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를 구매한 이튿날이 출발일이다. 차주는 단체 메시지로, 만날 시간과 장소를 보냈다. 집합 시간은 오후 1시 즈음이며, 지도를 보니 멜버른 근교의 주택단지다.
도심 정중앙 쉐어하우스에서 짐을 모조리 챙겨 나온다. 그는 여태껏 하도 많이 옮겨 다녀서, 짐 싸는 것과 이사가 익숙하다 못해 귀찮을 정도다. 하지만 오늘의 짐 싸기는 다르다. 처음 이사했을 때 같은 설렘이 느껴진다. 로드 트립을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멜버른에서 다윈까지 3,400km 거리를 차로 이동한다. 4명이 함께 차를 타고, 기름값과 식비 등을 4 등분하며 유명한 장소를 방문하면서 갈 계획이다. 여행 경로가 세세히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그가 꼭 가보고 싶은 호주 정중앙의 울룰루도 방문할 예정이다. 얼마가 걸릴지는 잘 모르겠다. 그는 약 2주 정도 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차를 타고 집합 장소로 이동한다. 지도에 표시된 기차역에 내리자, 역 앞 1층 건물들이 전부 음식점이다. 그는 점심을 해결하고자, 멕시칸 음식점으로 들어간다. 이 음식점의 주된 메뉴는, 감자튀김 위에 고기를 듬뿍 올리고 소스를 넘치도록 바른 요리다. 돼지고기, 양고기, 소고기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어떤 고기로 할지 고민하던 그의 눈에, Meat Platter라는 메뉴가 보인다. Platter, 큰 접시라는 뜻이지만 음식 이름으로 쓰일 때는 '모둠' 같은 의미로 쓰인다. Meat Platter의 메뉴 설명은, 그의 고민을 단박에 날려버린다. Meat Platter는 감자튀김 위에, 돼지 / 양 / 소고기를 전부 올려준다.
역 앞 조그만 멕시칸 음식점에 앉아, 그는 Meat Platter를 먹는다. 고기는 부드럽게 뭉개질 정도로 푹 익힌 뒤 잘게 찢은 모양이다. 고기 위에 세 가지 소스를 넘치도록 뿌려놓았기 때문에, 포크로 찍어 먹는다. 고기를 얼마나 쌓아서 담았는지, 바닥에 깔린 감자튀김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크게 다섯 입 정도 먹고 나서야, 포크를 깊게 찔렀을 때 감자튀김이 딸려 나온다. 대식가인 그에게 이 Meat Platter는 양도 적당하고 맛도 좋다.
맛있게 먹고 기분이 좋아져서인지, 로드 트립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그답지 않게 음료가 땡긴다. 멕시칸 음식점에서 나오니 카페들이 보인다. 내부가 넓지 않은 테이크아웃 카페다. 혹시 마실만한 것이 있나 메뉴를 살펴본다. 그는 커피 맛을 잘 모르고, 너무 단 음료도 좋아하지 않는다. 메뉴를 훑다가, 그는 아보카도 쉐이크를 발견한다. 기름지고 밍밍하면서도 연어 같은 맛이 나는 아보카도로 쉐이크를 만든다니, 맛을 상상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는 기분이 좋기 때문에, 용감하게 아보카도 쉐이크를 시도한다. 직원이 건넨 커다란 일회용 잔에 속에는 연두색 쉐이크가 가득 들어 있다. 밍밍한 야채 주스에 아보카도 향만 더해져 있다면, 미련 없이 버릴 생각이다. 그는 살짝 긴장하며, 두꺼운 빨대로 쉐이크를 맛본다. 혀에 닿는 순간, 그는 성공했다는 것을 직감한다. 신선한 아보카도 특유의 향과 부드러움, 살짝 씹히는 살얼음, 첨가된 약한 달달함이 어우러지면서 그의 미각을 만족시킨다. 그가 처음 시도한 Meat Platter와 아보카도 쉐이크 모두 성공적이다.
차주가 적어놓은 주소는 주택 앞 도로다. 정해진 주소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놓고 기다린다.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출근했는지 인적이 전혀 없다. 그는 무릎 정도 높이의 벽돌담에 앉아 화창한 날씨를 즐긴다. 잠시 뒤, 또 한 명의 사람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그가 있는 쪽으로 온다. 함께 여행을 할 Travelmate다.
인사를 하며 Travelmate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말없이 같이 있으니 어색하다. 어색함에 익숙해질 무렵, 차 한 대가 그들 앞에 선다. 운전석 창문이 열리더니, 타라고 한다. 차주다. 그와 Travelmate가 타자, 차주는 곧바로 출발한다. 총 4명이 아니냐고 물으니, 차주는 지금 나머지 한 명을 픽업하러 가는 것이라고 답한다. 마지막 Travelmate는, 차로 10분 떨어진 어느 기차역에서 차에 탑승한다. 이로써 다윈까지의 로드 트립을 함께할 4명이 모두 모였다.
차주는 자신의 친척 집에 잠깐만 들르자고 말한다. 먼 길을 떠나기 전 친척에게 인사도 하고, 친척네에 차를 세우고 4명의 짐을 트렁크에 차곡차곡 다시 정리하자는 것이다. 그를 포함해서, 다들 급할 것이 없다. 차주는 친척의 집으로 차를 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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