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폐차장으로 가는 중이다. 그의 캠리는 이미 트럭에 실려 폐차장에 옮겨졌으며, 더 이상 그의 소유가 아니다. 그가 폐차장을 방문하는 이유는, 데이빗의 개인적 부탁 때문이다. 데이빗은 그의 캠리 부품 중 오디오를 원한다. 데이빗의 부탁에 그가 뒤늦게 폐차장에 전화하니, 아직 캠리를 폐차하지 않았으니 폐차장에 방문하면 오디오를 떼어내서 주겠다고 한다. 그는 캠리를 너무 갑작스럽게 보낸 느낌도 없지 않아, 마지막으로 캠리를 볼 겸 폐차장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탄다. 그는 워홀 초창기처럼 차가 없는 워홀러가 되었다.
데이빗은 함께 일하면서 그의 캠리를 타본 적이 있기 때문에, 폐차 소식에 별로 놀라지 않는 눈치다. 이전에 그는 차량을 잘 아는 데이빗에게, 자신의 캠리를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데이빗은 즉답을 피했다. 좋은 구매자를 찾으면 아마도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애매한 답변이다. 그런데 그와 데이빗이 일을 끝마치고 헤어질 무렵, 데이빗이 비로소 질문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한다. 차량의 떨림이 심한데, 이 떨림은 엔진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엔진 문제라면 좋은 가격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데이빗은 그의 기분을 고려한 것인지, 말을 하지 않다가 일이 끝나고 헤어지기 직전에 말한 것이다. 그는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에 별로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데이빗 나름의 배려였던 셈이다. 그가 차를 폐차할 것이라고 하자, 데이빗은 캠리에서 유일하게 새 것으로 노래를 틀 때마다 무지갯빛 라이트가 번쩍거린 오디오를 자신에게 줄 수 있냐고 묻는다.
오디오는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가운데에 위치한다. 그는 캠리를 구매할 당시, 페르시아 차주가 오디오를 가리키며 'New, Very good' 이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페르시아 차주는 오디오와 스스로를 손가락으로 연신 가리킨다. 새로 사서 직접 달았다는 뜻인 듯하다. 오디오를 가리키고는 엄지 손가락을 척 들어 올리며 Very Good이라고 말한다. 그때는 캠리의 주행감도 매끄럽고, 엔진의 덜덜거림도 없었다. 차주는 그에게 보여주기 위해, 오디오로 음악을 튼다. 차주의 핸드폰과 연결된 오디오는, 음악을 재생하자 빛을 내면서 작동한다. 빛의 색깔이 계속 바뀌어서, 반짝거리면서도 신난다.
그는 이 오디오로 음악을 많이 들었다. 어디론가 운전하기 위해 캠리에 앉으면, 항상 핸드폰과 오디오를 선으로 연결했다. 오디오는 FM 등등 여러 모드가 있는데, 핸드폰 음악을 틀기 위해서는 AUX로 맞춰야 한다. AUX로 맞추고, 그는 핸드폰 음악들을 재생했다. 그는 호주에서 일하면서 들었던 음악들을 기억했다가 다운받아 재생했다. 어두운 밤 운전을 하면, 새까만 암흑 속에서 캠리 라이트 / 오디오 / 핸드폰 네비게이션(길을 모를 경우)만 빛났다.
폐차장에 도착한다. 폐차장은 멜버른 외곽 지역으로, 그가 처음 차를 샀던 브리즈번 외곽과 느낌이 약간 비슷하다. 여기저기 폐차장과 중고차 거래상이 밀집한 지역이다. 그는 버스에서 내려, 약 20분 정도를 걷는다. 계속 캠리를 타고 운전만 하다가, 간만에 걸으니 느낌이 묘하다. 커다란 육교 아래도 지나고, 쌩쌩 달리는 차들 옆으로 도보를 따라 계속 걷는다. 구글 맵에 표시된 곳에 도착한다. 폐차장이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니, 차들이 수십 대가 쌓여 있다. 이미 납작하게 되어 쌓여있는 차들이 절반, 아직 형태를 유지한 차량이 절반이다. 그는 수십 대의 차량 중에서, 그의 캠리를 한눈에 알아본다. 일하고 있던 이들 중 한 명이 다가와,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는다.
