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날이 도래했다. CEO 강의를 몇 번이고 반복해 봐서인지, 11번째 기업 CEO의 목소리가 귀에 울릴 지경이다. 그는 CEO가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주인 의식'을 장착한 상태다. 아직 면접은 시작조차 않았건만, 그는 벌써 자신이 11번째 기업 직원이자 작은 경영자인 듯한 착각이 든다.
11번째 기업, 해외시장전문가 신입 면접 (비대면 Zoom 면접)
면접자 : 그를 포함해 2명
오랜 기간 해외 생활을 해서 한국말이 서툰 박 어거스틴(가명)
그
면접관 : 총 3명 (여자 1 / 남자 2)
안경을 끼고, 얼굴에 살집이 약간 있으며 머리가 곱슬인 40대 여자 면접관 1
같은 화면에 나란히 앉아있는, 피부가 하얗고 나이대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면접관 2,3
줌 링크를 타고 들어가자, 총 네 개의 화면이 보인다. 지원자 둘이 각각 하나씩, 면접자 1이 하나, 면접관 2와 3이 한 화면에 자리 잡고 있다. 분위기상 면접관 1이 가장 상사인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질문과 면접 진행은 면접관 1 혼자서 맡았으며, 면접관 2와 3은 비중이 없어서인지 화면도 함께 나눠 쓰고 질문도 거의 없다시피 한다.
그는 면접관 1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해선 안되지만 굉장히 성격이 센 아줌마일 것 같다고 느낀다. 동시에, 이미지로 보아 면접관 1과 그는 꽤나 상극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자리는 면접이다. 면접관의 인상과 성격이 어떻든, 면접자인 그는 자신을 어필해서 팔아야 한다. 항상 그랬듯, 그는 광대를 올리고 웃는 얼굴을 장착한다.
면접관 1 : 안녕하세요~
그 : 안녕하십니까!
박 어거스틴 : 안녕하세요~
면접관 1 : 네, 해외시장전문가 면접 시작할게요. 박 어거스틴, 하얀 얼굴 씨 맞죠?
면접자 일동 : 네!
면접관 1 : 네, 반가워요. 면접에 앞서서. 오늘 면접 직무가 해외시장 전문가이기도 하고, 박 어거스틴 씨는 한국말이 서툴러요. 그러니 오늘 면접은 영어로도 종종 진행하도록 할게요.
면접자 일동 : 네.
면접관 1 : 네, 먼저, 박 어거스틴, Can you introduce yourself?
박 어거스틴 : Oh, OK.... Um... Hi, My name is Augustin. Happy to be here. Bit nervouse but... I'll try my best to show myself. Hope we can have great interview today.
면접관 1 : ... (잠시 기다리다가) 끝난 거예요? 박 어거스틴, finish?
박 어거스틴 : 네.
면접관 1 : 어... 보통 면접 때는, 자기소개를 1분 정도 하고 시작해요. 준비한 자기소개 없어요?
박 어거스틴 : Um.... 네...
면접관 1 : ...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흐른다)
면접관 1 : 우선은, 다른 지원자 자기소개를 들을게요. 그동안 생각하고, 다시 자기소개할까요 박 어거스틴?
박 어거스틴 : Um.... 네....
확실히 해외생활을 오래 한 유학파라 그런지, 한국 기업의 면접 유형은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면접관 1 : 그래요. 하얀 얼굴 씨, 자기소개해보세요.
그 : 네, 알겠...
면접관 1 : 아, 영어로 해보세요.
그 : 알겠습니다.
그는 이 부분에서, 살짝이지만 열이 오른다. 면접관 1이 말하는 어투 때문이다. 같이 면접 보는 지원자는 한국말이 서툴고 오히려 영어가 편한 정도이니, 별 기대도 되지 않지만 너도 영어로 한번 자기소개해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려가려는 광대를 힘주어 고정한다.
그 : K, Hello, My name is 얼굴 하얀, applying for International market Specialist. I'd like to introduce myself briefly through two strong points. First, Power of Execution. I did working holiday... Second, Sociability. I enhanced my Sociability... Through these two strong points, power of execution and sociability, I think I can contribute to your company. Thank you.
