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돈이긴 하지만, 남은 기간 동안 굶거나 노숙하지는 않을 정도의 돈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는 만족스럽지 않다. 돈도 돈이지만, 남은 1달 여의 기간 동안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가 막막해서다. 그는 되도록이면 남은 기간 동안 일을 하고 싶다. 워킹홀리데이 마지막 한 달여 동안 일을 해서 돈도 벌고, 가끔 맛있는 것도 사 먹고, 그러다가 비자가 만료되면 덤덤하게 평상시처럼 호주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싶다.
그는 케언즈 도서관으로 간다. 호주의 여타 도시들처럼, 케언즈도 공공 도서관이 깔끔하게 잘 지어져 있다. 그는 컴퓨터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잽싸게 앉는다. 컴퓨터를 차지하고 앉아서, 일자리를 닥치는 대로 검색한다. 어떤 일자리든 상관없다. 시급이 많지 않아도 좋다. 그는 만약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면, 이번이 그의 워킹홀리데이 마지막 직업이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호주 웹사이트인 검트리, 한인잡 웹사이트까지 마구잡이로 검색하던 그의 눈에, 한 공고가 보인다. 공항 쪽 세차장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다. 그는 얼른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한다. 혹시나 비자가 얼마나 남았냐고 물어보면 어쩌나, 그는 얼버무려야 할지 거짓말을 해야 할지 갈등한다. 갈등하는 와중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는다.
전화기 건너편 목소리는 남자다. 남자는 그에게, 오늘 면접을 보고 내일 당장 일을 시작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는 이게 웬 떡이냐 싶어, 가능하다고 말한다. 남자는 지금 당장 자신이 면접을 보러 가겠다며, 주소를 묻는다. 그는 자신이 지내는 백패커스의 주소를 말한다.
전화를 끊고, 그는 걸어서 5분 거리인 백패커스로 돌아간다(도서관도 케언즈 중심 시가지에 같이 있다). 그가 도착해서 잠시 기다리니, 차량 한 대가 백패커스 앞에 선다. 운전석에서 내리는 이는, 전화를 받았던 상대방이다. 거무스름한 피부의 외국인, 즉 세차장 매니저다.
매니저는 그의 비자 상태를 묻지 않는다. 인사치레로 몇 마디 나눈 뒤, 매니저는 바로 일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은 케언즈 공항 쪽 렌트카 세차장의 매니저이며, 세차할 인원이 필요하다 말한다. 고용 형태는 계약서 등을 작성하지 않는 캐쉬잡이며, 시급도 높다. 그는 조건을 듣고는 당장에 OK라고 말한다. 비자가 얼마 남지 않아, 일도 못하고 시간만 허비하게 될 줄 알았는데 케언즈에 도착하자마자 기회가 주어진다. 그는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눈앞의 매니저가, 예전의 Tom처럼 천사로 보인다.
매니저는 다시 일을 하러 가야 한다며, 몇 시간 내로 다시 연락하겠다고 한다. 내일 아침부터 바로 일을 시작할 것이며, 자신의 집 쪽으로 오면 함께 차를 타고 출퇴근할 것이라 말한다. 그는 그저 알겠다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케언즈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이 기회가, 자신과는 전혀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던 행운이 마침내 와준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다음날부터 세차를 하며, 워킹홀리데이 비자 만료 때까지 열심히 일할 생각이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이 기회가, 그가 생각한 것처럼 행운인지 무엇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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