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회상/호주

173 - 퀸 빅토리아 야시장

 트램 레스토랑에서 내린 뒤, 멜버른을 돌아본다. 아직 본격적으로 개장하지 않은 한낮의 카지노 건물도 가보고, 야라강변을 따라 걸으며 사진도 찍고, 전면이 유리로 된 전시회 건물 같은 곳에 들어가 앉아 쉬기도 한다. 그의 어머니가 멜버른에서 꼭 가보고 싶어 하는 장소가 있다. 퀸 빅토리아 야시장이다. 가족 여행의 마지막 밤이므로, 퀸 빅토리아 야시장을 볼 마지막 기회다. 마침 거리도 적당해서 그와 가족들은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야시장으로 향한다.

 

 석양이 질 무렵, 그와 가족들은 퀸 빅토리아 야시장에 방문한다. 그는 브리즈번 주말 시장에서 일해본 적이 있어서, 야시장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실제로 보니 다른 점이 꽤 있다. 우선 지붕이 있다. 그가 일했던 브리즈번 주말 시장은 비교적 조그마한 규모에, 지붕이 없는 야외 시장이다. 따사로운 햇빛을 즐기기고, 비가 오면 그대로 맞는 작은 시장이었다. 퀸 빅토리아 야시장은 다르다. 야시장이라는 점, 지붕이 있다는 점,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는 점이 다르다. 야시장을 품은 건물은, 구조와 지붕이 철제로 만들어져서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를 연상케 한다. 지붕 때문인지, 퀸 빅토리아 야시장은 한국의 시장과 유사하게 느껴진다. 한국의 남대문 시장, 광장 시장 등은 대부분 지붕 아래에 있는 시장이다. 다만 퀸 빅토리아 야시장의 경우는, 한국의 시장들에 비해서 폭이 엄청나게 넓다. 한국처럼 좁은 길이 골목골목 연결된 시장이 아니라, 넓은 대로에 상점들이 일렬로 서 있고 도보가 넓다.

 

 

 퀸 빅토리아 야시장이라는 이름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호주를 돌아다니다 보면 도처에서 영국의 색채를 느낄 수 있다. 호주의 대표 음식이 피쉬 앤 칩스인 것도 그렇고, 영어도 그렇고, 영국 여왕을 대하는 것도 그렇다. 호주의 역사나 사회 전반에 큰 관심과 지식이 없던 그도, 호주의 가장 대표적인 공휴일 두 날은 기억한다. 하루는 ANZAC day, 다른 하루는 영국 여왕의 생일이다. 둘 중에 의미가 더 쉽게 파악되는 휴일은 영국 여왕의 생일이다. 그는 영국 여왕의 생일을 왜 굳이 호주에서 축하해주나 의아했지만, 어쨌든 쉬는 날이니 좋아했다. 호주는 영국과는 별개의 독립된 나라지만,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여러 모로 엮여 있다.

 

 그와 가족들은 퀸 빅토리아 마켓을 돌아다니며 구경한다. 규모만 다를 뿐, 야시장의 구성은 그가 일했던 브리즈번 주말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직접 만든 듯한 수제 공예품, 수많은 의류, 도마 등 주방 용품, 잡화, 음식점들로 이루어진다. 너무 넓어서, 상점의 배치만 놓고 보자면 시장이라기보다는 코엑스에서 열리는 전시회나 박람회 같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가죽 공예 상점에 관심을 보인다. 아버지는 타겟에서 15불짜리 청바지 두 벌을 구입한 이후 쇼핑을 전혀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죽 지갑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이런 식으로 관심을 보이는 일은 극히 드물다. 다른 가족들은 계속해서 걸어가고 있는데, 아버지만 가죽 공예 상점에서 발을 떼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가 보고 있던 가죽 지갑을 구매한다.

 

 

 시장의 끝은 언제나 먹거리다. 시장 한쪽에, 음식점들이 몇십 군데가 모여 있다. 퀸 빅토리아 마켓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음식점마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그와 가족들은 트램 레스토랑에서 코스 요리를 먹은 뒤라 배가 그리 고프지 않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향이 강한 치즈로 인해 속이 썩 좋지 않다. 어머니를 제외하고, 그와 동생이 주로 음식을 먹고 아버지는 맛만 본다. 그와 동생은 수많은 음식들 중 맛있어 보이는 것을 3개 고른다. 카레와 매운 닭고기 볶음 / 소시지, 양고기, 소고기, 돼지고기를 몽땅 담아주는 고기 종합 접시 / 빠네처럼 빵을 파서 담아주는 수프다. 

