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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169 - Great Ocean Road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 도착했다. 호주의 관광지 중 '그레이트'가 들어가는 장소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 다른 하나는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다. 이름처럼 두 장소 모두 스케일이 크고, 명성이 높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 : 호주 남부, 해안가 절벽을 따라 300km 가까이 계속되는 해안 도로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 호주 북동부 바다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산호초 지대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멜버른이 그나마 가깝고,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는 케언즈에서 가깝다. 두 곳의 '그레이트' 관광지를 모두 갈 수 있으면 좋겠으나 거리가 너무 멀다. 그가 떠나온 브리즈번에서 북쪽으로 거의 20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니, 멜버른에서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와 가족들은 그레이트 오션 로드로 만족하기로 한다. 

 

 그는 가족 여행을 계획하던 당시, 로드 트립도 고려했었다. 커다란 캠핑카를 렌트해서, 아니면 그의 캠리를 같이 타고 다니면서 호주 이곳저곳을 다니는 여행이다. 그와 가족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줄 이색 가족 여행이 될 터다. 하지만 로드 트립의 문제는 잠자리다. 커다란 캠핑카를 렌트하더라도, 수도와 전기가 제공되는 카라반을 찾아다녀야 한다. 그의 캠리로 여행한다면, 4명이 편안히 잠을 잘 수 없으니 텐트를 구매해야 한다. 그와 동생은 불편을 감수한다 치더라도 부모님께서 잠자리가 편하지 못할 것이다. 실행에 옮기진 못했지만, 이런 구상은 훗날 그의 워킹홀리데이 일정과 여행에도 영향을 끼친다. 또한 그는, 언젠가는 캠핑카나 커다란 텐트를 구비해서,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로드 트립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호주 남부의 해안 도로다. 호주의 남부 해안선은 절벽이 많다. 해안 도로는 그 위에 위치하므로 달리면서 보이는 경치 자체가 멋있고, 중간중간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명소들이 많다. 호주 대륙을 이루는 암반의 지질학적 특성 때문인지,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절벽들을 보면 지층이 선명하게 보인다. 고층 빌딩 정도 높이의 절벽이 끝없이 이어져있고, 절벽의 단면에는 지층의 선이 촘촘하게 보인다. 오랜 세월 바다와 바람에 깎여 형성된 절벽이다. 미국의 그랜드 케니언이 해안선을 따라 계속 이어지는 셈이다. 유명한 장소에 멈춰서 경치를 볼 때마다, 장엄한 스케일에 압도당한다. 바다에서부터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으로 머리가 쉴 새 없이 휘날리고, 눈앞의 경치는 거대하다.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어 보인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가장 유명한 장소는, 12 Apostles다. 번역하면 12 사도다. 이 장소에는 호주 대륙의 절벽에서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 탑 같은 절벽 섬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하나하나 모두 높이는 호주 해안선 절벽과 높이가 비슷하다. 우뚝 솟은 절벽 섬들의 모습이, 사람의 모습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12 사도다. 예수의 12제자에서 이름을 가져온 것인데, 원래는 12개의 절벽 섬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세어보니, 12개에 못 미친다. 계속된 바다와 바람의 침식에, 12개 중 한 두 개의 절벽 섬이 무너져 없어졌다고 한다. 바닷물은 계속해서 그레이트 오션 로드 해안선의 절벽들을 침식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12명의 제자는 전부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그와 가족들은 12 사도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는다. 높은 해안 절벽 위에서는 바람이 강하게 분다. 가족들은 모두 옷을 두껍게 입는다. 햇빛은 따사로운데, 공기와 바람은 차다. 가끔 구름이 해를 가리면, 날씨는 급격히 추워진다. 12 사도를 비롯해서 그레이트 오션 로드 곳곳의 명소에는 관광객들이 많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셀카를 찍고, 옆의 관광객에게 부탁해서 가족사진도 찍는다. 거대하고 드넓은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배경으로 멋진 가족사진을 남기고 싶은데, 강한 바람으로 인해 다들 머리가 휘날린다. 한 장이라도 건지기 위해, 그는 가족들이 포즈를 취한 상태에서 최소한 5장 이상씩 사진을 찍는다.