그는 이미 9번째 기업에서 영어 면접을 경험했다. 자기소개는 당시와 동일하게, 스크립트를 외운 것마냥 술술 나온다. 하지만 면접관 1의 표정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
면접관 1 : 네, 잘 들었어요. 박 어거스틴, 자기소개 준비됐나요?
박 어거스틴 : 네? 자기...소개요?
면접관 1 : 네, Can you introduce yourself again? 아니면 그냥 면접 진행할까요?
박 어거스틴 : Again? Um....
면접관 1 : 아니에요. 질문드릴게요 박 어거스틴.
그는, 면접관 1과 박 어거스틴을 보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아예 그냥 다시 자기소개하라고 하던지, 괜히 애매하게 물어보고는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있다가 어물쩡 질문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처음에도 그랬지만, 그는 뭔가 이번 면접에서 싸한 느낌을 감지한다. 그는 감이 둔한 편에 속하지만, 이런 식의 싸한 감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탁월한 감각의 보유자다. 이후로 면접관 1은, 그의 존재는 잊어버린 듯 박 어거스틴에게만 질문한다. 그가 말로만 들었던, 그 희귀하다는 '병풍 면접'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면접관 1 : 박 어거스틴, 해외에서 오래 산 것 같네요. 어디 어디에서 있었나요?
박 어거스틴 : 아.... 어.... Oh! I can speak English, right?
면접관 1 : Yes.
박 어거스틴 : OK. I moved to Russia When I was in elementary school. I graduated Elementary, middle, high school in Russia and then went to University. During University, I went to USA for 4 months as exchange student, came back and graduated.
면접관 1 : Oh, You lived in Russia. How was it?
박 어거스틴 : It was great. I met my best friends, studied mangement and ~~~!@#$!!@@#!%
한국어로 말할 때는 어눌해 보였지만, 영어로 말하기 시작하니 박 어거스틴은 입이 터진다. 말 그대로 검은머리 외국인이다. 러시아에서 살았던 배경 탓인지, 영어를 할 때에도 러시아 특유의 발음이 약간은 묻어난다. 그는 박 어거스틴에게는 악감정이 없다. 박 어거스틴의 말을 들으며, 왠지 영어 듣기 평가를 하는 느낌이다. 혹시라도 그에게, 박 어거스틴이 무슨 말을 했는지 다시 말해보라고 할 수도 있으니 그는 박 어거스틴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다.
들을수록 뭔가 이상하다. 면접관 1은 영어를 아주 못하진 않지만, 면접을 이끌어갈 정도는 못 되는 것 같다. 직무에 대한 내용, 회사에 대한 관심도 등은 제대로 묻지 못하고 계속해서 일상적인 것만 묻는다. 당연히도, 일상적인 내용에 대해 답하는 박 어거스틴은 너무나도 편하고 신이 난 듯 보인다.
면접관 1 : And in the resume..... You did some project. What was that project?
박 어거스틴 : Oh, That was the project when I was sophomore(2학년). I find some friends who share same idea with me, and we tried to do business using that idea.
면접관 1 : Oh, When you did the project, Was there anything difficult to do?
박 어거스틴 : Um.... Oh yeap. After we finished planning the business, we tried to operate the process. Everything was fine, but there was one problem. The problem was, we couldn't find the distributor. At that time. There was no one~~ !@#@#%!@$!@
Distributor, 직역하자면 분배자라는 뜻이다. 그는 속으로, 소매업자나 도매업자, 또는 중간에서 물건을 사서 다시 되팔아줄 업자를 뜻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박 어거스틴은 수출과 수입 거래가 포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했는데, 다른 나라에서 자신들의 물건을 사서 되팔 중간업자를 찾기 힘들었다는 뜻이리라. 이후의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으나 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박 어거스틴이 열심히 이메일을 날리고, 열심히 전화를 걸어서 마침내 Distributor를 찾았다는 내용이다.