 

 카레와 고기의 맛은 만족스럽다. 코스 요리로 배가 차 있긴 했지만, 음식점에서 풍겨오는 냄새는 식욕을 돋우는 데 탁월하다. 아버지는 양고기의 향이 너무 강하다고 했지만, 그와 동생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다 먹는다. 모두 맛있는 줄 알았는데, 문제는 수프다. 빠네 빵 안에 넣어주는 수프는, 옅은 노란색에 농도가 진하다. 그와 동생은 이 수프가 당연히 버섯 크림 수프거나 옥수수 수프일 것으로 생각했다. 옥수수 수프인 것은 맞다. 문제는, 고수가 들어갔다는 점이다. 어떻게 조리한 것인지, 냄새에서는 고수가 느껴지지 않는데 수프를 입에 넣으면 고수 맛과 향이 퍼진다. 수프를 끓인 후 고수를 넣어 향을 가미한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고수를 넣고 우려 버린 느낌이다. 수프 어디에도 고수의 초록빛은 없지만, 입에 넣는 순간 고수는 진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와 가족들은 고수에 약하다.

 

 

 빅토리아 야시장을 돌아본 뒤, 숙소로 돌아온다. 짐을 정리하면서 쉬려는 찰나, 어머니를 주축으로 한 번 더 밖에 나갔다 오자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가족들은 기념품을 충분히 사지 못했으니, 다시 나가서 기념품들을 사 오자고 한다. 그는 속으로, 살짝 짜증이 난다. 가족들에게 철 없이 짜증이 난 것이다. 그래도 그는 별 말하지 않고 따라 나간다. 깜깜한 밤, 그와 가족들은 Coles나 Woolworths를 찾아다닌다. 도심을 돌아다닐 때는 널린 게 콜스와 울월스였는데, 숙소 근방에서 막상 찾으니 없다. 약 15분을 걸어간 끝에, 도로 귀퉁이 구석에 위치한 울월스를 발견한다.

 

 가족들은 울월스에서, 한국으로 가져갈 것들을 구매한다. 장소가 울월스이니, 주로 과자다. 그는 울월스를 갈 거면 다음날 낮에 가도 될 텐데, 이 밤에 나온 것이 불만족스럽지만 입 밖으로 표출하진 않는다. 가족들은 쇼핑 카트에 여러 과자를 담는다. 마카다미아, 껌, 사탕 등의 갖가지 과자다. 동생은 팀탐을 집중적으로 산다. 한국에서는 기본 맛의 팀탐이 주로 수입되지만, 호주 현지에는 다양한 맛이 있다. 민트, 카라멜, 딸기 등등 팀탐만 해도 대여섯 가지를 넘는다. 동생은 팀탐을 종류별로 모두 카트에 담는다. 과자 쇼핑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다. 가족들은 과자를 캐리어 빈 구석에 알차게 채워 넣는다.

 

 

 그가 짜증이 난 이유는 복합적이다. 여행으로 인한 피로, 캠리의 상태로 인한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외에도 커다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는 가족들이 돌아가고 난 이후의 숙소를 아직 정하지 않았다. 검색이나 찾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가족 여행을 하는 동안,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이 너무나도 익숙해진 그다. 이제 곧 가족들은 돌아갈 테지만, 그는 전혀 실감이 나질 않는다. 여행이 끝나가자 가족들도 그에게, 아예 이참에 같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떠냐고 묻는다. 그는 그때마다 아니라고 답했다. 가족들의 말에 그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몰아쳤지만, 왠지 비자가 만료될 때까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은 떠날 것이고, 그는 남을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부인하는 듯싶다. 그는 숙소를 다시 찾는 것이 귀찮다. 내일이면 숙소에서 체크아웃해야 하며, 가족들이 비행기를 타고 떠난 뒤에는 그 혼자서 어딘가에서 다시 생활을 해야 한다. 가족들이 떠나는 전날까지도, 그는 숙소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숙소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검색을 하려는 때마다, 왠지 멍하고 귀찮아진다.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은 가족들과 있는 시간을 즐기면 되겠지, 가족들 떠나고 나면 그다음에 생각하면 되겠지 하는 식으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다.

 

 

 멍한 상태의 그를 깨운 것은 가족들이다. 가족들은 그에게, 가족들이 떠나고 나면 어디에 묵을 것이냐고 묻는다. 정 안되면 백패커스를 가거나 차에서 자면 되겠지만, 그렇게 말하면 가족들은 걱정할 터다. 그는 이미 구해놓았다고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가족들의 질문에, 그도 슬그머니 걱정이 피어오른다. 거의 포기 상태로, 나레 워른의 전 집주인에게 문자를 한다. 가족 여행이 끝나가는데, 아직 방이 비어있냐는 문자다. 그는 당장 다음날 입주해야 하는 상황이다.

 

 늦은 시간에 문자를 했음에도, 답장이 온다. 방이 아직 비어 있다. 거의 포기한 상태의 그에게, 오아시스와도 같은 답변이다. 문자를 읽자마자, 내일 바로 입주해도 되느냐고 묻는다. 집주인은 문제없다고 답한다. 그의 주거 문제는, 가족들이 떠나기 바로 전 날 간신히 해결된다.

'회상 > 호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5 - 공항, 작별  (0) 2021.09.21
174 - Williamstown  (0) 2021.09.21
172 - 트램 레스토랑  (0) 2021.09.21
171 - Saint Kilda, 루나 파크  (0) 2021.09.21
170 - Apollo bay, 저녁식사  (0) 2021.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