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실수로 인한 사고, 사고 이후 180도 돌변하는 매니저, 지불해야 하는 1000불이라는 액수로 인해 그의 멘탈이 완전히 붕괴한다. 열심히 해보겠다고 노력하던 것이 모조리 물거품이 된다. 차라리 다른 워커들처럼, 시키는 일만 하고 굳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터다. 그가 혼자 신내고 나섰던 탓이다.
훗날 그의 이야기를 들은 케언즈의 한인들은 하나같이, 그가 바보같이 처신했다고 말한다. 어차피 CCTV도 없을 테고 아무도 못 봤는데, 모르는 척 공항 주차장에 가져다 놓고 걸렸어도 자신이 아니라고 잡아뗐으면 매니저도 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행동했다면 양심에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한 것이 맞고, 매니저도 그에게 시켰으니 정황상 그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 텐데 잡아떼는 것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정직하게 자신의 책임을 수용한 대가가 1000불이다. 금액이 500불 이하였더라면 그나마 충격이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1000불이라는 거금에, 그는 자신이 품어온 책임감과 행동에 심히 의심을 품는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했던 행동에 대해 피어오르는 의심과 자책, 다른 무엇보다 이 점이 그를 가장 괴롭혔다.
캐쉬잡이라는 고용 형태도 문제였던 듯하다. 그는 언젠가 백패커스에서, 그처럼 세차장에서 세차 일을 하는 룸메이트를 만나 이야기한 적이 있다. 룸메이트는 일을 하다가, 차를 두세 번 긁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동지를 만난 기쁨에, 수리비로 얼마를 부담했느냐고 묻는다. 룸메이트는, 한 푼도 부담하지 않았다고 한다. 긁힌 차를 본 매니저는, 룸메이트에게 다음부터는 조심하라고 말하고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그는 이 말을 듣고 너무나도 부러우면서도 동시에 속이 뒤집힐 것만 같다. 룸메이트는 해당 세차장에서 텍스잡으로 일했다고 한다. 세차장 매니저의 성격, 정부에 세금을 떼고 정식으로 신고한 고용 형태가 전부 좋은 방향으로 작용해서 룸메이트의 돈을 지켜준 것으로 보인다. 그의 경우는 매니저의 성격도 그렇고, 정부가 알지 못하는 캐쉬잡이었으므로 안전망이 전혀 없다.
수리비 1000불을 물게 된 이후, 그의 의욕이 완전히 죽어버린다. 매일 12시간 넘게 세차장에서 있으면서 일주일 동안 번 돈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세차장 일에서 책임 소지가 있는 일을 기피하기 시작한다. 운전대를 잡기도 무섭고, 차 옆을 지나갈 때도 무섭다. 매니저는 그에게, 왜 이리 느리게 일하냐고 핀잔을 준다. 그는, 사고가 나면 모조리 자비로 부담하는 상황에 어떻게 일을 빨리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그의 대꾸에 매니저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이다.
사고를 내고 이틀 뒤, 풀이 죽어있는 그에게 세차장 동료들이 다가온다. 프랑스인 동료는, 서투른 영어로 그에게 힘내라고 말한다. 자신도 차를 긁은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동료애가 피어나면서, 프랑스인에게 얼마를 뱉어냈느냐고 묻는다. 프랑스인은 1500불짜리 손상이었으며, 800불만 갚아 아직 700불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그는 프랑스인의 사고가 비교적 최근이었음에 놀란다.
더욱 놀랐던 점은, 접촉사고를 낸 것이 그와 프랑스인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본인, 중동인 등에게 물어보니 다들 접촉사고 경험이 있다. 그리고 사고를 낸 인원 모두가 수리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변상했거나, 아직도 변상 중이다. 누구는 700불이 남았고, 누구는 1500불을 이제 막 청산했고, 누구는 200불이 남았고 하는 식이다. 그는 같이 돈을 갚아야 한다는 동료애를 넘어서서,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하다는 점을 눈치챈다. 이 세차장에서 일하는 워커들은 돈을 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차장 측에게, 일하다가 난 접촉사고에 대한 수리비를 갚고 있는 것이다.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그는 더더욱 세차장에서 일할 마음이 사라진다. 지금까지 일주일간 세차장에서 일한 돈이면, 대충 1000불이 조금 넘을 것이다. 그는 세차장 일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한다.
그만둘 생각을 하긴 했지만, 조금이나마 친해진 동료들이 있다. 고민하던 그가 결정을 내리도록 쐐기를 박은 것은 매니저다. 매니저는 사고 이후에도 변함없는 태도로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일을 시킨다. 그는, 사고가 나자 태도를 180도 완전히 뒤집어버린 매니저의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에 속으로 굉장히 아니꼽게 생각한다.
사고 며칠 뒤, 세차장이 한가하다. 렌트카 예약이 별로 없는지, 오전부터 한산하다. 그러자 매니저는, 그를 포함한 인원 4명에게 오후 2시에 퇴근하라고 말한다. 일본인은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고, 다른 두 인원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는 매니저에게, 자신은 차가 없는데 어떻게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 (저녁까지 일을 시켜달라는 말이다.) 매니저는, 그건 자신이 알 바가 아니라고 말하며 사무실로 들어가 버린다. 그는 매니저의 이 태도를 본 순간,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버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그는 마음을 굳힌다.
그는 매니저에게, 일을 그만두겠다고 문자로 통보한다. 매니저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답장을 한다. 차량 수리가 끝나면, 그가 지금까지 일한 금액에서 수리비 1000불을 제하고 차액을 보내주겠다는 내용이다. 그는 매니저의 답장을 읽으며, 차액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든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매니저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수리비가 오히려 그의 일당보다 더 나와서 매니저가 자비로 차액을 부담한 것인지, 그의 일당과 꼭 맞는 금액이어서 차액이 없었는지, 아니면 다른 차량들과 함께 보험 처리해버리고 그의 수당은 매니저의 주머니로 들어갔는지의 여부는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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