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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233 - Car Washer

 꼼꼼함보다는 속도를 중시하는 세차 일은, 별로 어렵지 않고 노동 강도도 약하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는 세차 패턴을 파악하고 몸에 익힌다. 다른 세차 워커들처럼 진공청소기와 행주를 휘두르며 차량 내부 여기저기를 빠르게 청소한다. 일 자체가 쉬운 데다, 브리즈번에서 무도회장을 청소해본 경험도 있는 그다. 그는, 마지막 직업인 Car Washer가 된 것에 감사하며 즐거울 따름이다.

 

 

 세차장 동료들은 10명이 채 되지 않는데, 국적이 다양하다. 프랑스, 독일, 일본, 중동, 호주인도 있다. 호주인을 제외하면 다른 국적의 사람들은 모두들 영어가 서툴다. 세차장 일 특성상, 말을 해야 할 필요가 거의 없다. 이 차량 공항으로 가져가라, 저 차량 가져와라 등 단순한 의사소통만 하면 된다. 그 의사소통마저도,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그는 동료들 중 특히 일본인 두 명과 친하게 지낸다. 로드 트립 동안 백인들 사이에 껴서 지내던 그는, 비슷한 외모와 검은 머리의 일본인들에게 동질감과 친숙함을 느낀다. 두 일본인은 영어가 거의 불가능해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다. 그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으므로, 자신이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안다고 생각했지만 만화 속 일본어와 실제 대화를 나누는 일본어는 완전히 다르다. 그의 일본어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다. 차라리 영어를 쓰는 서구 백인들과 대화하는 것이 일본인들과 소통하는 것보다 더 쉽다는 느낌이 든다. 이는 비단 그의 부족한 일본어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아는 일본어를 내뱉듯 말했고, 일본인 워커들도 조금씩 그와 친해진다.

 

 

 세차 일은 얼마 가지 않아 익숙해진다. 그는 세차보다, 여러 차량을 다룬다는 사실에 더 의미를 둔다. 공항과 세차장의 거리는 약 3분 정도이지만, 그래도 운전을 해야 한다. 마침 그는 호주에서 운전 경험도 있다. 그는 세차장에서, 하루에도 10대가 넘는 차량을 운반한다. 각종 브랜드, 각종 차종을 계속 바꿔가면서 운전한다. 호주임에도 운전석이 왼쪽에 있는 차량, 전원이 누르는 버튼인 차량, 기어가 동그란 원형 버튼인 차량 등 다양하다. 그는 새로운 차량을 운전할 때마다 전원 버튼 / 기어 조작 등이 달라 초반에 헤매지만, 그럴 때마다 오히려 신이 난다. 단순 반복 노동에 지나지 않는 세차 일에서, 새로운 차량의 조작법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그가 몰다가 폐차한 캠리는 2011년식이었으므로, 새로운 기법이 전혀 적용되지 않은 전통적 구식 차량이었다. 렌트카 차량들은 모두 신식 차량으로, 무언가 색다른 기능들이 있다. 그는 렌트카 세차 일에서, 이런 색다른 차량에 대한 적응력을 기를 수 있다고 동기부여한다.

 

 단순 반복적 노동이라 쉽지만, 다양한 차량을 다뤄볼 수 있다. 또한 비자가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그는 세차장 일에 대한 애정이 한없이 치솟는다. 이대로 비자 만료까지 세차장에서 일하다가 워킹홀리데이를 끝낼 셈이다. 마침 세차장은 공항 근처여서, 가끔씩 하늘에 비행기도 보인다.

 

 

 그가 한없이 좋게 인식하긴 했지만, 세차 일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무시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출퇴근이 불편하고, 이로 인해 낭비되는 시간이 많다는 점이다. 케언즈 시내에서 공항까지는 차로 약 30분 거리다. 공항까지 가는 버스가 아주 가끔 있지만, 세차장까지 가는 버스는 없다. 즉, 차가 없으면 세차장까지 출퇴근이 불가능하다. 일본인 한 명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그는 자전거도 차량도 없다. 그는 별 수 없이, 매일 새벽 20분을 걸어 매니저의 집 앞까지 가서 차량을 함께 타고 출근한다. 차량에는 그와 매니저 외에도 두세 명이 더 탑승한다. 차량이 없으니, 다들 별 수 없다.

 

 출근을 매니저와 함께 하니, 퇴근도 함께 해야 한다. 문제는, 매니저의 퇴근 시간이 워커들보다 늦다는 점이다. 워커들이 일을 모두 끝마치고 나면, 매니저는 그제서야 이것저것 점검하러 돌아다닌다. 최소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이 넘게 점검한다. 매니저와 함께 차를 타는 워커들은, 그 시간 동안 꼼짝없이 매니저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만큼 퇴근 시간이 늦어진다. 차라리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일본인이 훨씬 낫다. 매니저와 함께 차를 타는 인원들은, 매니저의 출퇴근에 맞추기 때문에 출근도 30분 빠르게 하고 퇴근도 늦게 한다. 퇴근의 경우는 매니저가 바쁠 경우 언제 돌아갈지 기약이 없다.

 

 매니저와 함께 출퇴근하는 인원들은, 세차장에서 있는 시간이 거의 12시간에 육박한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 정도에 퇴근한다. 그는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매니저의 집까지 20분 정도 걸어간다. 내리는 것도 매니저 집 앞에서 내리기 때문에, 세차장에서 일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면 저녁 7시 반이 넘는 깜깜한 밤이다. 개인적인 생활은 없는 셈이다.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자가 만료되는 마지막 날까지 세차장에서 일하고자 한다. 일 자체는 괜찮고, 어차피 세차를 그만두면 다른 일을 구할 가능성은 없다. 그는 다른 워커들보다 밝고 명랑하게, 반복되는 세차 일에서도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해서 무언가 배우고자 열심이다. 슬프게도, 이런 적극적인 태도로 인해 오히려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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