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 스프링스 이후 이동에 가속도가 붙어, 빠르게 다윈에 가까워진다. 황무지인 호주 대륙 중앙 아웃백에 비해, 북쪽으로 갈수록 볼 것이 많지만 그와 Travelmate들은 많은 곳을 그냥 지나친다. 그래도 몇몇 장소는 방문한다. 그의 기억 속에 남은 장소가 하나 있다. 해당 장소는, 캥거루와 어보리진의 그림을 함께 볼 수 있었던 장소다. 그는 개인적으로, 캥거루와 어보리진이 호주의 정체성을 가장 많이 지녔다고 여긴다.
호주 북부 노던 준주에는 어보리진들이 살기 때문에 어보리진 관련 관광 상품들이 많다. 역사를 서술해놓은 박물관, 어보리진 악기나 무기 만들기 체험, 그림 그리기 체험 등이다. 그와 Travelmate가 방문한 장소는, 캥거루를 보살핌과 동시에 어보리진 그림을 판매하는 곳이다.
해당 장소에서 보살피는 캥거루는 주로 어린 개체가 많고 온순하다. 어린 캥거루는 몸집도 작고 귀여워서, 캥거루 중에서도 작은 왈라비(왈라비는 성체가 되어도 조그맣다)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는 캥거루의 성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와 Travelmate들은 로드 트립 중, 도로 옆 풀숲에서 가끔 캥거루를 보곤 했다. 웅크리고 있음에도, 캥거루의 몸은 길고 크다. 몸이 길고 큰데 털은 별로 없어서, 신기하면서도 징그럽다.
어린 캥거루들은 귀엽지만, 성체가 되면 무섭고 징그럽기까지 하다. 그는 야생 캥거루들의 얼굴이 낙타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낙타는 눈은 그윽하지만 인상은 왠지 불량해 보인다. 캥거루도 비슷하다. 표정을 읽을 수 없다. 아니 표정 자체가 없는 것 같다. 긴 속눈썹 때문에 눈이 이뻐 보이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불량스럽다. 근육질의 몸에 표정은 없고, 속눈썹만 길다. 만화에서 나오는, 복싱 장갑을 끼거나 띠용 하고 뛰어다니는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캥거루들은 나이가 들수록 뒷다리의 힘이 빠지면서 네 발로 기어 다닌다. 약해지는 뒷다리를 앞다리가 보조하는 것이다. 늙은 개체일수록 앞다리가 몸의 무게를 더 지탱하게 되면서, 승모근과 가슴 부위 근육이 크게 발달한다. 늙은 캥거루의 상체 근육은, 헬스장에서 열심히 몸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상향에 상당히 부합한다. 사람의 기준에서는 상체 근육이 울룩불룩한 캥거루가 우두머리일 것 같지만, 캥거루들끼리의 싸움에서 상체 근육은 별 쓸모가 없다.
캥거루들은 꼬리로 몸을 지탱한 상태에서 뒷다리를 들어 차는 공격을 많이 한다. 앞다리(팔)는 견제용일 뿐이다. 캥거루는 싸울 때, 몸을 꼿꼿이 펴고 얼굴은 뒤로 젖힌 상태로 싸운다. 여기까지는 고양이들이 싸우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지만 고양이는 앞발만 사용한다면, 캥거루의 진짜 무기는 뒷다리다. 앞다리로 상대 캥거루의 얼굴을 간혹 때리지만, 주된 공격은 뒷다리를 들어 차는 공격이다. 상체 근육이 미약한 캥거루는, 기어 다닐 필요가 없는 개체다. 즉, 한창 뒷다리 힘이 좋은 젊은 개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상체 근육이 없는 젊은 캥거루의 뒷다리 발차기가 가장 강력하고 치명적이다. 야생 캥거루의 뒷다리 발차기 한방에, 멋모르고 접근한 사람의 갈비뼈가 여럿 나갔다는 뉴스가 간간히 들린다. 뒷다리가 가장 치명적이지만, 만약 인간이 캥거루와 싸운다면, 늙은 캥거루의 울룩불룩한 상체와 앞다리 공격도 치명적이며 오히려 더 위협할 수도 있다. 아웃백 도로의 캥거루 출몰 표지판은, 캥거루가 튀어나올 수 있으니 운전을 조심하라는 경고임과 동시에 캥거루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다.
캥거루를 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어보리진 그림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다. 모두 판매용이라고 한다. 그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어보리진의 그림을 본다. 어보리진들의 그림은, 원색을 많이 쓴다.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하얀색, 검은색을 위주로 쓴다. 붓 터치도 특이한데, 그가 본 그림은 대부분 점묘화 같은 느낌이다. 붓에 물감을 묻힌 뒤, 펴 바른다기보다는 점 모양으로 찍어 누른 그림들이다.
그는 어보리진의 그림들 중, 바탕을 붉게 칠한 그림들을 보며 양탄자 같다고 생각한다. 실물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묘사하지 않고, 붓터치도 거칠지만 어보리진 그림은 나름의 매력이 있다. 그는 특히, 해질녘 아웃백을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든다. 검은색 바탕에 달은 하얀색으로, 석양은 붉은색으로 칠했다. 붉은 석양 가운데, 어보리진과 에뮤(타조 같은 호주의 대형 조류), 캥거루 그림자를 그려놓았다. 달을 제외하고는 검정, 노랑, 남색, 붉은색으로만 그려서 그림이 어둡다. 그가 로드 트립 중 아웃백의 석양을 보며 받았던 느낌이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법은 생소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친숙한 그림을 보며, 그는 어보리진들과 비슷한 시야를 공유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감명 깊은 그림들을 핸드폰으로 찍는다. 점으로 찍듯이 그린 그림들도 좋지만, 그에게는 아웃백의 석양을 그린 어두운 그림이 가장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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