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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217 - Alice Springs, 이름 모를 산

 울룰루를 떠나, 북쪽으로의 여정을 계속한다. 울룰루가 가장 크고 유명하긴 하지만, 호주 대륙 중앙에는 울룰루같은 산맥 덩어리가 몇몇 더 있다. 모양도 비슷하다. 차를 타고 울룰루에서 멀어지면서, 지나가는 풍경 속에는 조그마한 울룰루같은 커다란 바위 덩어리들이 보인다. 울룰루보다 작은 것이지, 하나하나가 모두 거대하다. 바위 덩어리들은 하나같이 높고, 인적이 전혀 없다. 오히려 울룰루보다 더 올라가고 싶게 생겼다. 그는, 저런 거대한 바위 덩어리 위로 올라가서 텐트를 치고 몇 날 며칠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와 Travelmate들은 마침내 엘리스 스프링스에 도착한다. 울룰루 주변 도시로 유명하고, 북부에서 다윈과 함께 유명한 도시다. 차주는 엘리스 스프링스의 캠핑장을 미리 예약해두었다. 차주는 반드시 인터넷을 써서 해야 하는 어떤 작업이 있다고 한다. 울룰루에서부터, 차주가 점점 더 개인행동을 하는 시간과 빈도가 늘어난다.

 

 

 차를 대고, 차주는 노트북을 가지고서 인터넷 잘 되는 장소를 찾아나선다. 그와 프랑스인, 독일인은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엘리스 스프링스를 차로 돌아보기로 결정한다. 차주는 자신의 차를 아예 Travelmate들에게 맡긴다. 그와 Travelmate들은 엘리스 스프링스 외곽으로 운전해 나와, 차를 대고 어느 산책길을 걷는다. 그는 산책길 바로 옆의, 거대한 산맥을 바라본다.

 

 그는 Travelmate들의 압박에 못 이겨 울룰루 등반을 포기했다. 그는, 높은 곳을 보면 꼭 올라가고 싶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다. 이전에 Lennox Head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그는 자신만의 성지를 찾고 있으며, 그 성지는 분명 산 꼭대기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는 모두와 친하긴 했지만, 인간관계가 언제나 그렇듯 Travelmate들의 모든 허물을 다 좋아했던 것은 아니며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이다. 프랑스인과 독일인에게 저 산을 오를 생각이 있냐고 물으니, 다들 피곤하다고 말한다. 그는 혼자서라도 저 산을 올라야겠다고 말한다. 산으로 들어가는 등산로나 입구는 없다. 아웃백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는 커다란 산맥이다. 프랑스인과 독일인은 진심이냐고 묻는다.

 

 

 독일인과 프랑스인은 피곤해서 먼저 차를 타고 캠핑장에 돌아간다. 그도 피곤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이 산을 꼭 올라가고 싶다. 그는 산책로를 벗어나, 눈앞에 보이는 산맥을 등산하기 시작한다.

 

 이름조차 모르는 이 산은, 호주의 전형적인 산의 모습이다. 높은 봉우리는 삐죽삐죽하지 않고 일자로 길게 늘어져 있다. 나무와 풀이 아예 없진 않으나, 전체적으로 산은 돌과 흙이 드러나 있어 붉다. 봉우리 꼭대기에 가까워질수록 완연한 바위 덩어리로 이루어져서, 맨 위 5% 정도 구간은 아예 나무가 없다. 그는 산을 오른다.

 

 눈으로 보기에는 가까워 보였는데, 능선을 타고 올라가야 해서 시간이 늘어진다. 그는 1시간 내, 적어도 2시간 내에는 정상을 오를 것이라 예상했으나 이는 착각이었다. 2시간이 지났는데도, 산 중턱에도 이르지 못한다. 산책로는커녕 산을 오른 흔적조차 없어서, 그는 바위 덩어리들을 이리저리 밟으며 오른다. 올라갈수록 바위 덩어리들은 더 커진다. 주변에는 바짝 마른 나무만 보일 뿐, 어떤 생명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커다란 바위 덩어리들 때문에 시간이 소요된다. 동그란 바위 덩이를 간신히 올라가면, 위에는 또 다른 바위 덩이가 있어서 다시 올라가기를 반복한다. 그는 중간에 내려갈까 생각도 했지만,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올라온 길이 아득하다. 약간 겁이 나기도 한다. 그는, 일단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정상은 찍어봐야 되지 않겠나 생각하며 마음을 다진다. 조금씩 정상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는 조그만 쎅 하나에 물 한 통만 넣고 등산하는 중이다. 오르는 것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내려오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 탈진하면 어떻게 하나. 그는 생각을 멈추고 그냥 오른다. 어느덧 그는 정상 부근에 진입한다. 나무와 풀이 완전히 사라지고, 암벽 등반을 해야 할 것 같은 바위 절벽이 그를 가로막는다. 경사가 급격히 가팔라진다. 다행히도, 여기저기가 침식되고 깎여 있어서 발 디딜 곳이 꽤 많다. 그는 올라가려고 발을 디뎠다가, 다시 내려온다.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다. 정상 부근의 바위 절벽은 약 2~3m 정도로, 그리 길지는 않으나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내려다보는 시점이기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는 도무지 내려갈 용기가 생기지 않아, 떠밀리듯 바위 절벽을 오른다.

