 함께 바다를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Point Neapen이 어떤 장소인지는 알아보지 않고, 구글 맵 사진으로 보이는 경치만 본다.

 

 그는 조금 무리를 해서, 가족들을 이끌고 모닝턴 반도를 들렸다가 필립 아일랜드로 가는 경로를 짠다. 모닝턴 반도는 필립 아일랜드로 가는 길 중간에 있긴 하지만, 우회해야 한다. 그가 굳이 모닝턴 반도를 일정에 집어넣어, 그냥 필립 아일랜드로 갈 때보다 1시간 이상 운전 거리가 늘어난다. 그는 여행을 계획할 때, 모닝턴 반도에 아예 하루를 배정할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했고, 그 정도의 가치를 지닌 장소라 생각하지 않아 필립 아일랜드와 일정을 합쳤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특히 그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많이 한다. 가족들과 계속 함께 있긴 했지만,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숙소에서도 계속해서 정리할 것이 많았다. 몇 시간 차를 타게 되면서,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할 시간이 생긴 것이다. 어머니는 시드니에서 어떤 여행을 했는지 자세히 이야기한다. 그는 전화로 들어 대강은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 듣는 것은 처음이다. 가족들은 오페라 하우스, 하버 브릿지, 시드니 성당도 다녀왔다. 그는 시드니 성당은 가보지 못했다. 시드니에서도 그의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보타닉 가든이다. 

 

 멜버른 보타닉 가든이 도심과 붙어있듯이, 시드니 보타닉 가든도 오페라 하우스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어머니는 식물을 좋아해서, 한국에서도 꽃과 나무 사진을 많이 찍으며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꽃이다. 이번 호주 가족 여행에서, 어머니는 가족들 중 가장 표정이 밝다. 어느 곳을 가도 미소가 떠나질 않고, 가족 중에서도 가장 빨리 일어나 나가자고 한다. 어머니가 여행을 좋아하시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행복해하시는 모습은 처음 봤고 그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약 2시간을 운전해서 모닝턴 반도 끝자락 Point Neapen에 도착한다. 그가 구글 맵에서 보았던, 초록색 잔디밭과 파란색 바다 수평선이 펼쳐진 곳이다. 구글 맵으로 보았을 때도 아름다운 경치였지만, 실제로 보았을 때의 감상에는 훨씬 못 미친다. 그와 가족들은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여러 장 찍는다. 넓은 대지에, 여기저기 건물들이 있다. 건물들은 오래됐으며, 과거의 유산을 보존한 것처럼 팻말에 여러 안내말이 쓰여 있다. 아버지는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 곳곳의 안내판을 읽어보니, Point Neapen이라는 장소는 사실 군사 시설이었다. 산책로를 걷다가 바닷가 쪽으로 나가면, 녹슨 포와 시멘트로 만든 포대가 있다. 붉은 벽돌로 높은 굴뚝까지 올려서 지은 건물도 있는데, 포로 격리 수용소다. 오래되었음에도 녹물 때문인지 붉은 색깔은 크게 바라지 않았다. 붉은 벽돌의 격리 수용소는, 영화에서나 보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연상케 한다. 

 

 군사 시설이었지만, 현재는 관광용으로 쓰이고 있다. 격리 수용소를 제외한 다른 건물들, 병사들이 쉬던 하얀 건물들은 내부를 수리하고 개조해서 현재는 관광객들을 위한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그는 당시에는 군사 시설이라는 점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았으나,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가족 여행으로 썩 적절한 장소는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쨌든 Point Nepean은 거쳐가는 장소일 뿐이다. 그와 가족들은 잠시 시간을 보낸 뒤, Philip Island로 여행을 계속한다.

 

 

