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가 끝났다. 그가 졸업을 유예한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졸업 유예 기간도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졸업 유예를 한 차례 더 신청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11번째 기업 탈락을 끝으로, 하반기에 작성한 기업 중 남은 곳은 하나도 없다. 모조리 서류에서 탈락하거나, 1차 면접에서 탈락하거나,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다. 어느 단계에서 탈락했건, 결과는 똑같다. 그는 최종 합격하지 못하고, 모조리 탈락을 맛보았다.
하반기는 끝났지만, 곧이어 상반기 채용 공고가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한다. 자신이 지원할 수 있는 직무는 모조리 넣고 있는 그로서는, 당장 다시 서류 지원을 시작해야 할 판이다. 서류 난사는 다시 시작해야겠지만, 그는 왠지 하반기의 취업 결과를 정리해두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왠지 그렇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독서 후 읽은 도서 목록을 작성했을 때부터 조금씩 정리하는 습관이 생겨났다. 거창한 이유로 정리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다. 어차피 보여줘 봤자, 별로 인정받지도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시간을 들여서 정리하는가.
비록 모조리 탈락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는 나름대로 꽤나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하루의 반나절 이상을 컴퓨터 앞에 죽치고 앉아 서류를 난사하고, 그렇게 난사하다가 어느 한 군데가 운 좋게 얻어걸리면 면접 준비에 더욱 열을 올렸다. 면접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마감일이 닥친 공고에는 계속해서 난사를 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독서까지 감행했다. 아예 서류가 싹 다 탈락해버리면 며칠 그냥 쉬어버리기라도 하겠지만, 기업들은 뜨문뜨문 합격 메일을 보내며 그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이 기업 면접 준비가 끝나고 조금 편해질 즈음이면, 어김없이 저 기업에서 면접 안내 메일을 보내며 그가 쉬는 것을 놔두지 않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미친 듯이 서류를 난사한 그가 자초한 상황이다.
어쨌든, 그는 6개월 동안 꽤나 바빴다. 1주일에 한 번씩은 반드시 인적성 검사나 면접이 있었고, 남는 시간은 서류 지원과 독서로 채워 넣었다. 이렇게 바쁘게 지내는 시간을, 그는 기록해두어야겠다고 느낀다. 남들은 모르더라도, 관심도 없고 알아주지도 않더라도, 그 자신만큼은 자신이 왜 그리도 바쁘게 지냈는지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훗날 그의 머릿속에서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더라도, 기록해놓은 것을 보면 다시 기억이 되살아나리라. 그래서 그는 자신의 취업 활동을 정리하고, 반기가 끝날 때마다 일종의 결산을 한다.
그의 하반기 결산, 성적표는 이렇다.
총 서류 지원 횟수 269회 (서류탈락 238회 / 서류합격 31회)
서류 합격 31회 중, 사기업이 19곳 (공기업은 필기에서 모조리 탈락한다)
필기 횟수 17회 (필기탈락 13회 / 필기합격 4회)
면접 본 기업 11개 (1차 면접 탈락 9 / 1차 면접 합격 2)
(2차 면접 탈락 2 / 2차 면접 합격 0)
서류합격률 11.52%(사기업 7%) / 필기합격률 23% / 1차 면접 합격률 대략 20% / 최종 합격률 0%
하반기 채용인지 상반기 채용인지 애매한 공고도 있고, 공기업 등이 포함되어 숫자가 약간씩은 뒤틀린다. 그는 어차피 자신을 위해 정리하는 것이니, 숫자가 약간 맞지 않는 것은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참고용일 뿐이다.
가볍게 참고할 정도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서류 합격률이나 면접 합격률은 꽤나 절망적인 숫자다. 도대체 뭘 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생각을 더 해보려다가, 점점 더 쏟아져 나오는 상반기 채용 공고들을 보며 생각을 멈춘다. 고민할 때가 아니다. 우선은 서류부터 들이밀어놓고 보자. 최소한의 조건은 생각해두었으니, 그 기준만 맞으면 일단 넣자. 지원하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지금껏 면접 본 회사들도 아주 답 없는 회사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다. 다만 그 기회를 만나기 위해서는, 억지로라도 서류 지원 횟수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다.
당시의 그가, 자신의 방법이 틀렸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그가 바꿔야 할 법한 마땅한 방향이 딱히 보이지 않았다. 또한 그는, 이미 269번이나 서류를 난사하면서 엄청난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투자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커다란 '매몰 비용'이다. 합리적인 경제인이라면 매몰 비용은 고려하지 않아야 한다고들 말한다. 이전까지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들었던, 가망이 없어 보이면 이전의 매몰 비용은 고려하지 말고 미래의 효용만 따져서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른 것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경영학도이지만, 합리적인 경제인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이 그동안 열정적으로 갖다 버린 시간과 노력이 눈에 밟힌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제 와서 아예 방법을 바꿔버린다? 그는 그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잘못된 방향이더라도, 정말 만일 그렇다 하더라도, 잘못되지 않았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다. 자신이 쏟은 시간과 노력들은, 최종 합격만 한다면 모두 보상받을 것이다. 최종 합격을 위해선, 서류를 더욱 미친 듯이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다. 그는 자신이 정했던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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