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아일랜드에 이은 두 번째 굵직한 일정, 그레이트 오션 로드다. 필립 아일랜드와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그와 가족들이 이번 멜버른 여행에서 반드시 가야겠다고 생각한 장소들이다. 전날 필립 아일랜드 다녀온 일을 교훈 삼아, 그와 가족들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준비를 시작한다. 하루를 전부 그레이트 오션 로드 관광에 쏟을 계획이다. 냄비에 끓여둔 짜장, 밥, 김치로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한다.
숙소에서 그레이트 오션 로드까지는 3시간 거리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 자체가 해안 도로이기 때문에,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한 번 돌아보는 것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왕복 6시간에,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보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시간이 촉박하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곳곳에 볼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가 구글 맵으로 검색해보니,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서는 10분마다 색다른 절벽과 경치가 펼쳐진다.
그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 여행을 계획하면서, 그레이트 오션 로드 근방에서 아예 하루를 묵을 생각을 했었다. 하루 만에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전부 구경하고 왕복하기엔 촉박하다. 차라리 하룻밤을 근방에서 묵으며 여유 있게 관광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화통화에서 가족들은 그의 의견에 반대했다. 숙소를 하루 더 잡아야 하기 때문에 경비가 늘어나는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더 큰 이유는 잠자리였다. 그는 백패커스에서도 생활해보고 이사도 많이 해보았기 때문에 하루 정도 불편하게 자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잠자리가 중요하다. 하루를 묵더라도, 헤어드라이어 / 세면도구 / 조리 도구 / 여벌의 옷 등이 필요하다. 그는 하루 정도는 억지로 몸을 구겨서 잘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 숙소를 하루 더 잡는다면, 대규모 이사를 해야 할 판이었다. 그와 가족들은 상의 끝에, 그레이트 오션 로드 일정을 당일치기로 잡는다.
그와 가족들은 씻고 아침을 먹은 뒤 바로 출발한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캠리와 빨간 홀덴 렌트카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다. 그와 가족들은 원래대로라면 하나의 차량만 주차할 수 있으나, 며칠간 관찰해보니 옆자리에 차가 주차되는 일이 전혀 없다. 그래서 그냥 렌트카를 옆에 주차했다. 2박 3일만 주차하면 되니 별일 없을 것이다. 그와 가족들은 당연히 빨간 홀덴 렌트카에 탑승한다. 그는 탑승하면서, 캠리를 한 번 본다. 캠리가 함께 그레이트 오션 로드까지 갔으면 좋았겠지만, 지금 캠리의 상태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렌트카에 탑승한다.
빨간 홀덴 렌트카는, 연식이 얼마 안 된 새 차량인 듯하다. 번쩍번쩍 빛나는 외관도 그렇고, 계기판 관련해서도 옵션이 많다. 터치 스크린 네비게이션은 물론이며, 운전자의 시야에서 앞유리창에 보이는 속도 표시기가 있다. 원래 차량에는 핸들 뒤 계기판에 rpm, 연료등, 속도계가 있다. 하지만 계기판의 속도계는 바늘로 눈금을 표시하기 때문에, 정확한 속도는 눈금을 보고 어림짐작해야 한다. 이 차량에는 앞유리에 속도를 숫자로 표시해주는 옵션이 달려 있다. 앞유리 아래 어딘가에 장치를 달아, 앞유리에 속도가 반사되어 보인다. 숫자로 표시되기 때문에, 1km/h 단위까지 볼 수 있다. 그는 재래식 캠리가 첫 차량이었고 익숙했기 때문에, 이 옵션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그의 아버지가 운전을 하다가 이 옵션을 눈치채고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는 기술의 발전 속도에 놀란다.
중간 지점의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휴게소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타이어압을 점검한다. 캠리는 항상 앞바퀴의 바람이 빠져있었는데, 렌트카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 없다. 호주의 주유소에는 차량 유리창을 닦을 수 있는 핸드 와이퍼가 물통과 함께 구비되어 있다. 가벼운 무게의 핸드 와이퍼로 앞 쪽에는 고무가, 뒤쪽에는 스펀지가 달려 있다. 핸드 와이퍼를 물통에 담가 스펀지를 적신다. 스펀지의 물기로 유리창의 흙먼지 등을 촉촉하게 닦은 뒤, 핸드 와이퍼를 돌려 잡고 물기를 제거한다. 물방울들이 고무에 쓸려 말끔하게 제거되면서, 유리창이 깨끗해진다. 그와 아버지는 앞, 뒤, 옆 유리창을 전부 깨끗하게 만든다. 도심에서 빠져나오면서, 건물이 점점 없어지고 목초지와 드넓은 하늘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쌓인 먼지를 닦고, 깨끗한 유리창을 통해 경치를 더 생생하게 볼 생각이다.
주유와 유리창 세척을 끝내고 나니 조금 배가 고프다. 마침 휴게소에는 편의점과 헝그리 잭스가 있다. 그와 가족들은 구경하다가, 간식거리 겸 점심을 조금 산다. 헝그리 잭스 햄버거 몇 개, 세븐 일레븐 커피와 과일, 그는 미트 파이를 구매한다. 그가 미트 파이를 먹으니, 가족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본다. 들어보니, 가족들은 시드니의 한 빵집에서 미트 파이를 구매했다가 입맛에 맞지 않아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가족들의 말을 듣고서야, 그는 처음 미트 파이를 먹었을 때가 떠오른다. 그가 미트 파이를 처음 먹었을 때는, 미처 밥을 먹지 못하고 일터로 향하던 중 급하게 세븐 일레븐을 들렀던 때다. 든든한 것을 먹고 싶은 그의 눈에, 마침 할인을 하고 있는 미트 파이가 보인다. 그는 미트 파이가 무엇인지 몰랐다. 이름대로 고기가 들어간 빵이겠거니 생각한다. 원래는 15불인데 할인해서 7불 가격표가 붙어 있다. 그는 왠지 이득을 본다는 생각으로 미트 파이를 구매한다.