가만히 있던 면접관 2와 3이, 갑작스레 끼어들어 질문한다.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면접관 2/3 : 박 어거스틴 지원자께 질문이 있어요. 혹시, 학업 이외에도 본인이 꾸준히 해온 활동이 있나요?
박 어거스틴 : Oh, ... 학업... 이외...? Sorry, I cannot understand Korean well.
면접관 2/3 : (당황하며) 아... 그러니까.... What is your hobby?
박 어거스틴 : My hobby? I do jogging when I have a free time. ~~@!@#$!@%@#$
면접관 2/3 : Oh... Ok... Thank you.
면접관 2/3은, 자신들의 존재를 잊지 말아 달라는 듯 질문을 했다. 그러나 기존 의도와는 달리 질문이 왜곡되었다. 학업 이외에 무슨 성취가 있느냐는 질문이었을 텐데, 당황한 나머지 이를 그냥 hobby(취미)로 번역해서 물어본 것이다. 취미라고 하니, 당연히 박 어거스틴은 가볍게 조깅이라고 답해버리고, 뛸 때 자신의 기분이 어떻다는 등의 약간의 감상만 말하고 끝내버린다. 면접관 2/3은, 자신들이 듣고자 하는 질문을 제대로 전달조차 하지 못한 채로 질문을 끝낸다.
그의 병풍 역할은 계속된다. 면접관 1은 계속해서 박 어거스틴에게만 질문한다. 그는 자신도 답변할 차례가 올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웃음을 띤 표정을 유지했으나, 그렇게 15분이 넘게 흐르자 점점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면접관 1은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편중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서인지, 갑자기 그에게 질문을 한다.
면접관 1 : 네, 이번에는 하얀 얼굴 씨..... 하얀 얼굴 씨는,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그 : 네, 저는 해당 기간을 통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제가 자기소개서에 적어 놓았듯, 워킹홀리데이 당시 정말 많은 일을 했고 또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낯선 외국에 나가 홀로 지내면서도 목표한 바를 모두 이룬 것은 정말 큰 경험이었습니다. 무엇이든 행동하고 실천하면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서 돌아왔습니다.
면접관 1 : 네, 그래요. 알겠습니다.
설마 했지만, 이 질문이 그가 받은 마지막 질문이 된다. 그는 이번 면접에서, 이 질문과 자기소개, 딱 2번만 발언권을 얻은 것이다.
면접관 1은 다시 박 어거스틴에게 관심을 쏟는다. 해외 생활이 어땠냐, 한국에 돌아와서 힘든 것은 없었냐 등 별 의미 없는 질문뿐이다. 그는 속으로, 도대체 왜 면접이 이 모양인지, 인사팀이 설정한 기준이 문제인 것인지 면접관이 문제인 것인지 궁금하다.
면접관 1 : 박 어거스틴,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겪은 차이? 괴리? 같은 것이 있을 거 같아요. 그러니까, Um.... Can you tell me, When you come back to Korea, Did you experience any different, or difficult situation?
박 어거스틴 : Um..... Oh I have one. I have a difficult situation about Hierachy(계급, 위계질서라는 뜻).
면접관 1 : Hierachy?
박 어거스틴 : Yes, Hierahcy.
그는 박 어거스틴의 답변을 들은 순간, 즉각 다음 내용이 예상이 된다.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한 외국에서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수직적인 문화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뜻 이리라.
박 어거스틴 : For example, When I talk to my professor, I look straight to his eyes. But he didn't like it. My professor said, In Korea, look straight to eye means disrespect and rude. At first, I was confused. But he repeatedly say that and I try not to look his eye directly.
(면접관 1은 박 어거스틴의 이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면접관 1 : 네? 무슨 말이에요? 박 어거스틴, 그렇지 않아요. 한국에서도 눈을 똑바로 보고 이야기해야 해요. 제가 무슨 말하는데, 부하 직원이 눈을 안 보고 있으면 오히려 무시당한다고 생각할 거예요. 박 어거스틴, 그거 아니에요! (무슨 어린아이 달래듯 말한다)
박 어거스틴 : Oh, OK....
