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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215 - Kata Tjuta, Aborigine

 울룰루는 커다란 바위 덩어리다. 아니, 산맥 덩어리다. 울룰루는 원래 산맥이었다. 울룰루 정도 되는 높이의 산맥이 넓게 뻗어 있었는데, 오랜 침식 작용 끝에 대부분의 산맥이 낮고 평탄하게 깎여 아웃백이 되었다. 산맥 중 울룰루는 깎이질 않았다. 울룰루는 침식되지 않은 옛 산맥 바위 덩어리다.

 

  울룰루-카타추타 국립공원은 울룰루를 포함해 다른 산, 언덕, 기암괴석이 있다. 울룰루와 같은 이유로 이름을 두 개 가진 카타추타(마운트 올가)는 산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울룰루보다는 카타추타가 더 보는 맛이 있다. 카타추타는 이리저리 쪼개진 틈으로 들어가고 올라갈 수 있는 반면 울룰루는 온전한 바위 덩어리 자체여서 빙 돌아서 볼 수밖에 없는 데다 올라가기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와 Travelmate들은, 울룰루를 먼저 구경한다. 국립공원 내에는 박물관도 있어서, 울룰루와 관련된 호주 원주민들의 이야기와 울룰루 형성 과정 등을 보여준다. 그는 지질학에 관심이 없고, 박물관은 왠지 따분한 곳이라 느껴서 빨리 나가려 한다. 하지만 Travelmate들은 전혀 다르다. 독일인은 지질학에 관심이 있다고 했고, 프랑스인은 10분 가까운 영상 하나하나를 모조리 끝까지 본다. 그나마 차주가 가장 빠르게 훑어보고 나간다. 그는 프랑스인, 독일인과 남아 억지로나마 박물관을 계속 훑는다.

 

 이때 남아서 조금 더 본 것은 다행이었으나, 그는 영어로 적힌 박물관의 이야기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돌이켜 보았을 때 흐릿하게나마 어보리진의 신화가 기억에 남는다. 커다란 뱀에 대한 내용이다. 신화 속 등장하는 뱀은 정말 크다. 지구의 지형을 바꿀 정도다. 이 뱀이 지나간 지역은 깊게 패여 산맥이 형성되고 아웃백의 지형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의무감에 대충 본 데다, 영어로 쓰인 글이라서 해석도 제대로 되지 않아 그는 자기 멋대로 이해한다. 다만, 커다란 뱀에 대한 묘사를 보며 호주 사막에 있었던 원주민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가늠해본다.

 

 

 북쪽으로 다가오면서 날씨가 더워짐을 눈치채긴 했지만, 아웃백 한가운데 울룰루의 날씨는 뜨겁다 못해 따갑다. 바람도 별로 불지 않고, 햇빛만이 강렬하게 내리쬔다. 자외선이 그대로 피부에 들이붓는 느낌이다. 국립공원 내의 표지판에는 햇빛 차단을 위한 모자, 썬글라스, 썬크림을 권장하며 반드시 물을 들고 다니라고 써 있다. 강렬한 햇빛에 계속 노출되다가 일사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물과 썬글라스는 챙기지만, 모자와 썬크림은 아예 소지품 목록에 없다. 최소한의 방어만 하면서, 그는 내리쬐는 대자연의 햇빛을 온 피부로 받아낸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인지 공기가 건조하다. 땅과 울룰루는 붉은데 하늘은 너무나도 푸르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선명하게 잘 나온다.

 

 울룰루에서는 정해진 시간마다, 마이크를 차고 설명을 해주는 가이드를 따라다닐 수 있다. 그와 Travelmate들은 무료 가이드와 함께하는 울룰루 주변 트랙킹에 참여한다.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서른 명 가까이 된다. 마이크를 차고 있는 사람이 가이드다. 가이드는 호주 대륙 원주민, Aborigine(어보리진)이다.

 

 호주의 원주민은 어보리진, 뉴질랜드의 원주민은 마오리다. 뉴질랜드의 마오리는 전에 기술한 폴리네시안으로, 짙은 구릿빛 피부를 띤다. 어보리진은 폴리네시안이 아니며, 피부색이 검다. 조금 검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검기 때문에, 흑인으로 보이지만 흑인과는 무언가 다른 느낌의 검은 피부다. 가이드는 정해진 시간이 되자 울룰루 주변을 돌며 투어를 시작한다. 울룰루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주변을 걸어서 도는 데만도 몇 시간이 걸리며 길도 여럿이다.

 

 

 호주 전 대륙을 통틀어, 노던 준주에 어보리진이 가장 많이 산다. 어보리진은 대부분 관광, 어보리진 그림이나 음악 등의 예술 업종에 종사한다. 어보리진의 거주 지역과 일하는 업종은, 호주 역사와 관련이 있다.

