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들끼리도 여행을 하다 보면 싸우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국적, 언어, 문화가 다른 4명이 초면에 함께 로드 트립을 하면서 갈등이 생기지 않을 리 없다. 오히려 3분의 2 지점까지 갈등 없이 무사히 온 것이 더 신기하다. 갈등의 원인은 성격차도 있지만, 3주 가까이 지속된 긴 여행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여행이 설레고 새로운 생활 방식에 흥미를 느꼈으나,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진다. 로드 트립은 처음에는 설렜고, 점차 적응하며 능숙해지고, 나중에는 지친다.
프랑스인은 그의 뒷담화를 어느 정도 눈감아 주기로 한 듯하다. 프랑스인이 그에게 말을 거는 빈도가 다시 늘어난다. 차주는 어서 빨리 여행을 끝내고 싶어 하는 눈치지만, 독일인이 달래면서 여기저기 들른다. 황량한 아웃백의 기운이 남아있는 곳에서, 커다랗고 동그란 돌덩어리가 여기저기 널려있는 Devil's Marble을 방문한다. 이름처럼, 커다란 악마가 구슬을 갖고 놀다가 두고 간 것처럼 보인다.
계속해서 북쪽으로 올라가니 마침내 아웃백의 황무지 중심을 벗어난다. 날씨는 더욱 따뜻해지고, 듬성듬성하지만 물과 풀이 자주 보인다. 아예 지명에 Water가 들어간다. 그와 Travelmate들은 Daly Water에 도착한다.
황무지는 아니지만, Daly Water는 그동안 봐온 아웃백의 마을들과 비슷하다. 흙으로 된 도로는 차가 다닐 때마다 흙먼지가 휘날린다. 마을 전체는 1층짜리 건물 몇몇이 전부이며, 도로를 달리다가 들른 로드 트립 여행객들을 상대로 음식과 캠핑장 영업을 한다. 그와 Travelmate들은 근방에 차를 세워두고, Daly Water 내의 상점들을 구경한다.
그와 Travelmate들은 비스트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해서 먹는다. 엘리스 스프링스 이후, 음식을 사 먹는 횟수가 늘었다. 음식을 먹고, 그는 잠시 화장실을 갔다 온다. 테이블로 돌아오니, Travelmate들이 보이지 않는다. 뒤뜰에 있을 것이다. 얇은 나무로 앙상한 골조를 만들어놓은 야외 뜰인데, 골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쪼리를 촘촘하게 박아놓았다. 그는 뒤뜰로 나가려다가, 뒤뜰 한가운데 서 있는 Travelmate들을 발견한다.
Travelmate들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백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백인은 유니폼 느낌의 새파란 반팔을 입고 카메라를 목에 걸었다. 백인이 Travelmate들에게 뭔가를 부탁하듯 말하고, Travelmate들은 흔쾌히 허락한다. 그는 다가가지 않고, 먼발치에서 무슨 일인지 관찰한다.
백인은 Travelmate들에게, 자신이 입고 있는 것과 똑같은 새파란 반팔 유니폼을 나눠준다. Travelmate들은 유니폼을 받아서 입는다. Travelmate들이 유니폼을 입자, 백인은 가방에서 깃발과 현수막을 꺼낸다. Travelmate들은 친근하게 가까이 모여서, 현수막의 글씨가 보이게끔 펼치고 깃발을 흔들며 포즈를 취한다. 백인은 으레 사진사들이 그렇듯, 피사체들의 웃음을 유도하며 사진을 찍는다.
그는 눈치가 빠르지 않은 편이지만, 슬프거나 불안한 예감은 곧잘 알아챈다. 글씨가 잘 보이진 않지만, 딱 봐도 젊은 청년들의 로드 트립을 장려하는 홍보나 캠페인일 것이다. 그는 이런 종류의, 환하게 웃고 있는 여행객 청년들을 모아놓고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 등에서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Travelmate들은 바로 그런 로드 트립 홍보대사로 캐스팅되어 사진을 찍고 있다.
그도 저 사진 촬영에 끼고 싶다. 하지만, 왠지 나서선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Travelmate, 사진을 찍는 이 모두 백인이다. 사진을 찍는 이는 그가 없을 때 Travelmate들에게 접근했다. 그의 존재를 몰랐을 수도 있고, 그가 없어지길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괜히 그가 끼면 Travelmate들까지 거절당할지도 모른다. 또한, Travelmate들이 그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할지도 미지수다.
그래도 그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진다. 슬쩍 Travelmate들의 시야에 들어오는 위치까지 다가간다. 그가 먼저 나서진 않겠으나, 그를 발견한 Travelmate들이 어서 같이 찍자고 하면 못 이기는 척하며 합류할 생각이다. Travelmate들도, 사진을 찍는 백인도 오히려 그를 반길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Travelmate들이 자신을 발견하고 불러주길 기다린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Travelmate들을 바라본다. 우연인지, Travelmate들은 홍보대사 사진 촬영이 끝날 때까지 그가 있는 쪽을 한 번도 보지 않는다. 사진을 몇 번이고 찍더니, Travelmate들과 사진사가 환하게 웃으며 악수한다. 사진사는 현수막만 다시 가져간다. 마무리되는 분위기가 보이자, 그는 먼저 건물 안 테이블로 돌아간다.
잠시 뒤, 사진사는 안뜰에서 건물을 통해 밖으로 나가고 Travelmate들은 테이블로 돌아온다. 그는 별 말을 하지 않는다. Travelmate들의 손에는 사진사가 준 로드 트립 홍보대사 기념품이 들려있다. 사진 찍을 때 흔들었던 깃발, 입었다가 벗은 파란 유니폼이다. 그는 그 물건들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고, Travelmate들도 설명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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