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에어컨 일을 하면서, 틈날 때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확인했다. 그가 올린 게시글에 댓글이 달리진 않았는지, 페이스북 메시지가 오진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는 Imoova 웹사이트에서 2인승짜리 캠핑카를 빌려놓은 상태이며, 함께 여행을 떠날 1명을 구하는 중이다.
그는 멜버른에서 퍼스까지의 기나긴 로드 트립을 한국인과 함께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외국인이 많은 페이지에 영어로 Travelmate 공고를 게시했다. 하지만 낯선 그와 단둘이 여행을 가겠다는 외국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혀 반응이 없자, 그는 급한 마음에 일단은 한국인 워홀러들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Travelmate 공고를 게시한다.
한국인 페이지에 공고를 올린 직후, 한두 번 댓글이나 메시지가 날아온다. 하지만 영양가가 전혀 없다. 함께 가겠다는 내용이 아니다. 어떻게 캠핑카를 구했느냐, 방법을 알려달라는 메시지다. 한국인들로부터는 정보를 문의하는 메시지가 날아오고, 외국인들로부터는 아예 소식이 없다. 그의 불길한 예감이 들어맞는다. Travelmate가 구해지지 않는다. 그는 혼자서라도 캠핑카를 끌고 퍼스까지 갈 작정이다.
마음을 다잡긴 하지만, 그도 나홀로 여행이 그리 끌리지 않는다. 그는 이미 브리즈번에서 멜버른까지 2,000km를 혼자 여행했다. 조용하고 편하지만 심심했다. 그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오는 다른 이들의 Travelmate 공고를 들여다본다.
그는 이미 캠핑카를 예약해두었고, 출발 날짜도 정했다. 함께 여행할 사람을 구하는 것은 거의 포기했으며, 내키진 않지만 퍼스까지 혼자 여행하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되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Travelmate 공고가 그의 눈에 들어온다.
해당 게시글에는 SUV 차량 한 대가 모래언덕에 서 있는 사진이 커다랗게 첨부되어 있다. 공고를 올린 차주는, 멜버른에서 출발해서 북부 다윈까지, 호주 대륙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여정에 함께 할 사람을 구하는 중이다. 호주에서는 Travelmate 공고가 흔해서 평소에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지만, 경로와 날짜가 문제다. 시큰둥하게 읽어가던 그의 눈이 출발일을 보고 반짝인다. 그가 출발하려고 했던 날짜에서 딱 하루 뒤다.
그는 출발일을 보고 공고를 다시 확인한다. 출발일도 경로도, 그의 계획과 상당히 유사하다. 홀로 여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안도감에 그는 반가우면서도 신기하다. 하지만 경로가 살짝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호주 대륙의 해안선을 따라 일주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멜버른에서 서부 도시 퍼스로 가야 한다. 대륙 중앙의 도로를 타고 다윈에 도착하고 나면, 해안선이 동서로 양분되어서 경로가 꼬인다. 그에게는 아직 캠핑카가 있다.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메시지를 날린다.
그는 차주에게, 퍼스와 서부 해안선을 경유해서 다윈으로 갈 생각은 없는지 묻는다. 마침 자신도 캠핑카가 있으니, 차 두대로 함께 갈 수도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차주는, 다윈에 정해진 일정이 있어서 서부 해안선을 추가할 여유는 없다고 말한다. 중앙을 가로지르지 않고 서부 해안선을 타고 돌아가면, 여행 기간이 배 이상 늘어날 터다. 아쉽지만, 그가 만일 차주 일행에게 합류한다면 서부 해안선과 1불 캠핑카는 버려야 한다.
그는 머리를 굴려, 이것저것 재기 시작한다. 자신도 함께 가고 싶은데, 답을 조금 미뤄도 되겠냐고 메시지를 보낸다. 한쪽 발은 퍼스와 캠핑카에, 다른 한쪽 발은 다윈으로 가는 일행에게 걸쳐놓는 것이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마지막 순간에 퍼스로 같이 가겠다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바로 원래의 퍼스 계획으로 갈아탈 심산이다. 공고를 올린 차주는 그의 속내를 알지 못하니, 그의 자리를 맡아두고 인원이 초과되려 하면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 확답을 받겠다고 한다. 차주는 총 여행 인원을 4명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1명이 참여의사를 밝혀, 두 자리가 빈 상태라고 한다. 그는 예비로 발을 걸쳐둔다.
그는 혼자서라도 퍼스로 향하는 호주 일주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여러 Travelmate들과 여행할 상상을 하자 마음이 흔들린다. 굳이 혼자서 가는 것보다, 다른 이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이 더 재밌고 안전하지 않을까? 혼자서 호주 일주의 꿈을 향할 것인가, 새로운 인연들과 함께 호주 반주로 만족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선다. 그의 머리는 호주 일주라는 거대한 꿈을 놓지 못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미지의 Travelmate들과 함께 여행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회상 > 호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3 - 집합, 출발 (0) | 2021.10.06 |
---|---|
202 - 텐트 (0) | 2021.10.06 |
200 - 술자리 (0) | 2021.10.04 |
199 - Small man, Big mouth (0) | 2021.10.04 |
198 - 고층 빌딩 현장 (0) | 2021.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