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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47 - 이벤트 청소(4)

 그는 야간조 인원 중 어린 편에 속한다. 야간조 인원들은 2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다양하다. 20대 후반의 인원들 중에서는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끝나고 학생 비자인 사람도 있다.


 그는 호주에 와서 의식적으로 한국인을 멀리 했다. 이는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이들이 통상 가지고 있는 특성인데,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그는 이 정도가 더 심해서, 어떻게 보면 외국인 사대주의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처음에 야간조 인원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지금은 빈대와 다리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여기서 한인잡을 하고 있지만, 돌아가면 다시 외국인들과 어울릴 것이라 생각하곤 했다. 그런 생각이 무의식 속에 깔려 있으니,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고 주로 워홀러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야간조를 이루는 워홀러들은 모두 남자이며, 다양한 내력을 가지고 있다. 워킹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친형제, 워킹 비자로 여러 나라를 다녔다는 이, 그와 같은 대학생, 20대 후반이며 자신을 욜로족이라고 부르는 이, 호주에서 살 계획을 갖고 있다는 이 등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 꿈과 희망에 부풀어 오른 사람도 있고, 워킹 생활이나 다른 경험 등으로 냉소적 시선을 가진 사람도 있다.


 야간조 인원들도 초창기에는 서로 깊은 대화를 하지 않았다.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 말도 놓지 않는다. 그리 가까워질 생각이 없으니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심리였으리라. 하지만 서로에게 거리를 두면서 조심하는 태도는 다른 상황들과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오히려 야간조 인원들의 결속을 촉진하는 요소가 된다.  이는 이벤트 청소라는, 다른 곳으로 도망갈 수 조차 없는 상황, 계속되는 비와 넘쳐나는 쓰레기, 워킹홀리데이 비자의 특성, 페스티벌을 즐기고 쓰레기를 남긴 채 떠나는 사람들, 그 뒤에 남아 청소하는 상황, 매니저라는 공공의 적 등의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여러 이유들로 인해, 야간조 인원들 사이에 강한 단합심이 생겨났다.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나이 상관없이 존대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그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마음이 열린 가장 큰 이유는, 함께 일을 하면서 그가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야간조 인원들의 모습이다. 호주의 한인들에 대해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그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함께 일하는 야간조 인원들에게서는 부정적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모두들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며, 이기적이지 않고, 기꺼이 희생해가면서까지 서로를 돕는다. 그는 이미 첫 만남부터 말 없는 이미지가 굳어졌기 때문에 굳이 이미지를 바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야간조 워홀러들에 대해 점점 더 애정을 갖는다.

 


 야간조 인원들은 새벽에 일하고 낮에 잠을 잔다.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일 끝나고 아침을 먹을 때, 자다가 깨서 점심을 먹을 때, 일 시작 직전 저녁을 먹을 때다. 야간조 인원들끼리 조금씩 안면이 트면서, 몇몇 인원들이 허세 섞인 농담을 하기 시작한다. 가지고 있는 차가 어떻고, 미래에 무슨 일을 할 것이고, 예전에는 어떤 것들을 해보았고 등이다. 모르는 사람이 했다면 그가 질색했을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와 야간조 인원들은 이미 강한 유대가 형성되어 있다. 그는 이전이라면 싫어했을 농담들도, 야간조 인원들이 하면 가볍게 웃어넘긴다. 만일 키친핸드 시절의 그가 야간조 인원들을 브리즈번 시내에서 봤다면, 함부로 판단하거나 무시했을 것이다. 이벤트 청소라는 일과 상황은 그에게, 자신이 함부로 판단했을 사람들의 모습과 내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야간조 인원들에게는 웃지 못할 상황이 많았다. 낮에 잠을 자고 있노라면, 햇빛에 텐트가 오븐처럼 데워진다. 야간조 인원들은 모두 밖으로 기어나온다. 텐트에서 간이침대를 들고 나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을 잤다. 그러다가 해의 각도가 바뀌어 햇빛에 노출돼도, 세상모르고 잠을 자다가 몸에 화상을 입었다. 야간조 인원들은 예외 없이 배와 등에 화상을 입어 피부가 빨갛다.


 야간조의 일이 마무리되는, 해 뜨는 새벽이 되면 잠자던 곤충들이 깨어난다. 곤충들은 비와 땀에 젖고 쓰레기 냄새를 풍기는 야간조 인원들에게 달려들었다. 호주 대자연의 곤충들은 겁이 없고 막강하다. 곤충들은 야간조 인원들의 등에 우글우글 기어다녔다. 하필이면 유니폼이 형광색이라, 벌레 떼가 더 적나라하게 보인다. 야간조 인원들은 서로의 등을 때려가며 벌레를 쫓는다. 등을 때릴 때마다 손바닥에 대여섯 마리의 곤충이 잡히지만, 곤충들은 잠시 날아올랐다가 다시 등에 앉을 뿐 줄지 않는다. 등을 때리지만, 낮에 잠을 자다가 화상을 입은 곳이 등이기 때문에 때릴수록 배로 따갑다. 결국 야간조 인원들은 벌레 쫓는 것을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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