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업 준비

14번째 기업

 14번째 기업으로부터 면접 안내 메일이 도착한다. 매출이 2200억 정도 되는,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제약 회사다. 그가 지원한 직무는 '해외영업지원'이었다.

 

 제대로 알지는 못해도, 그는 주위로부터 주워들은 불확실한 정보들이 약간 있다. 그런 정보들 가운데, 제약회사 영업직은 입사하지 말라는 정보가 있다. 영업 직무는 업의 특성상, 대졸 신입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직무로 분류되곤 한다. 하지만 같은 영업으로 일을 하더라도, 평판이 특히 더 낮은 산업들이 있다. 그의 인식에는 중고차업계, 보험업계, 제약업계가 그렇다. 쉽게 말하자면, 그는 잘은 모르겠지만 중고차 영업, 보험 영업, 제약 영업 이 세 가지 만큼은 별로 하고 싶지가 않았다. 관련해서 좋지 않은 이야기를 종종 들어서다.

 

 14번째 기업은, 이러한 연유로 그에게 까닭 없이 미움받는 제약업계다. 만일 14번째 기업이 채용하는 직무가 그냥 영업직이었다면 그는 지원하지 않았을 터다. 하지만 14번째 기업이 채용하는 직무는, '해외영업지원'이다. 국내 영업이 아니고, 해외영업도 아닌, 해외영업지원이다. 지원이라고 하니, 그래도 일반 제약 영업직보다는 덜 빡세지 않을까. 가뜩이나 국내도 아닌 해외영업지원이니, 이 정도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이런 계산 아래 그는 14번째 기업 해외영업지원 직무에 지원했고, 서류를 합격했다.

 

 

 면접 준비를 하면서 기업 리뷰를 찾아보는 그는, 14번째 기업이 특정 종교를 믿는 회사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국에 널리 퍼져 있는 종교인데, 옛날 리뷰를 찾아보니 종교 강요가 있었다는 류의 평이 종종 있다. 하지만 최근의 평으로 올수록 종교 관련 언급이 없다. 종교색을 벗어던지고 새롭게 쇄신하는 데 성공한 것인지, 회사 차원에서 기업 리뷰를 찍어 누르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그는 14번째 기업 면접에 참석하는 취준생일 뿐이다.

 

 

 제약업계라고 해서 모든 회사가 신약을 개발하지는 않는다. 신약은 개발하는 데 성공하면 대박이 터지는 셈이지만, 그 성공 확률이 상당히 낮다.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드는 임상 시험이라는 것을 3번이나 시행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목표한 약효가 나오지 않을 경우 이전까지의 과정이 물거품이 된다. 임상 진행 중에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절대로 생기지 말아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신약 개발은 이렇게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그래서 많은 제약 회사들은, 특허 기간이 만료된 신약을 복제하거나 성분을 사용하여 약을 만든다. 이른바 개량신약(제네릭)이다. 14번째 기업은 한국 제약업계에서 이 개량신약(제네릭)으로 꽤나 이름을 날린 회사다.

 

 14번째 기업은 면접 때 자기네 회사의 약품 이름을 기억나는 대로 모두 말해보라는 질문을 했다는 후기가 상당히 많다. 덮어놓고 암기라면 그도 꽤나 자신 있는 분야다. 그는 기업 홈페이지에 들어가, 14번째 기업이 자랑스럽게 나열해놓은 개량신약의 이름을 달달 외우기 시작한다. 너무 많기 때문에 모두 다 외울 수는 없다. 그는 약 10개 정도를 추려 달달 외운다. 이렇게 암기를 하는 성의를 보이겠다는, 이렇게라도 해서 어필하겠다는 그의 눈물겨운 전략이다.

 

 

 면접날이 되어, 그는 14번째 기업으로 향한다. 14번째 기업은 서울 중심 지역에 위치해있는데, 지하철역에서 거리가 꽤 멀다. 그는 지하철역에서 15분 이상 걸어간다. 걸어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평평한 길이 아니라 커다란 언덕이 연속으로 있다. 그는 정장에 구두를 신고 언덕을 오른다. 네이버 지도의 경로는 대로변에서 벗어나, 단독주택과 주거 건물들이 있는 쪽으로 그를 안내한다. 그는 속으로, 회사의 위치가 약간 엉뚱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회사 위치 때문만은 아니지만 왠지 오늘 면접을 보기 싫은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하지만 이 먼 곳까지 준비해서 오지 않았나. 그는 솟구치는 충동을 억누르고 14번째 기업 건물로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