신기하게도 그에게 말을 건 직원이, 그가 전화로 이야기했던 목소리의 주인이다. 오디오를 받으러 왔다고 하니, 직원이 아는 체를 한다. 직원은 피부가 구릿빛으로, 중동인으로 보인다. 몸집이 작고 머리가 살짝 벗겨져있지만, 손재주가 있어 보이고 인상이 좋다. 외모는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주연을 맡았던 케빈 스페이시와 비슷하다.
직원은 그가 보는 앞에서 캠리의 오디오를 떼어낸다. 캠리는 이미 폐차 준비에 들어갔는지, 유리창이 아예 없다. 유리창이 없어서, 오디오를 떼어내는 직원의 모습이 더 잘 보인다. 직원은 커다란 정같이 생긴 드라이버를 오디오 바깥에 밀어 넣고는 지렛대처럼 이리저리 쑤신다. 점점 사이가 벌어지는가 싶더니, 오디오 부품이 통째로 떨어져 나온다. 직원은 전선을 조금 정리한 뒤 그에게 오디오를 건넨다.
그는 오디오를 분리하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캠리를 보면서 감상에 젖는다. 그와 약 반년 동안 함께한 캠리다. 남의 집 방보다는 직접 산 캠리 속에서 더 편하게 쉬며 시간을 많이 보낸 그다. 브리즈번에서 지역 이동을 하는 동안 차에서도 몇 번 잤다. 폐차보다는 조금 더 낭만적인 이별을 상상했는데, 결국 마지막은 폐차장이다. 직원들의 움직임을 보아, 오늘 캠리를 찌그러뜨리진 않을 것 같다. 유리창은 떼어냈지만 아직 온전한 캠리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는 캠리와 이별한다.
며칠 뒤, 그는 한 쇼핑센터에서 데이빗과 만난다. 오디오를 전해주기 위해서다. 데이빗은 자신의 차를 몰고 왔다. 그는 데이빗에게 오디오를 건넨다. 데이빗은 바로 이거라며, 고맙다고 말한다. 데이빗은 차에 타라며, 가까운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주겠다고 한다.
그가 데이빗의 차에 타니, 데이빗이 갑자기 50달러를 건넨다. 그가 영문을 몰라 데이빗을 쳐다보니, 오디오 값이라고 한다. 그는 오디오 값을 받을 생각이 없다. 그는 돈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데이빗은 꽤나 당황한 눈치다. 그가 데이빗에게 선물이라고 말한다.
그 : This is a gift for you.
데이빗 : What do you mean? I don't need a gift.
글로 써놓은 것을 보면 차갑게 느껴지지만, 데이빗의 실제 말투는 전혀 차갑지 않았다. 당황해서 튀어나온 말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다. 데이빗은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치 못한 듯하다. 지하주차장에서 50불짜리 지폐를 서로 떠밀며 옥신각신한다. 데이빗은 정말 돈을 안 받아도 괜찮겠냐며(Are you sure) 재차 묻는다. 그는 번복하지 않는다.
데이빗은 그를 인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준다. 차에서 내리려는 그에게 데이빗이 말한다.
Mate, If you need any help, Just call me. ok?
데이빗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그는 이렇게 말해주는 데이빗이 고맙다. 알겠다며, 그는 데이빗과 작별 인사를 한다. 서로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한다. 신뢰와 악력이 느껴지는, 꽉 맞잡는 악수다. 데이빗은 그가 만났던 호주인 중, 가장 편안하고 마음을 터놓았던 친구다. 그는 데이빗을 다시 보기 힘들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의 예상대로, 이 날이 그와 데이빗의 마지막 만남이 된다. 맞잡았던 손에, 데이빗의 악력이 오래도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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