 어보리진은 호주 내륙에서 살았다. 비가 거의 오지 않아 척박한 토양, 척박한 토양을 더욱 쩍쩍 갈라지게 만드는 뜨거운 태양, 가축화할 수 있는 대형 포유류의 부재 등으로 어보리진은 영국 백인들이 들어올 때까지도 문명과 기술을 이뤄내지 못했다. 영국 백인들은, 어보리진을 열등한 인종이라 여겼다고 한다.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어보리진 사상자가 발생했고 타즈매니아 섬에서는 어보리진이 몰살당했다. 마침내 호주 정부가 일을 낸다. 1900년대 호주 정부는 어보리진 아이들을 보호하고 교화하겠다는 명목 하에 어보리진 아이들을 강제로 분리해서 엘리스 스프링스에서 집단으로 수용했다. 이러한 조치는 70여 년간 계속됐고, 10만여 명의 어보리진 아이들이 원주민어를 금지당하고 입양됐으며 가족과의 접촉을 금지당했다. 이 어보리진 아이들을 'Stolen Generation, 빼앗긴 세대'라고 부른다. 빼앗긴 세대의 아이들 대부분은 두 번 다시 부모님과 가족들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울룰루 무료 투어를 하는 어보리진 가이드는 자신도 Stolen Generation이라고 말한다.

 

 현재 호주 정부는 1900년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어보리진에 대한 우호적인 정책을 피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많이 망가져 있다. 그는 이를 엘리스 스프링스과 다윈에서 확인한다.

 

 

 에어즈 롹이라는 명칭을 폐기하고 Uluru로 바꾼 것처럼, 국립공원 곳곳에는 관광객들에게 호소하는 안내가 적혀 있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안내다. 울룰루 중에서도, 성별 의식과 관련된 장소는 아예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지키는 이가 없어 대다수가 몰래 찍는다. 그는 이름이 '어머니의 자궁' 비스무리한 장소를 기억한다. 울룰루를 따라 돌다가, 뒤편 어딘가에서 마주한 장소다. 해당 장소는, 정말 신기하게도 커다란 바위 주름들이 여성의 성기 모양을 이룬다. 이름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정말로 바위 주름들의 모양이 절묘하게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킨다. 프랑스인은 그의 표정을 보며,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다고 한다.

 

 특정 장소에서 사진을 찍지 말아 달라는 것은 괜찮았지만, 그를 갈등하게 만든 안내가 있다. 울룰루를 등반하지 말아 달라는 안내다. 강제는 아니지만, 감정에 매우 강력하게 호소하는 권고다. 울룰루는 어보리진들의 신성한 장소이기 때문에, 부디 어보리진들의 뜻을 저버리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그는 역사상 어보리진을 계속 박해해온 호주 정부가 이제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에게 울룰루를 오르지 말라고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가이드도, 꼭 오르겠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어보리진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산을 좋아한다. 산, 언덕, 높은 곳을 좋아한다. 그리고 높은 곳은 올라가야 직성이 풀린다. 힘겹게 정상에 올랐을 때의 쾌감, 탁 트이는 전경을 즐긴다. 그는 처음 울룰루에 도착했을 때 등반이 가능한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등반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의 낌새를 눈치챈 독일인이 그에게 묻는다. 설마 울룰루를 올라갈 것이냐는 질문이다. 그는 얼버무린다. 옆에서 프랑스인이 거들고, 차주가 쐐기를 박는다. 울룰루를 올라갔다 오면 나쁜 기운이 그에게 들러붙을 테니, 차에 타지 말고 걸어서 오라고 한다. 그는 애초부터 올라갈 생각이 없었다고 말한다.

 

 Travelmate들의 의견도 있고, 어보리진의 성스러운 장소라고 하니 그는 마음을 접는다. 그런데, 울룰루 투어를 끝내고 카타추타로 옮겨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간 순간 그의 마음이 흔들린다. 주차장 앞에, 울룰루 등반 코스 입구가 보인다. 그는 다른 사람들도 어보리진을 존중하며 울룰루를 등반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입구에서부터 사람이 바글바글 모여있으며, 한 줄로 서서 개미떼처럼 끊임없이 울룰루를 오르고 있다. 울룰루는 경사가 심하기 때문에, 쇠말뚝에 연결된 줄을 잡고 올라가야 한다. 개미떼처럼 울룰루를 올라가는 관강객을 보자, 그는 접었던 마음이 슬며시 피어오른다. 하지만 옆 Travelmate들의 얼굴은 단호하다. 그는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울룰루 등반을 포기한다. 나중에 혹시 다시 오게 되면 한번 올라가 볼까 생각해보지만, 이후 울룰루 등반은 완전히 금지된다. 그는 어보리진들의 성소를 지켜주었다는 생각에 내심 뿌듯하지만, 당시에는 아쉬움이 더 컸다.

 

 

 그와 Travelmate들은 차로 15분 거리, 카타추타로 간다. 카타추타는 울룰루와는 달리 쪼개져있는 산이어서, 여기저기 오를 수 있고 보는 맛이 더 있다. 그는 카타추타를 자세히 보는 것으로 울룰루 등반의 아쉬움을 달랜다. 카타추타가 더 볼 것도 많고 그늘져서 시원하지만, 울룰루같은 상징성은 없다. 그는 카타추타와 울룰루가 함께 국립공원으로 묶인 것이 적절한 조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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