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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

첫 출근 (신입사원)

 39번째 기업은 최종 합격자들에게 신체검사 결과와, 전염병 음성 확인 결과서를 요구한다. 혹시라도 최종 합격 후 출근 바로 코앞에서 미끄러지면 어쩌나, 그는 노심초사하며 신체검사와 전염병 검사를 받는다. 다행히 별 이상은 없다.

 

 

 안녕하십니까? 39번째 기업입니다. 안내드린 입사예정일 오전 9시까지 본사 0층으로 오시면 되겠습니다. 사장님과의 인사가 있을 수 있으니, 꼭 정장 차림으로 출근해주시기 바랍니다.

 본사에 도착하시면 저에게 연락 주시고, 제가 연락을 못 받을 경우 XXX팀 XXX과장님으로 연락하시면 안내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

 

 그로써는 첫 최종 합격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신규 입사자를 대상으로 필요한 것이 많은 듯하다.  39번째 기업에서는 계속해서 요구사항과 준비사항 등이 적힌 안내 메일이 날아온다. 혹여나 밉보이지 않기 위해, 그는 메일에 적힌 요구사항들을 모두 따른다.

 

 

 

 새해가 되어, 안내받았던 첫 출근일이 밝는다. 며칠 전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어버렸지만, 그는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며 자신이 20대와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안내받은 대로 정장을 입는다. 사장과 인사가 있을 수 있으니 정장을 입고 출근하라고 안내를 받았다. 오히려 잘됐다. 자유 복장을 입으라고 했으면 무엇을 입어야 할지 헷갈렸을 것이며, 무엇보다 그에게는 옷 자체가 그리 많지 않다. 자유 복장을 입으라고 안내받았어도 그는 아마 정장을 입었을 가능성이 크리라. 39번째 기업에 두 차례 면접을 위해 방문했을 때와 똑같이, 그는 면접용 정장을 입고 위에 패딩을 걸친다.

 

 출근을 위해, 대중교통을 검색한다. 지하철로 약 1시간 반, 아주 멀지도 그렇다고 아주 가깝지도 않은 거리다. 다른 선택지도 없겠다, 그는 앞으로 자신이 왔다 갔다 할 이 거리가 직장인들의 평균 출퇴근 거리라고 생각한다. 특이하게도 그의 출퇴근 거리는, 환승을 하면 할수록 빨라진다. 최소 2번, 많게는 4번까지 환승할 수 있다. 환승을 몇 차례 할지의 여부는, 다가오는 대중교통의 정착역이 어디인지, 그리고 그날 그의 컨디션이 어떤지에 따라 앞으로 차차 정해질 예정이다.

 

 

 1시간 30분, 여러 차례의 환승을 거쳐 39번째 기업이 위치한 역에 도착한다. 이곳의 역은 2층에 위치해있으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면접을 위해 두 차례 방문하면서, 이 지하철역이 약간은 눈에 익었다. 서울 한복판은 아니지만 나름 교통의 요지인지, 열차의 선로가 많다. 여기저기 철물점과 붕어빵, 잡화를 판매하는 노점상이 보인다.

 

 역, 에스컬레이터, 역 주변에는 상인들과 회사원들이 섞여 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떠오르지 않은 시각, 연보랏빛과 잿빛이 섞인 하늘 아래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그러한 풍경 속에, 그도 콧김을 내뿜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자신은 언제쯤에나 저 풍경 속에 녹아들 수 있을까, 저 사람들도 취업준비 기간이 있었을까 생각하고 관찰하던 외부자가 마침내 풍경 속에 녹아들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외부 관찰자의 티를 완전히 벗지는 못했다. 앞으로 무엇이 다가올지 설레면서도 불안하다. 패딩으로 겉을 포장해서 그의 외부는 나름 자연스러워 보이나, 내부는 그가 입고 온 면접용 정장처럼 아직 긴장한 티가 역력하다. 그는 패딩의 지퍼를 한껏 끌어올린다.

 

 

 

 39번째 기업 본사에 도착하여, 안내받은 번호로 전화를 건다. XXX과장이라고 안내받은 목소리가 받는다.

 

  XXX과장 : 전화받았습니다.