 

 자연이 만들어낸 바위 절벽은, 생각보다 빈틈이 많다. 경사가 급하긴 하지만 인공적으로 어렵게 만든 구간이 아니기 때문에, 신중하기만 하면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그는 마침내, 정상에 다다른다.

 

 

 3시간이 넘는 등반 끝에, 그는 엘리스 스프링스의 지평선을 이루는 거대한 산을 정복한다. 거대한 익명의 산이다. 바위 절벽 위 정상은 평평하고 넓은 판이다. 그는 텐트를 가져왔어야 했다고 후회한다. 그가 반대편으로 향하니, 반대편은 경사가 더 심해서 그야말로 절벽이다. 반대편으로 올랐다면 그는 도중에 포기해야 했을 터다.

 

 그는 이름 모를 거대한 산의 정상에서, 자연을 만끽한다. 저 멀리 엘리스 스프링스가 한눈에 보인다. 그를 제외하고는, 이 산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는 산의 정기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괜히 웃통을 벗고, 그 상태로 팔 굽혀 펴기를 한다. 그가 이전부터 상상했던, 자신만이 독차지하는 풍경이다. 바람이 강하기 때문에 옷이 날아갈 수 있으니, 바위 틈새에 옷을 묶어놓는다.  

 

 그는 정상에 앉아서, 약 1시간 정도를 보낸다. 등산을 하며 생긴 피로가 서서히 가신다. 슬슬 되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몸의 피로가 가시면서, 내려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옅어진다. 그는 하산하기 시작한다.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를 더 조심해야 한다. 속도가 빨라 시간은 덜 걸리지만, 하산 시에 발을 잘못 디디면 크게 다칠 수 있다. 그는 정상의 바위를 조심스럽게 내려온 후, 가장 완만한 경사의 능선을 골라 하산한다. 올라갈 때는 그렇게 힘들고 오래 걸렸는데, 막상 내려올 때는 금방이다. 내려오면서 보니, 그를 매료시켰던 정상이 점점 멀어진다. 언젠가 호주에 다시 올 일이 있다면, 그는 이 산을 다시 오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산의 이름을 모른다. 엘리스 스프링스에서 지평선을 이루는 산이라는 것만 안다. 그렇지만, 다시 방문해서 직접 눈으로 본다면 그는 자신이 독차지했던 산을 한눈에 알아볼 것이다.

 

 

 그는 무사히 하산을 끝낸다. 이름 모를 거대한 산을 올라갔다가 내려와 다시 산책로에 이른다. 그는 이제, Travelmate들이 있는 캠핑장으로 가야 한다. 5시간이 넘는 산행에 온몸이 피로하다. 핸드폰으로 연락을 취해볼까 생각하지만, 엘리스 스프링스 외곽에서 그의 핸드폰은 먹통이다. 그는 별 수 없이 엘리스 스프링스를 향해 터벅터벅 걷는다.

 

 핸드폰은 먹통에 구글맵도 불안정하다. 그는 독일인이 운전했던 길을 기억 속에서 더듬으며 걷는다. 주변에는 황량한 평야, 그가 올랐던 산과 이어지는 형제 산맥뿐이다. 하나밖에 없는 도로를 따라가면 된다. 복잡하진 않으나 방향을 잘 선택해야 한다. 방향을 잘못 선택하면 엘리스 스프링스 정반대로 향할 것이다. 다행히도 그가 걸음을 시작하고 30분 정도 지나자 멀리 민가가 조금씩 보인다.

 

 그는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캠핑장에 도착한다. 높은 산 정상을 등산한 데다, 먼 거리를 걸어온 피로가 가세한다. 프랑스인과 독일인은, 그가 너무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했다고 한다. 그는 힘없이 웃으며, 전혀 걱정할 필요 없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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