 그는 자동차로 3시간 거리를 별 것 아닌 듯 느꼈다. 아침 8시에 출발하면 11시에는 도착할 것이고, 조금 밟으면 10시 반에도 도착할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장시간의 운전은 집중력과 주의를 요하기 때문에 피곤하다. 지도에서 3시간 거리라고 하면, 실제로는 3시간 반에서 4시간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 생각보다 도착 시간이 지연되면서, 가족들의 피로가 누적된다. Point Nepean에서도 시간을 보내서,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한다. 만일 필립 아일랜드에 도착했는데 너무 늦어 펭귄을 볼 수 없다면,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피곤한지 뒷자리로 옮기고 동생이 조수석에 있다. 동생이 검색을 해보니, 정말 다행히도 펭귄은 늦은 시간이 되어야 볼 수 있다. 펭귄들은 바다에서 하루를 보내고, 밤에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는 필립 아일랜드 일정을 계획해놓고서는, 이런 기본적인 내용조차 모르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 지연되어, 그와 가족들이 필립 아일랜드에 도착해서 주차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었다. 그는 마음이 급하다. 여기까지 왔는데 펭귄을 못 보고 돌아갈 수는 없다. 주차하자마자 그와 동생은 매표소를 향해 뛰고, 부모님은 천천히 걸어온다. 주차장에는 이미 차가 가득 차 있는데, 주차장에서 매표소까지의 거리도 상당하다. 그와 동생이 황급히 달려 매표소에 도착한다. 그는 다급하게, 지금 티켓을 구매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다행히도 펭귄들이 집에 돌아오는 늦은 저녁때까지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필립 아일랜드의 펭귄은 야생 펭귄이다. 동물원처럼 우리에서 사육되는 펭귄이 아니다. 티켓을 구매하고 매표소를 지나도 야외다. 관광객들은 넓적한 나무로 만들어진 도보와 난간을 따라 걷는다. 관광객들이 걷는 이 나무 데크는, 지면에서 약간 떠 있다. 나무 데크는 넓게 퍼져 있는 펭귄들의 둥지촌 위를 가로지른다. 펭귄들의 둥지는 땅에 굴을 판 형태다. 관광객들이 밟는 나무 데크는 펭귄들의 경로와 집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 지면에서 떠 있다. 관광객들은 이 위에서 펭귄들을 구경한다. 야생 펭귄이므로 먹이를 주어선 안되며, 밤이므로 사진을 찍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그와 가족들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지 않는다. 하지만 관광객의 수가 너무 많고, 말을 듣지 않는 부류는 어디나 있다.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는 이들, 난간을 넘어가 펭귄 둥지를 밟고 사진을 찍는 이들도 간혹 보인다.

 

 그와 가족들은 티켓을 구매하고 매표소를 지난다. 한국의 상암 갈대밭이나 순천 갈대밭처럼, 관광객이 발을 내딛는 곳은 나무 데크 모양의 길이다. 나무 데크 모양의 길은, 상당히 길어서 둥지촌 구석구석까지 포진해 있다. 야간에 펭귄을 관람하는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데크 아래에는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 강한 조명이 아니다. 야생의 펭귄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조명만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어두컴컴할 정도로 조도가 낮은 노란 조명이다. 데크 아래에 설치되어 있으니, 간접 조명처럼 느껴진다. 이 어둡고 노르스름한 간접 조명 이외에는 어떤 조명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는 이 곳의 밝기가 유레카 타워의 전망대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와 가족들이 난간 한켠에 자리를 잡고 얼마 후, 펭귄들이 귀가하기 시작한다. 펭귄들은 바닷가에서 먹이를 사냥하는 등 생활을 하다가, 밤이 되면 잠을 자러 귀가한다. 펭귄의 얼굴과 등은 까맣고 배는 하얗다. 크기는 크지 않다. 키가 60cm도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 놀라운 것은 무리의 숫자다. 펭귄들은 그야말로 수십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서 뒤뚱뒤뚱 집을 향해 걸어온다.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귀엽다. 펭귄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관광객들은 서양 TV 토크쇼에서 들릴 법한 전형적인 귀여움에 대한 감탄사를 낸다. 펭귄 둥지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어떤 펭귄은 바로 코앞의 둥지에 들어가지만 어떤 펭귄은 둥지가 멀어 한참 따라가도 계속 걸어가고 있다. 펭귄들은 자신들만의 법칙이 있는지, 그가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는 둥지들 중 자신의 둥지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잘 찾아 들어간다.

 

 펭귄들은 키가 작아 시야가 좁은 것인지, 너무 오래도록 반복되어 무뎌진 것인지 관람객들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경계하지도, 다가오지도 않는다. 인간이 아예 없는 듯 행동한다. 펭귄들은 둥지에 들어가기 전, 인사를 하는 등 몇몇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중에는, 번식 행위가 포함된다. 번식 행위를 하는 펭귄에게는 카메라 플래시가 터질 확률이 더 높다. 

 

 

 그의 가족들은 차에서의 시간이 길어져서 피로한 상태였다. 하지만 야생 펭귄을 보면서 가족들은 다시 생기를 되찾는다. 야생 그대로의 조그맣고 귀여운 펭귄을 보고 있자니 신기하고 흥미가 생긴다. 가족들이 생기를 되찾은 것을 보며,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펭귄 무리는 1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떼를 지어 귀가하고 있다. 그와 가족들은 최대한 오래, 1시간 정도 펭귄들을 지켜보다가 밖으로 나온다.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매표소 건물에는 펭귄 기념품 상점이 있다. 그와 가족들은 조그만 펭귄 인형을 구입한다. 

 

귀여운 펭귄 관람이 끝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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