  그 : (최대한 예의 바르게)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출근하는 하얀 얼굴 입니다. 도착하면 이 번호로 전화하라고 연락받아 전화드렸습니다.

  XXX과장 : 아, 네. 엘리베이터 타고 0층으로 올라오세요.

  그 : 아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간다. 출근 시간대였으므로 몇몇 다른 직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을 것임이 분명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첫 출근, 첫 엘리베이터에서 꽤나 긴장해서인 듯하다.

 

 낯선 엘리베이터 안,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는 생각한다. 계속된 탈락으로 인해 절벽 끝까지 내몰린 긴박한 순간이었는데, 바로 그 순간 예기치 않게 최종합격 티켓을 거머쥐었다. 다행히도 30대부터는 커리어라는 것을 시작하긴 하는구나.

 

 이제야 비로소 1인분을 할 수 있는 사회인이 되는 것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기업 규모나 리뷰 등을 보았을 때 39번째 기업은 꽤 괜찮다. 길고도 길었던 자신의 취업준비 기간이, 아주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고 만족할 수 있을 만한 정도의 기업이다. 기업 규모와 리뷰뿐만이 아니어도 39번째 기업은 그에게 의미가 깊다. 서류만 수백 번, 면접은 수십 번 탈락한 그다. 항상 거절만 당하던 그를, 처음으로 인정해주고 손을 내밀어준 기업인 것이다.

 

 인사 담당자로부터 받은 메일을 보았을 때, 그는 지원한 직무가 아닌 다른 직무로 합격을 했다. 그가 원래 지원한 직무는 재경이었으며, 합격 안내를 받은 직무는 '사업지원' 직무다. 채용 공고에는 기재되어있지 않은 직무였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는 재경에 남다른 뜻이 있어서 지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지원할 수 있는 직무가 재경밖에 없었기 때문에 지원했던 것이다. '사업지원', 느낌상 경영지원과 비슷할 것 같다. 그토록 바랬던 해외영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영지원이라면, 처음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으로 나쁘지 않겠지.

 

 

띵~

 

 엘리베이터가 해당 층에 도착한다. 그가 내려야 할 층이다. 눈앞에 펼쳐진 하얀 벽, 하얀 조명, 파티션, 바닥에 깔린 얇은 카펫 타일 등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 펼쳐진, 수많은 좌석들과 회사원들은 더더욱 낯설다.

 

 이곳이 그가 회사원으로써 첫발을 내딛을 직장이다. 그는 '신규 입사자 대기실'이라는 글씨만 보고 따라간다. 새롭고 낯선 정보를 과다하게 받아들이면 불안감이 커지므로 그는 시야를 제한한다. 어렸을 적 새로운 반에 편성되었거나,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와 비슷하리라. 처음에는 낯설어도, 일주일 혹은 한두 달 정도 지나면 어느덧 편안해지곤 했다. 여기 39번째 기업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마침내 그도 밖에서 그토록 바라보며 부러워했던 사회인의 아우라를 풍기게 되는 것일까.

 

 

 기나긴 취업준비 끝에 마침내 맞이한 첫 출근, 그는 설렘과 낯섦을 동시에 느끼며 정신이 없다. 우선은 적응하는 것이 먼저다. 인연이 닿은 39번째 기업이, 그에게 꼭 맞는 직장이었으면 좋겠다. 취업을 해도 끝이 아니라고, 회사가 안 맞는다며 이직하는 것이 요즘 추세라고 한다. 이직도 괜찮지만, 한 직장에서 진득하게 오래 다니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다.

 

 처음 출근하는 그로서는 아직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39번째 기업과 너무 잘 맞아 그가 임원이라는 커다란 목표까지 곁눈질해보게 될지, 반대로 도저히 맞지 않아 39번째 기업이 '1번째 직장'이 되어버릴지도 모를 이다. 오늘 갓 입사한 신입사원, 이때의 그는 아직 그러한 점들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지금은 다만 설렘과 낯섦을 억누르며, 그저 자신의 몸과 마음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고 녹아들기를 기다릴 뿐이다.

 

 대기실에 도착하니, 그 이외에도 정장을 입은 몇몇이 앉아있다. 입사 동기들이다. 그는 정말로 신입사원이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