 

 그와 가족들은 차로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쭈욱 따라가면서, 표지판에 적혀 있는 장소들은 모조리 방문한다. 시간이 하루뿐이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영영 안녕이다. 낮에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명소들을 눈에 담아야 한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는 경치 좋은 장소가 말 그대로 넘쳐난다. 차를 타고 도로를 따라 가면 거의 15분 거리마다 새로운 장소가 나온다. 메인 도로에서 빠져나와 해당 장소의 주차장에 차를 댄다. 주차장에서 걸어가며 해안 절경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이름 붙여진 장소에 도착한다. 이름이 붙여진 장소들은, 절벽과 돌의 모습이 무언가를 연상케 하는 장소들이다. 사람 모양(12 사도)이라던지, 끊어진 다리 모양이라던지, 배 모양이라던지 하는 식이다. 한국 해안가의 촛대 바위, 기도하는 사람 바위 식으로 이름 짓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이름 붙여진 장소들의 절벽과 바위들은 웬만한 빌딩 높이다.

 

 그와 가족들은 신나게 사진을 찍는다. 그야말로 대자연이 빚어낸 돌 조각품들이다. 커다란 절벽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장소도 있다. 커다란 구멍 사이로 푸른 하늘과 수평선이 보인다. 거대한 절벽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뚫린 구멍이 동굴처럼 느껴진다. 이 장소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서도 독특해서인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려 줄을 서 있다. 그와 가족들도 잠시 기다린 뒤 가족사진을 찍는다. 그는 연거푸 촬영 버튼을 눌러, 최대한 많은 사진을 남긴다.

 

 

 이름 붙여진 바위와 절벽은 모조리 들러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Port Campbell(포트 캠밸) 이라는 곳에 도착한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굉장히 길고 넓은 구간이지만, 대략적으로 아폴로 베이에서 시작해서 포트 캠밸에서 끝난다고 보면 된다. 가족들은, 이 정도면 볼 만큼 보았다고 말한다. 그의 생각도 같다. 장장 몇 시간에 걸쳐,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 아쉽다. 주변에 숙박을 잡았더라면, 하루 더 머물면서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와 가족들은 멜버른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거꾸로 역행해서 가야 한다. 그는 가족들에게 출발하기 전 마지막으로 12 사도를 한 번만 더 보자고 말한다. 

 

 12 사도를 보기 위해서는 주차장에서 꽤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 그와 가족들은 12 사도에서 이미 사진을 많이 찍었기 때문에 굳이 다시 산책로를 걸어 들어가서 볼 생각은 없다. 주차장의 먼발치에서도 12 사도의 절벽들이 보이기는 한다. 그와 가족들은 주차장 주변을 돌아다니며,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전반적인 풍경과 수평선을 눈에 담는다. 돌아다니다 보니, 주차장 뒤편에 헬기장이 있다.

 

 12 사도는 넓게 펼쳐져 있어 시야가 넓으며, 절벽들이 다른 장소에 비해 높고 많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얼굴과도 같은 12 사도를 헬기를 타고 돌아보는 상품이 있는 것이다. 그는 가족들에게, 헬기를 탈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 아버지는 가격이 비쌀 것이라고 했고, 어머니와 동생의 반응도 뜨뜻미지근하다. 그는 가족들이 탈 생각이 있다고 하면, 돈이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다. 그는 어쩔까 생각하다가 그만두고, 헬기장 주변의 푸른 초원에서 가족들과 사진을 찍는다. 훗날 이때를 돌이켜보았을 때, 그가 더 밀어붙여서 가족들과 함께 헬기를 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구경하면서, 바다 한가운데에 떨어져 있는 높은 절벽 섬들에 흥미를 느낀다. 절벽 섬들은 호주 대륙과 떨어져서, 바닷물과 바람의 침식을 견디며 버티고 서 있다. 관광객은 당연히 접근이 불가능하며, 가끔 새 몇 마리만 절벽 꼭대기에 앉아 있다. 그는 이 동떨어진 절벽섬 꼭대기에 가고 싶다. 어릴 적부터 그는 동물이 되는 상상을 하면, 항상 새가 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커다란 새가 되어, 아무도 다가갈 수 없는 바다 한가운데의 절벽 섬에 홀로 날아가 독차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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