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Travelmate들이 탄 차가 멜버른을 완전히 빠져나온다. 차주를 제외한 이들은 멜버른에서 다윈까지의 대략적인 경로만 알고 있다. 차주는 계획을 상당히 세세하게 짜두었다. 다윈까지 최소한 도달해야 할 날짜, 중간 지점인 엘리스 스프링스까지 최소한 도달해야 할 날짜를 생각해두었다고 한다. 차주는 다윈까지 가는 와중에 중간중간 노트북으로 무언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점심시간이 지난 뒤 모였고, 차주의 친척네에서 잠시 들렀으니 출발 시간이 빠르진 않다. 애들레이드에 도착하기 전에 해가 저물 예정이다. 차주는 미리 알아둔 Free Camping site(무료 캠핑장)이 있다고 한다. 로드 트립을 시작한 첫날부터 캠핑이라니, 그는 갑작스럽긴 하지만 캠핑을 할 생각에 설렌다.
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무료 캠핑장이라 그런지, 차가 어느 산골짜기 깊숙이 들어간다. 도시에서 서너 시간 떨어진 외지여서 가뜩이나 불빛 하나 없는 와중에 산으로 더 들어간다. 차주는 이런 장소를 잘도 찾아냈다. 호주는 원래 해가 빨리 지는 편이며, 산은 해가 더 빨리 진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텐트를 치고 캠핑 준비를 한다. 쨍쨍해 보이던 해가, 거짓말처럼 급속도로 저물기 시작한다. 설상가상,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비가 떨어진다. 그의 첫 캠핑을 축하하는 신고식이다.
그와 Travelmate들은, 출발 전 잠시 들러서 구매했던 빵과 초콜릿바 몇 개로 저녁을 때우며 텐트를 설치한다. 자고 일어나서 애들레이드에 도착하면, 제대로 식재료를 사서 식사할 계획이다.
떨어지는 빗속에서, 그는 사전에 연습했던 대로 텐트를 친다. 조쉬가 일하면서 그에게 준 망치로 땅에 못을 박는다. 흙이 생각보다 물러서, 못이 잘 박힌다. 비 때문에 땅이 더 물러져서 못이 뽑히면 어쩌나, 머리가 복잡해지려 했지만 그는 생각을 멈추고 그냥 못을 박는다. 그의 망치를 본 독일인이, 기다렸다가 망치를 빌려간다. 텐트를 모두 설치할 무렵, 빗줄기가 더욱 거세져서 장대비가 된다. 소나기인 줄 알았지만, 거센 빗줄기는 이튿날 새벽까지 줄기차게 쏟아진다. 멜버른에서는 부슬비만 봤는데, 멜버른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장대비를 만난다.
그는 텐트를 구매할 때, 혹시 몰라서 가장 싼 방수포도 함께 구매했다. 새파란 색의 방수포로, 캠핑용이 아닌 자동차나 트럭 위에 씌우는 용도로 보인다. 그의 10불짜리 텐트의 얇은 천이, 방수가 될지 의심스러워서 구매했는데 이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비를 피하기 위해 그가 텐트로 들어가자, 비에 쫄딱 젖은 텐트의 여기저기서 방울방울 물이 새기 시작한다. 그는 황급히 방수포를 꺼내서, 텐트 위에 덮는다. 텐트용 방수포가 아니어서, 텐트 전체를 덮지 못한다. 그는 급한 대로, 뚫려 있는 텐트 입구 위주로 방수포를 덮는다. 방수포를 고정하기 위해선 텐트 못으로 함께 박아야 하는데, 이 방수포는 뚫린 부분이 전혀 없다. 즉, 방수포를 텐트 못으로 고정하면 입구 부분이 막히는 셈이다. 그는 출입할 때마다, 못이 땅에서 분리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방수포를 약간만 들춘 상태로 몸을 텐트 입구로 구겨 넣는다. 옆을 보니, 다른 Travelmate들은 방수포를 덮지 않는다. 다들 100불이 넘는 텐트라고 한다.
쏟아지는 비와 먹구름으로 인해 이른 시간인데도 깜깜하다. 무료 캠핑장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인공적인 불빛은 아예 없다. 대자연의 어둠이다. 그가 텐트에 누우니, 바람에 텐트가 휘청휘청하고 비에 젖은 땅에서는 습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쩔 수 없다. 그의 몸이 텐트가 날아가지 않도록 지탱하는 돌이다. 그는 좁은 텐트 밖으로 다리가 삐져나가지 않도록 옆으로 누워 다리를 접는다. 그 상태에서 담요를 온몸에 둘둘 말고 잠을 청한다. 쏟아붓는 비와 강한 바람, 젖은 텐트,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 산의 한기로 인해 공기가 차다. 그는 얇은 옷을 여러 겹으로 껴입고, 몸을 웅크린다. 담요를 부여잡은 손과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담요 겉은 어쩔 수 없지만, 속은 되도록 물에 젖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의 첫 캠핑 모습이다. 재밌긴 하지만 열악하다.
그는 어서 잠이 들길, 이 시간이 어서 지나가길 바란다. 한 숨 자고 일어나면 화사한 햇살과 따스함 속에 일어나길 바란다. 비바람이 퍼부어서 새까맣고,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텐트 안에 웅크리고 있는 밤이 어서 지나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상황이 열악할수록, 잠에 들기는 더더욱 힘들다. 가뜩이나 초저녁 시간이다. 그와 Travelmate들은 모두 각자의 텐트 속에서 사투 중이다.
그는 방수포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군대 생각이 난다. 군대에서 훈련을 할 때는, 꼭 추운 겨울날 밖에서 텐트를 치고 잤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씻지도 못했다. 군대 훈련은, 기본적으로 실제 전투 상황을 가장한 훈련이다. 실제 전쟁이 나면, 추운 날씨에 식사가 부실하고 씻지도 못하는 환경에서 오랜 기간 숙박하며 전투를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리라. 의미는 알겠지만, 그는 군대 훈련을 할 때마다 '억지로 시켜서 하는 쓸데없는 고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춥고 비좁은 군대 텐트에서, 한 시간에도 몇 번이고 잠을 깨곤 했다. 잠에서 깨서 현실을 인식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항상 똑같았다. 어서 다시 잠이 들길, 눈만 감았다 뜨면 이 추운 밤이 끝나 있길 바랬다. 그는 지금의 상황이 군대 훈련 때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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