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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174 - Williamstown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아침을 먹은 뒤, 짐을 옮기고 체크아웃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마지막 날 일정은 간단하다. 멜버른 주변 바닷가를 잠시 들렀다가, 비행기 시간에 맞춰 멜버른 공항으로 갈 것이다. 가족들은 시드니에서 국내선을 타고 멜버른 외곽의 아발론 공항으로 도착했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멜버른 공항에서 출발한다. 멜버른 공항은 멜버른 도심에서도 가깝고, 숙소에서도 가깝다. 그동안 주차장에서 잘 쉬었으니, 엔진도 많이 차가워졌을 것이다. 그는 캠리에게 내일 당장 멈춰도 괜찮으니 하루만, 오늘 딱 하루만 더 버텨달라고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두고 가는 것이 없는지 확인한다. 침실, 화장실, 주방 모두 확인한다. 일주일간 가족들과 지내며 정이든 숙소다. 어느새 제2의 집처럼 느껴진다. 처음 공항으로 마중 나갔을 때처럼, 캠리 트렁크에 가족들의 짐을 차곡차곡 싣는다. 모두 탑승하자, 그는 오랜만에 캠리에 시동을 건다. 시동 걸리는 엔진 소리가 비교적 깔끔하다. 캠리를 몰고 지하주차장 밖으로 빠져나와, 숙소 키를 지하주차장 입구 옆 비밀 금고에 다시 넣는다. 체크아웃이 완료된다.

 

 

 원래 마지막 날은 일정이 없었다. 느긋하게 있다가 공항으로 향할 계획이었지만, 부모님이 어떤 장소를 가고 싶다고 말한다. 해당 장소는 Williamstown(윌리암스타운)이다. 윌리암스타운은, 가족 숙소를 정할 때 최종까지 살아남았던 2위다. 최종적으로 결정된 윈저는 바다가 없지만, 윌리암스타운은 바다가 있다. 부모님은 최종 후보였던 윌리암스타운이 어떤 곳인지 한 번 보러 가자고 한다. 마침 공항까지 가는 길에 윌리암스타운이 위치한다. 캠리는 윌리암스타운으로 향한다.

 

 윌리암스타운은 바닷가다. 수평선이 보이는 주차장에 차를 댄다. 그는 캠리의 상태에 예민하다. 캠리가 멈춰버리면, 가족들이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는 신경이 곤두선다. 아직까지는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다. 윌리암스 타운에 차를 주차하자마자, 그는 보넷트를 열어 엔진을 식히면서 냉각수를 체크한다. 엔진 부근의 열이 느껴지긴 하지만, 아직 냉각수 통에는 수돗물이 남아있다. 하지만 아침에 넣은 것보다는 줄었다. 그는 곧바로 수돗물을 더 부어 넣는다.

 

 

 짧은 정비가 끝나고, 그와 가족들은 윌리암스타운을 구경한다. 바닷가에 위치한 윌리암스타운은 경치가 좋다. 모래로 된 해수욕장은 작고, 돌로 된 해변이 더 많으며 배들이 정박해 있다. 배들의 모양과 외관을 보았을 때, 어선보다는 요트에 가깝다. 부모님은 단박에, 윌리암스타운이 부자 동네 느낌이 난다고 말한다. 그는 확신이 들지 않았으나, 해변 위에 위치한 고급 주택들을 보며 이에 동의한다. 

 

 윌리암스타운은 관광지가 아니다. 긴 수평선과 좋은 경치를 갖고 있지만, 모래사장이 적어서인지 관광객이 거의 없어 조용하다. 그와 가족들은 검은색 돌덩어리로 만들어진 방파제 위에서 사진을 찍는다. 화창한 날씨, 탁 트인 전경과 수평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함께해서 좋지만 머리가 휘날려 좋은 사진을 찍기는 어렵다.

 

 

 점심 식사를 해야 한다. 그가 구글 맵에서 검색해보니, 별점이 거의 5점에 가까운 피시 앤 칩스 상점이 있다. 그는 해당 식당으로 가족들을 데려간다. 해변처럼 이 식당에도 사람이 거의 없다. 그와 가족들이 들어가자, 어딘가에 있던 주인이 천천히 카운터로 나온다. 주인은 전형적인 바닷사람 느낌이다. 구릿빛 피부, 조금 벗겨진 머리, 정리가 덜 된 수염의 중장년 백인으로 말도 표정도 없어 무뚝뚝해 보인다. 그는 피시앤칩스, 연어스테이크, 해산물 모둠 튀김(Fisherman basket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을 시킨다. 

 

 바깥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니, 곧 음식이 나온다. 그와 가족들은 식당 바깥 데크의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한다. 그는 음식을 먹으며, 맛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부모님이, 굉장히 신선하고 맛이 좋다고 말한다. 호주에서 그동안 먹은 피시 앤 칩스 중 가장 맛있다고 한다. 부모님은 그가 놓친 많은 것들을 봤다. 그는 온 가족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주문하는 데까지만 신경을 썼기 때문에 이후의 과정을 놓쳤다. 부모님은 이후의 과정을 자세히 관찰했다. 주문을 받은 후, 주인은 진열대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바로 꺼내서 그 자리에서 튀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보니 튀김옷의 색깔도 유난히 먹음직스럽고 선명한 색(Golden brown)이다. 구글 맵의 5점에 가까운 별점 평가는 허튼 것이 아니었다. 무뚝뚝해 보이긴 했지만 뱃사람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주인의 아우라도 진짜다. 그는 부모님이 맛있어하시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식사를 끝내고, 윌리암스타운 내륙으로 가본다. 도로를 따라 호주 특유의 여유로움을 풍기는 상점들이 곳곳에 열려 있다. 동생과 아버지는 쇼핑에는 별 관심이 없어, 바다 쪽에 남아 있는다. 그는 어머니를 따라 걷는다. 어머니가 관심을 보이는 상점이 있으면, 그는 어머니를 붙잡고 들어간다. 상점들은 대부분 의류, 잡화, 인테리어 소품 및 가구 등이다. 관광객이 거의 없어, 상점들도 한가롭다. 한 의류 상점에서, 어머니가 스카프에 관심을 보인다. 엷은 천 소재로 하늘하늘 휘날리는 스카프다. 어머니는 촉감과 문양을 보며, 두 가지 스카프가 마음에 든다고 한다. 그는 두 스카프를 구매한다. 그는 이때까지 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드린 적이 없고, 심지어 호주 여행 중에도 제대로 된 선물을 드린 적이 없다. 스카프를 사면서 그는, 어머니를 따라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스카프를 사자마자 어머니는 하나를 목에 두른다. 그는 스카프가 어머니에게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상점들을 돌아보다가, 이번에는 한 인테리어 소품 가게로 들어간다. 상점 내부가 굉장히 넓고, 고풍스러운 것부터 모던한 것까지 다양한 소품과 가구가 있다. 그와 어머니는 이리저리 구경한다. 그도 혼자 지내면서 K-MART에서 쇼핑의 맛을 어느 정도 깨우쳤기 때문에, 이전과는 달리 어머니와 쇼핑을 하는 시간이 즐겁다. 스카프 이후로 그는, 또 선물할 것이 없는지 계속 찾는다. 어머니는 괜찮다며, 이 정도로 마음에 드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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