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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219 - 내분

 화목하기만 할 줄 알았던 그와 Travelmate들 사이에도 서서히 갈등이 생긴다. 그의 주된 갈등 상대는 바로 차주다.

 

 

 첫 갈등은 엔진오일이었다. 아웃백에 들어서기 전, 차주는 차량을 점검하다가 엔진 오일이 비정상적으로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프랑스인은 운전도 하지 않고 관심이 없어 그냥 차에 있고, 그와 독일인이 나가서 보넷트 앞에 선다. 차주는, 엔진오일이 비정상적으로 줄어들었으니 채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비용은 차를 같이 탄 Travelmate들도 부담해야 한다고 말한다.

 

 독일인은 아무 말이 없고, 그는 할 말이 많다. 아웃백에 들어서기 전이고, 로드 트립 초창기인데 엔진 오일이 떨어졌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 거리로 엔진 오일이 급격하게 줄어든다면, 남은 로드 트립 기간 중에는 엔진 오일을 몇 번을 더 넣어줘야 한다는 말인가. 엔진 오일은 그렇게 빠르게 없어지지 않는다. 엔진 오일이 줄었다면 그 이유는 로드 트립 때문이 아니라 여행 전에 오래도록 엔진 오일을 점검하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주는 본인 할 말만 하고 엔진오일을 사러 상점으로 들어간다. 그는 차주의 말과 태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주는 멋대로 엔진 오일을 고르더니 계산대 앞에 서 있는다. 계산원이 차주에게 계산할 것이냐고 묻자,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며 이쪽을 쳐다본다. 그나 독일인이 결제하라는 것이다. 그는 엔진 오일을 들고 카운터 앞에 서서 그와 독일인을 쳐다보는 차주의 모습에, 속이 끓어오른다.

 

 독일인은 그에게, 차주의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한다. 그는 독일인을 극구 말렸지만, 독일인은 기어코 자신의 카드로 엔진 오일 값을 지불한다. 독일인의 카드로 지불했으니, 엔진 오일은 4명이서 모두 분담한 셈이다. 그는 이번 한 번은 넘어가지만, 엔진 오일을 또 보충해야 한다면 그건 차량의 결함이므로 돈을 낼 생각이 없다고 못 박는다. 차주는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엔진 오일을 들이붓는다.

 

 

 두 번째는 식사였다. 그와 Travelmate들은 60~70불로 한 번에 장을 보고, 그 식재료로 못해도 삼사일은 버틴다. 장 보는 돈, 기름값 등은 공동으로 분담하는 돈이었고 다들 돈을 아끼는 편이다. 처음에는 다 같이 장을 봤지만, 엘리스 스프링스에서는 캠핑장에 남아있던 차주와 프랑스인 둘이서 식재료를 사서 돌아왔다. 저녁에 모두가 모이자 식사를 준비하는데, 차주가 봉투에서 왠 커다란 스테이크를 꺼내 굽는다. 인당 스테이크 하나씩에, 치즈와 소스가 듬뿍 버무려진 포장 샐러드를 덜어 먹는다. 그는 별생각 없이 맛있게 먹는다. 그런데 독일인과 프랑스인은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식사가 끝나고, 차주는 또다시 노트북을 들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독일인은 프랑스인에게, 웬 고기냐고 묻는다. 프랑스인은, 차주가 무작정 고기와 포장된 샐러드를 카트에 담고 계산해버렸다고 말한다. 이외 다른 식재료는 안 샀느냐고 물으니, 저녁 식사 거리만 샀다고 한다. 얼마가 나왔느냐고 물으니, 프랑스인은 80불이 넘게 나왔다고 답한다. 60~70불로 삼사일을 버티면서 돈을 아꼈는데, 한 끼 식사로 80불을 넘게 써버렸다. 차주는 그와 독일인에게는 이런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차주는 아웃백 한가운데의 엘리스 스프링스에 도착한 것을 축하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 여행 계획을 짤 때도, 세세한 계획은 없지만 다윈과 엘리스 스프링스까지는 도착일을 정해두었던 차주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식재료비는 4명이서 똑같이 나누는 비용이다. 마음대로 과소비를 한 것은, 공금 횡령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다.

 

 

 차주는 이런 식으로, 다른 이들에게 말도 없이 혼자 마음대로 해버리는 경우가 꽤 있다. 그래서 그와 Travelmate들은 차주에게 불만이 쌓여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차주의 언행이 그를 폭발시킨다.

 

 엘리스 스프링스에서 머물던 어느 날, 차주가 그에게 다가와 말한다. 왜 맥주 묶음을 차 안에 두었느냐는 말이다. 그는 무슨 말인지 몰라, 그럼 바깥에 두느냐고 되묻는다. 차주는, 엘리스 스프링스에는 원주민(차주는 Indigenous pople이라고 말한다)이 많기 때문에 맥주를 트렁크에 넣어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원주민들이 밤에 몰래 차 내부를 살피다가 훔칠 것이 있으면 차 유리를 깨고 가져간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자, 독일인도 그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는 들으면서도 어이가 없다. 실제로 도둑질을 하는 원주민이 많은 것인지, 원주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인지 헷갈린다. 어쨌든 유리가 안 깨져서 다행이다. 그는 다음부터는 조심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차주의 이어지는 말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다. 차주는 지나간 엔진 오일 이야기를 들먹이면서 자신의 차를 걱정하더니, 묵직한 한 방을 날린다.

 

 차주 : You wanna share the Rego? ('Rego-차량등록비'까지 나눠 내고 싶으냐?)

 그 : What the fuck are you talking about? 

 Rego라는 말을 듣자, 그의 눈이 헤까닥 돈다. 차주의 말에는 협박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그는 억눌렀던 불만이 터지면서, 차주에게 따지기 시작한다. 그는 한인 쉐어하우스의 마스터처럼 군림하려는 차주의 태도가 심히 거슬린다. 여행 초기에 정하지 않은 문제를, 이제 와서 그것도 협박하듯이 꺼내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독일인이 말리지만 그는 끝까지 할 말을 한다. Rego 얘기가 왜 나오냐. 이런 식으로 자꾸 돈 가지고 장난치면, 당장 여기서 동행을 끝내겠다. 지금까지의 경비는 명확히 따져서 자신 몫이 부족하면 내겠다. 어차피 엘리스 스프링스까지 왔으니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1불 캠핑카도 널렸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굳이 함께 가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차주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이 할 말만 하고 그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이다.

 

 

 독일인은 가장 어리지만, Travelmate들 중 가장 속이 깊고 대인관계에 능하다. 독일인이 말리자 그는 이성을 되찾는다. 독일인은 그가 감정적이지 않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오늘 모습을 보니 굉장히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독일인의 말에 그는 창피함을 느낀다. 그는 일행 중 나이가 가장 많았지만, 사람을 대하는 법은 가장 서투른 편에 속했다.

 

 한 번 터진 갈등은 다시 봉합하기 힘들다. 이후 그는 차주에 대한 감정이 날이 갈수록 악화되기 시작한다. 차주에 대한 이런 감정은 비단 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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