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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175 - 공항, 작별

 윌리암스타운을 벗어난다. 공항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멜버른 중심부의 쇼핑센터를 들린다. 비행기 시간과 수속 등을 고려했을 때, 시간이 많지는 않다. 가족들은 호주의 쇼핑센터를 마지막으로 눈에 담는다. 눈에 담던 중, 어머니가 유기농 식품을 판매하는 상점을 발견한다. 해당 상점에서, 어머니는 아보카도 기름과 굵은소금을 구입한다. 천연 유기농이며, 소금은 무슨 돌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유기농이어서인지 포장도 옅은 갈색의 종이 박스에 실로 묶어 놓았다.

 

 가족들이 타는 비행기 시간은 초저녁이다. 멜버른 공항에 도착할 무렵, 해가 완전히 져서 어둠이 깔린다. 그는 차를 몰면서 계속 불안하다. 캠리 때문이다. 부디 공항까지만 이상 없이 달려주길 바란다. 캠리는 그의 기대에 부응한다. 무사히 멜버른 공항에 도착해, 공항과 이어진 주차 건물로 올라간다. 아발론 공항과는 달리, 멜버른 공항은 항공편과 이용객이 많다. 당연히 공항 시설이 크고 깨끗하며, 주차장도 시멘트로 반듯하고 곱게 닦여 있다. 

 공항 주차장에 캠리를 주차하고 난 뒤에야, 그는 마음이 놓인다. 트렁크에서 가족들의 짐을 모두 내린다. 그와 가족들은 공항 안으로 향한다.

 

 

 막상 공항에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자니, 시간이 남는다. 그와 가족들은 호주에서의 마지막 간식으로, 공항 안의 헝그리 잭스를 먹고자 한다. 그는 헝그리 잭스 애용자다. 헝그리 잭스에서 가장 큰 햄버거 2종류에, 기본 메뉴인 와퍼까지 총 3개를 시킨다. 가족들은 공항 헝그리 잭스 테이블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며 비행기를 기다린다. 어머니는 햄버거가 아닌 다른 것을 시도하기 위해 헝그리 잭스 푸딩을 시켰는데, 맛이 별로라고 한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그는 별로 말이 없다.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다. 가끔 웃으며 이야기하긴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그저 멍하다. 공항에 온 상황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

 

 가족들은 그에게, 몇 달 뒤에 보자고 말한다. 지금 그냥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묻지만 그는 고개를 젓는다. 아버지는 그에게, 렌트했던 빨간 홀덴 차량은 얼마 정도 하느냐고 묻는다. 그가 생각하기에 정확하진 않지만, 적어도 3만 불(약 2500만원)은 넘을 것 같다고 답한다. 아버지는, 3만 불짜리 차를 사주면 타다가 팔고 오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아버지의 말에 그는 손사래를 친다. 너무 큰 금액이고, 호주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부모님 손을 벌릴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에 그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는 그에게, 어머니가 봉투를 쥐어준다. 가족들이 호주 여행을 하고 남은 돈이라고 한다. 어차피 다시 가져가서 환전하면 손해를 보니, 그가 갖고 있다가 쓰려면 쓰고 아니면 저축하라는 것이다. 그는, 이 봉투를 거절할 명분이 없어 받는다.

 

 

 시간이 됐다. 그와 가족들은 출국 심사장 앞에 서 있다. 그는 긴 터널같이 생긴 출국 심사장 경계선을 넘어갈 수 없다. 가족들은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각각 캐리어와 가방을 들었고, 그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작별 인사를 나눈다. 손을 흔들며, 가족들은 천천히 출국 심사장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이 순간을 회피하려는 것인지, 기록하려는 것인지,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는다.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보이지 않게 된 후에도 얼마 동안 자리를 지킨다. 

 

 그는 커다란 스크린 앞에 앉는다. 가족들을 태운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비행기 이륙이 갑자기 지연되거나 미뤄지면 가족들이 하룻밤 더 머무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는 스크린과 창문 밖 비행기를 번갈아 바라본다. 

 

 다행히도 비행기에 문제가 없다. 가족들을 태운 비행기는 예정대로 이륙한다. 그는 이륙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주변이 보인다. 출국 심사장 앞에는 작별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족이나 연인으로 보인다. 손잡고 웃으며 즐겁게 걸어오던 사람들은, 심사장 앞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껴안고서, 얼굴이 빨개지도록 운다. 그는 외국인들이 우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이 모습이 신기하다. 그는 출국 심사장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외국인들을 구경한다.

 

 

 출국 심사장 앞에서 외국인들을 구경하다가, 주차장으로 향한다. 머리가 멍하다. 머리가 멍하다고 느껴진다. 일주일간 같이 있던 가족들이 없고, 일주일간 계속 듣던 가족들의 목소리도 없다. 머리가 멍한 것인지, 갑자기 너무 조용해져서 멍하다고 느끼는 것인지 헷갈린다. 멍한 머리로 그는 오직 한 가지만을 생각한다. 캠리가 주차된 기둥의 번호다. 그는 고요함 속에서, 기둥의 번호만을 외우며 주차장으로 향한다.

 

 캠리는 기둥 옆에 그대로 서 있다. 캠리에 타서 문을 닫자, 깊은 한숨이 나온다. 머리가 멍해서 생각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 핸드폰으로 나레 워른의 이전 집을 검색한다. 아버지가 주고 간 핸드폰은, 이전 값싼 핸드폰과는 달리 네비게이션이 잘 돌아간다. 그는 캠리를 몰아 주차장 밖으로 나가, 네비게이션 안내를 따라간다.

 

 실감이 나질 않는다. 주변이 고요한 것을 보니 맞는 것 같다. 가족들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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