그는 일터로 향하며, 미트 파이를 한 입 베어 문다. 그런데 맛이 조금 이상하다. 그는 일반적인 고기가 든 빵을 예상했는데, 고기가 질척하다. 탕수육 소스같이 미끌거리는, 알 수 없는 점액질이 많다. 형체를 잘 알아볼 수 없이 끈적하고 말랑말랑한 갈색의 고기다. 식감도 식감이지만, 맛도 오묘하다. 형용할 수 없는 향에, 달달한 듯하면서도 신 맛이 섞여 있다. 기분 좋은 신 맛은 아니다. 속이 좋지 않을 때, 위산이 역류할 때 느껴지는 토사물의 신 맛과 비슷하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말랑거리면서도 점액질의, 오묘한 향과 함께 달달하면서도 시고, 갈색의 고기가 바삭한 크라상 같은 빵 안에 들어있다. 도무지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는 돈을 지불했으니 남기지 않고 다 먹어버린다. 후에 다시 세븐 일레븐을 방문했을 때도 미트 파이가 세일 중이다. 그는 썩 내키진 않지만, 값이 싸고 가장 식사에 가까운 미트 파이를 구매한다. 여전히 이상하지만, 처음 먹을 때보다는 거부감이 덜하다. 이때부터 그는 가끔씩 미트 파이를 먹곤 했다.
가족들은 미트 파이의 식감과 향에 거부감이 심했다고 한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호주 미트 파이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꽤 유명하다. 그의 경우, 지불한 돈에 대한 아까움 / 배고픔 / 철저한 무지로 인해 미트 파이를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미트 파이가 전혀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또 못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트 파이와 더불어, 호주 음식 중에서는 생소한 것들이 몇몇 있다. 철저한 무지와 무지로 인한 용감함으로 무장한 그조차도 도저히 먹을 수 없던 음식이 있으니, 바로 베지마이트다. 베지마이트는 마트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으며, 잼처럼 병에 담겨 있다. 끈적끈적한 점도와 유리병을 보면 잼과 거의 유사하다. 하지만 베지마이트의 맛은 잼과는 전혀 다르다. 잼은 달지만, 베지마이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짜고 쓰다.
베지마이트는 야채즙, 소금 등으로 만든 일종의 잼으로, 색깔도 새까맣다. 호주인들은 베지마이트를, 잼처럼 식빵에 발라 먹는다. 그는 언젠가 베지마이트를 맛볼 기회가 있어서 맛보았는데, 뱉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에게 베지마이트는, 이 세상 모든 짠맛과 쓴맛을 농축해놓은 맛이다. 바닷물보다도 더 짠 듯한, 무슨 맛으로 먹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맛이다. 물론 바닷물과는 조금 다르다. 어마무시한 짠맛 한켠에, 쌉싸름한 씀바귀 비슷한 야채 느낌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도 미약하며, 짠맛은 너무 강하다. 너무 짜서 쓴 것인지, 너무 써서 짠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는 베지마이트를 맛본 순간, 이 음식은 몇 번을 맛보더라도 익숙해지는 것이 불가능하리라 확신한다. 만일 익숙해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굳이 그러고 싶지 않은 맛이다. 그래서 그는 이후 베지마이트를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가끔씩 베지마이트를 빵에 발라먹는 이들을 보면, 그는 베지마이트의 악몽이 떠올라 눈을 돌리곤 했다.
미트 파이, 햄버거, 과일, 세븐 일레븐 커피 등을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선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멜버른 서남쪽의 해안 도로이며, 가장 가까운 주거지는 아폴로 베이다. 멜버른에서 멀어질수록,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 가까워질수록 목초지와 푸른 하늘이 더 명료하게 보인다. 필립 아일랜드로 운전할 때와는 다른 느낌, 청량한 느낌의 드라이브다. 가족들도 차창 밖의 풍경을 즐기고 있다. 3시간 거리지만, 청량하고 탁 트인 풍경을 보면서 운전하니 덜 지친다.
길은 크고 작은 초록 언덕들을 오르내린다. 안개가 살짝 껴 있고, 언덕들은 이슬과 안개에 젖어서인지 연초록색이 아닌 진한 초록색이다. 안개와 진한 초록색 언덕의 조합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언덕들이 촉촉하고 시원할 것이라는 느낌을 받게끔 한다. 언덕을 오르내릴 때마다, 끝없이 펼쳐진 다른 언덕들이 보인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 가까워질수록, 언덕의 수가 줄어들고 수평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와 가족들을 태운 차가 마침내 마지막 언덕을 오른다. 더 이상의 언덕이 보이지 않고, 저편의 수평선이 명료하다. 다시 언덕을 내려가니, 길이 삼거리가 나오며 길이 세 갈래로 갈린다.
왼쪽 화살표 방향의 안내판에 그레이트 오션 로드라고 적혀있다. 좌회전을 해서 왼쪽으로 나아간다. 언덕의 아래이기 때문에, 주위 언덕에 가려 시야가 좁다. 왼편으로 가며 마지막 언덕이 사라지자, 시야가 트이면서 수평선을 가리는 것들이 일시에 사라진다. 언덕을 오르내리며 언덕 사이사이로 봤던 짧은 수평선이 이제야 끊기지 않는 직선이 된다. 도로는 높은 절벽 위에 위치하기 때문에, 모래사장이 전혀 없다. 높은 지대의 강한 바닷바람과 끝없는 수평선만이 존재한다. 그와 가족들은 그레이트 오션 로드 초입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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