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이 심한지, 계기판 불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차키를 넣고 돌려도 아무 변화가 없다. 캠리는 완전히 멈춰 섰다. 그는 보넷트를 열고 비상등을 켜놓은 채, 도로 바깥으로 피신한다. 새벽 공기가 쌀쌀해서, 후드의 모자를 뒤집어 쓴다. 그는 차량 보험으로 Comprehensive Cover를 들어놓았다. 그의 Comprehensive Cover 보험에는 이런 상황에서 Tow Truck(견인 트럭)을 무료로 1회 부를 수 있는 옵션이 포함되어 있다. 그동안 돈만 내고 이용한 적은 없는 차량 보험이 제 역할을 할 때다. 그는 차량 뒤편의 중요 서류 뭉치에서 보험 관련 서류를 찾는다. 서류에 적혀 있는 번호로 견인 트럭을 요청한다. 자정이 다 된 시각, 그는 도로 한가운데에서 견인 트럭을 기다리고 있다. 도로 한가운데 멈춰선 캠리를 보며, 그는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호주에 와서 이젠 이런 경험까지 하는구나 싶다. 20분 정도 기다리니 견인 트럭이 도착한다.
커다란 트럭이 오기까지, 고속도로에는 차가 거의 지나가지 않았다. 멀리 트럭이 보이자, 그는 단박에 견인 트럭임을 눈치챈다. 커다란 트럭은 점점 속도를 줄이더니 눈앞에서 정차한다. 트럭 운전사는 검은 피부로, 중동인 아니면 인도인으로 보인다. 형광색 조끼를 입고, 수염이 덥수룩하며 몸집이 크다. 트럭 운전사는 그에게, 이 밤에 차가 왜 도로 한가운데 서 있냐고 묻는다. 그는 어색하게 웃을 뿐이다. 트럭 운전사는, 도로 폭이 좁고 다른 차량이 올 수 있으니, 한적한 곳으로 장소를 옮긴 뒤 차량을 견인할 것이라고 말한다. 시동을 걸어보라는 운전사의 말에 그는 시동을 건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캠리에 시동이 걸린다. 20분 동안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식었는지, 너무나도 명쾌하게 시동이 걸린다.
트럭 운전사는 자신의 트럭을 따라오라고 말한다. 그는 견인 트럭을 따라 캠리를 운전한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국도 옆 풀밭에 견인 트럭과 캠리가 멈춘다. 캠리는 약간 털털거리긴 했지만, 큰 문제없이 견인 트럭을 따라간다. 그는 굳이 견인 트럭을 부를 필요가 없었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연기를 내뿜던 장면이 다시 떠오른다. 멜버른 외곽의 추운 새벽 공기가 과열된 캠리를 식힌 듯하다. 하지만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멈춰버렸으니, 이제 언제고 멈출 수 있다. 이 상태로 캠리를 억지로 운전하려면, 매 10분마다 차를 세우고 20분씩 식혀야 할 것이다.
풀밭에 도착하자, 트럭 운전사가 내린다. 트럭 운전사는, 캠리가 잘 따라온다며 문제가 없다는 듯 말한다. 얼핏 그렇게 보이지만, 엔진이 과열되는 순간 캠리는 또다시 멈출 것이다. 트럭 운전사는 견인 트럭 뒷부분에서 철컹거리더니 쇠사슬을 가져온다. 쇠사슬을 캠리 앞 범퍼 아래의 어떤 파이프에 걸어 고정한다. 운전사가 트럭의 리모컨 같은 것을 조종하자, 견인 트럭 뒤의 트렁크가 기울어지면서 바닥에 닿아 경사를 이룬다. 운전사가 다른 버튼을 누르자, 쇠사슬 롤러가 감기면서 쇠사슬을 당겨 캠리를 경사 윗부분으로 끌어올린다. 캠리가 충분히 경사 위에 오르자, 다시 버튼을 눌러 트렁크 경사를 수평으로 맞춘 뒤 캠리를 온갖 끈으로 트럭에 고정한다.
그는 견인 트럭 운전사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름 멋있다고 생각한다. 밤이 깊어 주위가 깜깜하고, 보이는 것은 견인 트럭의 불빛뿐이다. 운전사는 어둠에 익숙한 듯하다. 운전사는 몸집이 크고, 다루는 장비도 크고 무거운 중장비다. 그는 견인 트럭 운전사라는 직업도 호주에서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떻게 이 일을 구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캠리가 트럭 뒤에 실렸다. 트럭 운전사는 그에게, 가까운 정비소로 캠리를 견인하겠다고 말한다. 트럭 운전사의 말에 그는 숙소 앞으로 옮겨달라고 한다. 운전사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지금은 보험사에서 연락을 받고 온 것이므로 견인이 무료지만, 보험사에서 제공하는 무료 견인 서비스는 1회라고 한다. 향후 다시 정비소로 가기 위해 견인 트럭을 부르면, 똑같이 자신이 오더라도 비용을 부담해야 하며 비용은 비쌀 것이라고 한다. 고민의 여지가 없다. 어차피 그는 캠리를 고칠 생각이 없다. 트럭 운전사는 정말 숙소로 옮겨도 괜찮겠냐고 물으며 재차 확인한다.
운전사는 자신의 옆자리에 타라고 한다. 그는 이런 트럭에 타보는 것이 처음이다. 화물 운송 트럭과 비슷하게 생겼다. 트럭은 엔진이 운전석 앞에 위치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차량들처럼 차량의 앞코가 존재하지 않아 밋밋하다. 바퀴가 크고 운전석의 위치도 높아서, 앉아서 창밖을 보면 높은 위치에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그는 운전사에게 숙소 주소를 알려준다. 운전사는 핸드폰으로 네비게이션 경로 설정을 하고, 안내에 따라 숙소로 향한다. 견인 트럭 요청이 늦은 밤에도 꽤 있는지, 운전사의 형광조끼 윗부분에 달린 무전기에서 이따금씩 무슨 말소리가 나온다. 숙소로 향하는 동안 무전기에서만 가끔 소리가 날 뿐, 그도 트럭 운전사도 말이 없다.
숙소에 도착한다. 트럭 운전사는 어디에 캠리를 놓으면 되겠냐고 묻는다. 그는 그가 항상 주차했던 위치를 가리킨다. 트럭 운전사는 트럭을 약간 앞에다가 대고, 뒷 트렁크에 경사를 만든 뒤 쇠사슬을 조금씩 풀어서 캠리를 트럭 아래로 내린다. 운전사는 그가 원하는 위치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캠리를 내려놓고 떠난다. 중장비 차량 특유의 크고 강하게 털털거리는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그는 캠리 문을 잠그고, 우선 방으로 들어간다. 밤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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