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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

15번째 기업 (전통주)

 14번째 기업의 16번째 면접을 보고 나흘 뒤, 그에게는 또다시 면접이 일정이 잡혀 있다. 하루하루 졸업 날짜가 다가오는 것이 대놓고 체감이 되면서, 안 그래도 난사하던 서류를 더욱 난사한 결과다. 심지어 그는 주류 회사의, 주류 영업직에도 지원을 했다. 바로 15번째 회사다.

 

 주류 영업직 또한, 안 좋은 소문이 들리는 경우가 많다. 영업직 자체가 인식이 썩 좋지는 않은데, 가뜩이나 술을 팔아야 하는 영업이면 오죽하겠나. 그래도 그는, 아직 세상이 그렇게까지 병들진 않았으리라는 근거 없는 판단을 내린 상태다. 안 그래도 비참하고 한심한 처지의 취준생인 그다. 억지로라도 생각을 비운 채, 흐리멍텅하고 해맑게 세상을 바라봐야만 했던 것 같다.

 

 

 15번째 회사는, 한국의 전통 술을 제조하여 판매하는 주류 제조업체다. 15번째 기업 리뷰에는, 주류 제조업체 치고는 분위기가 썩 나쁘지 않으며, 전통주의 부흥에 기여하는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는 평이 꽤 보인다.

 

 그는 술을 잘 모르는 편이다. 성격은 활발해서, 그는 사람들이 시끌벅적 떠드는 술자리를 싫어하진 않는다. 그래서 술을 싫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술은 하염없이 쓴 맛이 나는 액체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많이 마시고 나면, 다음날 술을 깨느라 시간이 한나절씩 소요되곤 했다. 그에게 술이란, 다른 사람들과 어색함을 없애주는 대가로 몸을 망치는 액체일 뿐이다. 20대 초반에는 몸이 버텨주었으니, 그도 별 생각 없이 술을 무리해서 마시곤 했다. 

 

 하지만 20대 중후반에 접어들수록, 잡생각이 많아질수록 그는 조금씩 술을 멀리한다. 맛도 없고, 몸은 망가지고, 시간과 돈이 축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술자리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시끄럽게 떠들던 시간도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친구 중 한 명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술자리에서 취해서 떠드는 대화의 의미를 모르겠다. 취해서 나오는 대로 떠들 뿐이다. 어차피 다음날 본인들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도 못한다.

20대 초반에는 동의하지 않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친구의 말에 적극 동의하는 그다. 

 

 

 이렇듯 술맛도 모르고 술을 멀리하기 시작하는 그가, 주류 회사의 주류 영업직으로 면접을 본다. 당연히 내키진 않지만, 그는 무한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한다. 꼭 술고래가 아니어도, 주류 영업으로 일할 수도 있지 않겠나. 우선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먼저이지 않나.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다 보면, 나중에 더 좋은 기회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주류 영업이 빡세다고는 하지만, 젊었을 때 빡센 경험을 해보는 것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좋은 경험이고 피와 살이 될 것이다. 마인드만큼은 칭찬해주고 싶을 만큼 긍정적인 그다.

 

 면접 준비를 위해, 그는 15번째 회사를 들이파기 시작한다. 15번째 회사는 매출이 1000억을 살짝 넘는 전통주 제조업체다. 한국의 전통주 제조업체는 수가 많지 않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회사다. 전통주 시장은 세네 개 정도의 업체가 경쟁하는 독과점 형태다.

 

 그는 괜히 전통주 제조 방법, 전통주의 역사 등도 알아본다. 한국의 전통주는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좋은 편이다. 비가 오거나, 등산을 하고 난 뒤에 전통주를 찾곤 한다. 이러한 한국의 전통주는, 한때 해외에서 크게 인기를 끌며 수출 물량이 대폭 증가했던 때가 있었다. 그도 어릴 적, 전통주가 일본과 서양 등지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한 때 반짝했을 뿐, 최근에는 다른 주류들에 밀려 전통주의 인기가 국내이고 해외이고 그저 그런 듯하다. 몇 안 되는 전통주 회사 중에서도 유명한데, 매출이 1000억을 간신히 넘는다. 그는 전통주 시장이 썩 크지는 않구나 생각한다.

 

 

 15번째 기업은, 전통주 이외에도 한국식 주류를 자체 개발하여 판매한다. 개발한 주류에 이름을 붙였는데, 이 이름 또한 꽤나 인지도가 높다. 한때는 광고도 많이 하고, 인기도 좋았다고 한다. 술에 한약재 등을 첨가하여 만든, 한국식 건강주이자 약주다. 술은 건강을 해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니, 약재를 첨가해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술로서 애주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리라. 

 

 하지만 2010년대 중반, 15번째 기업의 효자 제품이던 자체 개발 한국식 주류에 문제가 터진다. 해당 주류의 주요 원재료로 쓰던 한약재 중 하나가, 유통 과정에서 가짜가 유통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파문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해당 가짜 한약재가 몸에 좋지 않다고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나, 각종 건강식품에 사용되던 한약재였으니 타격은 상당했다. 당연히 15번째 기업의 건강주이자 약주인 효자 제품의 명성에도 크게 금이 갔으며, 15번째 기업은 해당 주류를 전량 회수하기에 이른다. 이후로 사태가 잠잠해지긴 했으나, 효자였던 해당 주류는 15번째 기업의 아픈 손가락이 되고 만다.

 

 

 그는 15번째 기업에 대해 이것저것 조사해보면서, 면접에서 해당 한약재 파동에 대한 언급은 되도록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면접관들은, 면접자가 자신들의 치부나 약점을 들추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전통주 제작 회사이니, 겉으로는 아닌 척하더라도 약간은 보수적일 것이라 생각하는 그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주류 영업 면접을 보는 그, 그는 이번 면접에서는 애주가라는 가면을 쓰고 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