그는 완벽한 제 3자, 사물, 자연의 일부, 배경이자 병풍이 되어 면접을 관망하고 영어 듣기를 한다. 그가 보기에도, 지금 이 면접이 도대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설마 했지만, 그는 끝끝내 더 이상의 발언권을 얻지 못한다. 면접관 1은 마지막 말도 시키지 않고 면접을 끝낸다.
면접관 1 : 그래요. 이것으로 면접을 마치겠어요. 다들 수고했어요.
11번째 기업에서의 13번째 면접, 그가 얻은 발언권은 딱 두 번이다. 처음 자기소개 때, 그리고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무엇을 얻었느냐는 질문이 전부다. 이외의 20분 가까운 시간 동안, 그는 광대를 올리고 끄덕거리며 계속해서 듣기만 했다. 이번에도, 혹여나 면접관님의 심사를 거스르지는 않을까 광대를 부여잡았던 힘겨운 가면 연기를 한 것이다.
취준생 입장에서, 면접관은 곧 회사의 얼굴이다. 가뜩이나 취준생들은 기업에 들어가고자 혈안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엥간해서는 면접관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기 힘들다. 특히나 그처럼 나이가 많아 붙여주기만 하면 어디든 충성할 각오가 되어있는 면접자로서는 더욱더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그조차도, 이런 면접을 경험하자 기분이 상당히 더럽다. 병풍 면접 병풍 면접, 커뮤니티 등에서 많이 들어보긴 했던 그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겪어보니, 그 비참함과 분노는 생각보다 크다. 이럴 거면 차라리 부르지를 말지, 지원자 엿 먹어보라고 부른 것인가? 물론 그는 11번째 기업 서류에 다른 기업의 이름을 적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긴 했다. 그런데, 그 자기소개서를 읽긴 했나? 면접 진행조차도 이 모양인데, 그런 회사에서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제대로 읽는 노력을 하기는 할까 의심스럽다.
11번째 기업은, CEO는 대학교를 돌아다니며 직원 하나하나가 작은 경영자/주인 의식 어쩌고 운운하는데 채용 면접이 이 꼴이다. CEO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는데 밑의 직원이 따라주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CEO도 바깥에서 강연만 그럴 뿐 실상은 안에서 줄줄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폼만 잡는 것일까. 신입 채용 1차 면접을 주도하는 면접관 정도면, 회사에서도 실무를 담당하는 허리 역할일 터다. 회사의 허리가 주도하는 면접이 이 모양이라면, 허리가 이렇게 썩었다면 회사 전체는 어떤 것일까.
그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이번 병풍 면접으로부터 추론되는 11번째 기업은 셋 중 하나다. 회사 전체가 그 모양이거나, 그가 만난 면접관만 썩었거나, 아니면 그가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거나. 하지만 그가 면접에서 마음에 안 드는 짓을 했다기엔 발언권이 너무 없었다. 자기소개서의 다른 회사 이름이 문제였던 것일까? 잘은 모르겠으나, 그가 면접장에서 만난 11번째 기업은 지원자들의 긴긴 자소서를 모두 읽는 기업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자신이 11번째 기업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못 파악했음을 깨닫는다. 면접을 준비하며 그가 투영했던 파랑새의 모습을, 11번째 기업은 끝끝내 그 파랑새의 탈을 찢어버리며 뚫고 나온다.
얼마 뒤, 11번째 기업으로부터 메일이 도착한다.
1차 면접 불합격
그는 어이가 없어서 웃는다. 이런 생각하면 안 되지만, 그는 괜스레 아줌마 면접관에 대한 편견이 강해진다. 불행 중 다행인지, 그가 경험한 '병풍 면접'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다.
'취업 준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헬스장의 취준생 (0) | 2022.06.04 |
---|---|
하반기 결산 (0) | 2022.06.04 |
11번째 기업 면접 준비 (CEO 강의, 주인의식, 과몰입) (0) | 2022.06.04 |
11번째 기업 (다른 회사명 기재, 서류 합격, 인적성) (0) | 2022.06.04 |
10번째 기업 최종 탈락 (배신감, 뒤늦은 분노) (0) | 2022.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