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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177 - 후회, 역마살

 이튿날 저녁 그가 전화하니, 가족들은 한국에 잘 도착해서 짐을 정리하며 쉬고 있다고 한다.

 그의 워킹홀리데이는 계속된다. 그는 웨이터 일을 하고, 다시 철거 현장에도 참여한다. 남사장은 휴가에서 막 복귀한 그에게 적응 기간을 주는 것인지 일이 줄어든 것인지, 철거 현장에 매일 부르지는 않는다.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일터로 복귀하니 동료들이 그를 반긴다. 가족들과 어디를 방문했느냐, 휴가는 잘 즐겼느냐는 식이다. 반갑게 맞아주는 동료들 덕에 그는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낀다.

 

 

 하지만 가족들이 떠난 후의 빈자리와 허전함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컸다. 약 사나흘 뒤부터 후폭풍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의 기분 변화 폭이 심해진다. 가족 여행을 뿌듯하게 상상하다가도, 어느 지점에서 턱 막힌다. 막히는 지점은, 그가 후회하는 지점이다. 돌이켜보니, 후회스러운 생각과 행동과 말이 너무나도 많다. 

 

 가족들과의 전화통화에서, 가족들은 여행이 매우 즐거웠다고 말한다. 동생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는 돌아와서도 호주에서 찍은 사진들을 하루 종일 본다고 한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처음에는 웃다가도, 전화를 끊고 나면 조금씩 불편해지다가 이내 후회가 밀려온다. 그렇게 즐거워하시는 여행이었는데, 너무나도 게으르게 행동했다.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죄스럽다. 

 

 덜 자고 빨리 일어나 산책이라도 나갔어야 했다. 점심으로 브런치 카페라도 한 번 가봤어야 했다. 마지막 날만 그럴 게 아니라 여행 내내 예쁜 상점들을 많이 방문했어야 했다. 보고 싶다고 하는 것, 관심을 보이는 것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멈춰서 들러야 했다. 이것저것 보고 싶다고 할 때, 속으로 귀찮다고 짜증을 냈던 자신이 한심하다. 음식도 푸드 코트를 몇 번을 갔나. 더 좋은 레스토랑으로 매끼 대접했어야 했다. 잠잘 시간에 구글 맵 한 번 더 켜봤으면 더 편하고 알찬 여행이 됐을 것이다. 여행 전에 가족들이 언급이라도 한 것은 하나도 빼먹지 말고 모조리 준비해서 보여드렸어야 했다. 더 맛있는 것을 드셨어야 했다. 더 좋은 것을 보여드렸어야 했다. 더 친절하게 대해드렸어야 했다.

 

 혼자서 자만해서, 뿌듯하다니 뭐니 하던 자신이 한심하다. 그는 모든 것이 다 후회스럽다. 지나고 난 뒤에야 보이는 것들이 많다. 이전에는 이런 감정을 절실히 느낀 적이 거의 없다. 호주에서 홀로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하면서, 그는 가족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

 

 

 가족들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그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는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혼자 있으면 또다시 허전함이 밀려온다. 이대로 있다가는, 남은 워킹홀리데이를 후회만 하며 허비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다시 현실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그는 새로운 자극을 찾는다. 웨이터 일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자극이 느껴지지 않는다. 철거현장 일은 재밌지만, 고용 안정성이 불투명하다. 그는 다른 일자리를 찾아봐야 하나 생각한다. 

 

 일자리도 일자리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다른 생각이 있다. 지역 이동이다. 멜버른에서는 어느 정도 정착도 성공했고, 가족여행을 통해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그의 가슴속에서 어렴풋이, 브리즈번을 떠날 때 느꼈던 설렘이 되살아난다. 그는 멜버른에서 다른 일을 구하는 것보다는 지역 이동이 더 끌린다. 하지만 그가 지역 이동을 하는 데는 두 가지 큰 제약이 있다. 하나는 캠리, 다른 하나는 워킹 비자다. 캠리가 또 한 번의 지역 이동을 버텨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만일 지역 이동이 가능하더라도, 정착을 위해서는 새롭게 일을 찾아야 한다. 그의 비자는 반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찾기 힘들 수 있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멜버른에 남아 웨이터와 건설현장 일을 하면서 남은 워킹 기간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를 상상했을 때, 설레기보다는 답답하다. 그는 새로운 환경을 찾아 떠나고 싶다. 또다시 떠날 때가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떠날지만 결정하면 된다. 캠리와 비자 관련해서는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그는 마음을 굳혔다. 이미 브리즈번에서 멜버른으로 옮겨 왔고, 멜버른에서 또다시 지역 이동을 꿈꾸며 설렌다. 그는 자신에게 역마살이 낀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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