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공항에서 멜버른 중심부를 통과해서 외곽인 나레 워른으로 간다. 공항과 멜버른 중심부는 가로등과 불빛이 많아 반짝인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불빛이다. 멜버른 중심부를 벗어나 외곽으로 빠지자, 가로등과 불빛이 급격히 감소하고 새까만 어둠이 깔린다.
운전을 시작하자, 멍하게 느껴졌던 그의 머리에서 여러 감정이 일시에 피어나기 시작한다. 감정을 추스르는 데는 도심의 불빛들보다 외곽의 어둠이 효과적이다. 어둠 속에서 핸드폰 네비게이션과 캠리 라이트만 바라보며 운전하니, 날뛰던 감정들이 조금은 진정된다. 하지만 진정되기가 무섭게, 어둠은 역효과를 일으킨다. 밝고 빛나던 도시에서 어두컴컴한 외곽으로 나온 것이, 가족들과 함께 있다가 혼자가 된 자신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진다. 가족들을 무사히 공항까지 바래다주었으니, 캠리는 맡은 바 임무를 다했다. 그는 캠리가 당장 시동이 꺼져서 멈춰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캠리는 아직 힘이 남아 있다.
그는 나레 워른의 숙소에 도착한다. 일주일 전 모든 짐을 챙겨서 나왔던 숙소다. 집주인이 정말 그를 위해서 일주일간 방을 비워둔 것인지, 일주일 동안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어느 쪽이든 그에게는 잘 된 일이다. 몇 달 동안 살던 집이니, 집주인은 대면 과정을 생략한다. 그는 일주일 전에 했던 것처럼 평범하게 방으로 들어간다. 방은 그가 쓸고 닦았던 모습 그대로다.
이전부터 그는 나레 워른의 이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좋았지만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데, 집은 어둡고 춥기 때문이다. 다들 빨리 자는지, 밤에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도 거의 없다. 가족들의 비행기가 이륙한 때가 벌써 깜깜했으므로, 그가 도착한 시간은 밤이다. 가족들 없이 혼자 집으로 들어가면서, 그는 자신이 폐가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감정이 복잡해서 그는 기분이 좋지 않다. 늦은 밤, 다른 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방에 들어와서 캐리어와 배낭을 던져두고 침대에 앉는다. 순간 그의 눈에, 한 쪽지가 보인다. 침대 옆 책상 위, 두 개의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하나는 와이파이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 적혀 있다.
Welcome back 韓國 (Korea) boy :)
쪽지 아래에는 집주인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는 집주인의 쪽지를 보자, 웃음이 난다. 아마도 집주인은 다른 세입자를 구하지 않고 일주일간 그를 기다린 듯하다.
집주인의 쪽지 덕에 조금 안정이 된다. 그는 비행기를 타고 가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한다. 호주 남부인 멜버른에서 인천까지는 직항이 없다. 가족들은 중국 공항을 경유해서 12시간이 넘게 비행한다. 도착하면 이른 아침이나 새벽일 것이다.
침대에 누워, 가족들과 함께 한 일정을 떠올린다. 너무나도 생생한 기억이다. 아쉬움도 많이 남지만, 당장 그가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은 뿌듯함과 안도다.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유명 관광지를 함께 간 것도 좋지만, 가장 뿌듯한 것은 가족들의 걱정을 덜어주었다는 점이다. 가족들은 여행도 여행이지만, 먼 타국에서 혼자 지내는 그를 보기 위해 호주까지 온 것이다. 그가 버벅거리고 어수룩한 모습을 보였다면, 가족들의 걱정을 더 키웠을 것이다. 그는 이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목표와도 연관이 있다.
그가 머나먼 호주까지 와서 혼자 이러고 있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경험들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그가 생각하는 더 나은 사람의 범주에는, 가족들의 걱정을 덜어줄 만큼 신뢰할 만한 사람도 포함된다. 그가 기억하기에, 여행 중에 가족들 앞에서 서투르고 어수룩한 모습을 보인 적은 없다. 호주에서 잘 적응하며 굳세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림으로써 가족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것, 이것이 그가 이번 가족 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이다.
가족여행이 끝나 아쉽고 서운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하다. 중요한 과제를 잘 끝마친 것 같은 기분이다. 7일이 넘는 기간 동안 온 가족이 함께한 호주 여행은 두고두고 가족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가족들에게 좋은 추억과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동시에 선사하고 싶었다. 적어도 그는 가족들과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고 좋은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부디 가족들도 그렇기를, 가족들의 걱정을 덜어드렸기를 바라는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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