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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184 - 대중교통 퇴근

 그는 레스토랑까지 출근은 버스로, 퇴근은 기차로 한다. 출근 시에는 버스와 기차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그는 항상 버스를 선택한다. 하지만 퇴근 시에는 그렇지 않다. 선택지가 줄어든다. 레스토랑이 위치한 프랭스턴은 기차역이 크고, 버스도 많이 다닌다. 하지만 호주의 버스는 막차가 빨리 끊긴다. 그가 웨이터 일을 끝내면 시간은 항상 저녁 10시를 넘긴다. 이 야심한 시간에는, 그의 숙소처럼 먼 곳까지 달리는 버스가 끊긴다. 버스가 끊겼으니, 그는 웨이터 일이 끝나고 돌아갈 때 항상 기차를 탄다.

 

 멜버른의 기차는 브리즈번의 기차와 똑같다. 그는 브리즈번에서처럼 무임승차를 의식적으로 피했는데, 차량 벌금으로 인한 일종의 강박증이 생겨서다. 이는 옳은 선택이었다. 그가 느낀 브리즈번 기차와 멜버른 기차의 차이점은 두 가지다. 기차의 연식, 표를 검사하는 직원이 나타나는 빈도수다. 워낙 외곽이기도 하고, 문화의 도시로써 긴 역사를 자랑하는 멜버른 지역이라 그런지 기차가 조금 낡았다. 일이 끝나고 깜깜한 밤에 돌아갈 때 타는 것이어서 그리 티가 나진 않지만, 깔끔한 인상은 아니다. 두 번째로 역무원으로 보이는 듯한 직원이 브리즈번에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눈에 띈다. 그는 절대 무임승차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가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한 지 2주 정도 지났을 때, 프랭스턴 기차역이 대공사를 시작한다. 야간에 아예 기차 운행을 중단하고 공사를 진행한다. 평소처럼 웨이터 일을 끝내고 기차를 타러 갔는데, 형광 조끼 인부들이 형광봉으로 길을 막고 있다. 망연자실하고 있는 그에게, 형광 조끼를 입은 인부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그가 나레 워른이라고 답하니, 인부는 저쪽으로 가서 몇 번 버스를 타라고 한다. 인부가 가리키는 곳에는 버스 여러 대가 서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처럼 기차를 이용하지 못하는 다른 승객들도 목적지를 이야기하고 버스를 안내받는다. 기차 미운행을 보완하기 위해, 임시로 야간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줄 알았던 그는, 뒤편에 줄지어 서있는 버스들을 보고 감동한다.

 

 호주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야간의 기차 운행을 갑자기 막아놓고, 무책임하게 알아서 집에 가라고 하지는 않는다. 버스가 모여 있는 곳까지 형광봉의 안내가 계속 이어진다. 그가 얼핏 세어보니 버스는 적어도 6대 정도다. 6대의 버스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여러 구역을 거쳐서 승객들을 내려준다. 그가 타는 버스도, 나레 워른 뿐만 아니라 나레 워른 방향의 여러 구역을 담당한 버스다. 야간 공사로 발생한 불편에 대한 배려인지, 버스비를 받지 않는다.

 

 그도 그렇고, 버스를 타는 승객들 모두 어안이 벙벙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공사고, 이렇게 완벽한 셔틀 서비스를 마련해 놓았을 것이라고도 생각지도 못했다. 버스는 내부에 조명을 켜지 않아 어둡다. 하지만 버스 기사의 그림자와 목소리만 들어도 쾌활함이 묻어난다. 셔틀버스를 운전하는 버스 기사도 이 상황을 일종의 야간 이벤트로 생각하는 듯하다. 승객들은 생각지도 않은 야간 셔틀버스에 감동한 데다, 버스 기사까지 쾌활하니 말문이 트인다. 저녁 11시가 다 된 야심한 시간에 버스를 타는 이들은, 대부분 일반 노동자일 가능성이 크다. 셔틀이 약 20분 동안 대기하며 승객들을 태운 뒤 출발하면, 승객 중 한 명이 꼭 기사 옆에 서 있는다. 호주 영어 특유의 쾌활함과 시큼함으로 버스 기사와 승객의 대화가 계속 이어진다. 해당 승객이 내리고 나서야, 버스가 조용해진다. 그는 중간 즈음에 앉아서 잘 들리지 않았지만, 대충 이런 감정들이 섞인 대화로 들린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놀람 / 준비된 야간 셔틀버스에 대한 안도감 / 반복되는 패턴에서 벗어난 상황에 대한 신남 정도일 것이다. 그도 한국에서 야간 고속버스를 타는 것처럼, 깜깜한 미지의 세계로 야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그는 야간 셔틀버스를 타면서, 무언가 뿌듯하면서도 편안함을 느낀다. 가끔씩 서류 작업할 때나 얕게 마주쳤던 호주의 국가 시스템이, 호주에서 살아가는 일원으로써 그를 인정하고 야간에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보살펴 주고 있는 느낌이다. 야간 셔틀버스는 여러 구역들을 일일이 정차해서 승객들을 내려주므로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래서 버스 기사들은 빠르게 운전한다. 기본 조명이 없어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깜깜한 버스, 외곽 지역의 깜깜한 어둠, 노란 가로등 불빛, 이따금씩 노란 불빛 가득한 터널을 본다. 한국과는 다르지만, 어느덧 그도 이런 호주의 새로운 풍경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 말도 생각도 없이, 어둠과 노란빛을 보다가 나레 워른에 도착하면 내린다. 투박하고 어두컴컴한 야간 셔틀버스지만, 그는 따스함을 느낀다. 창밖을 보며, 이런 식으로 호주에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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