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에 적혀있던 4박 5일의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새 브리즈번으로 복귀할 날이다.
청소도 청소지만, 그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가 있다. 베드버그(빈대) 박멸과 다리 치유다. 그는 베드버그(빈대)를 박멸하기 위해 첫날 텐트를 배정받자마자 일광소독을 실시했다. 배낭과 캐리어를 모조리 비우고, 안의 옷들을 모두 꺼내서 텐트 바깥 나무와 울타리에 걸어두었다. 가끔씩 나가서 바람에 날아가 버린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옷과 배낭 등을 뒤집어 준다. 완벽한 박멸을 위해, 그의 짐들은 4박 5일 내내 텐트 밖에서 땡볕과 폭우를 번갈아 맞았다. 복귀 날 그는 짐을 싸면서, 가방 끈 하나하나, 옷 구석구석에 베드버그(빈대)가 숨어 있는지 확인한다. 한 마리도 없다. 도심의 베드버그(빈대)는 페스티벌장이 위치한 대자연의 강렬한 햇빛을 당해내지 못했다.
짐들은 밖에다가 계속 두었다. 그 자신은 다리 치유를 위해 영양을 섭취, 약을 챙겨 먹고 잘 씻는다. 끼니로 나오는 음식은 모조리 먹어치웠다. 특히 과일이나 야채가 나오면, 그는 더 집중해서 먹어치웠다. 다른 야간조 인원들이 먹지 않으면, 그의 몫이 된다. 식사는 페스티벌 주최 측에서 챙겨주었다. 도시락일 때도 있고, 뷔페식일 때도 있다. 그는 속으로 '일이 고되니 먹는 것은 잘 챙겨주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샤워장은 간이 샤워실이지만, 쓰다보니 이보다 아늑할 수가 없다.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고, 하루 세 번 꼬박꼬박 약을 먹고 깨끗이 씻었다. 어느새 일주일치 분량의 약을 모두 복용했다. 다리의 부기는 모두 빠지고, 통증도 전혀 없다. 그는 베드버그에 물리기 이전 상태로 완전히 회복했다.
짐을 챙긴 뒤, 그는 일할 때 입고 신었던 반바지와 신발을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상의는 형광색 유니폼을 제공받았지만, 하의와 신발은 각자 조달해야했다. 나중에 세탁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은 첫날 무너졌다. 첫날부터 바지와 신발은 폐기 직전까지 갔다. 땀과 비, 각종 쓰레기에서 나오는 구정물 등으로 범벅이 됐다. 그는 그 바지와 신발과 함께 갈 수 없으리란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일하는 4박 5일 내내 같은 반바지와 신발을 입고 신었다.
그는 반듯한 돌 위에, 일할 때 입었던 반바지와 신발을 올려놓는다. 그가 호주에 오면서 가져온 얼마 안되는 의복 중 일부다. 이제 이들은 함께 갈 수 없다. 반바지와 신발에는 진흙과 구정물이 엉겨붙어 있다. 그는 잠시 경건한 마음으로 작별을 고한다. 마지막으로 반바지와 신발을 눈에 담는다. 그리고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야간에 청소를 할 때에는 온갖 감정이 다 들었으나, 막상 떠날 때가 되니 시원섭섭하다. 야간조 인원들과 매니저는 안면이 트인 주최 측 직원들과 인사하며 버스에 오른다. 그는 버스를 타면서, 자신들의 뒤를 이을 다른 한인 워홀러들이 도착하는 것을 본다. 페스티벌은 계속되어야 하고, 청소도 계속될 것이다. 그는 떠나는 것이 시원섭섭하긴 하나 남고 싶지는 않다. 기쁜 마음으로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올 때 왔던 길을 반대로 다시 달린다. 올 때와는 달리, 다들 사이가 돈독해져 있고, 주간조는 다른 시간에 복귀하기 때문에 자리도 널널하다. 야간조 인원들은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그는 매니저를 바라보았으나, 그 표정과 속은 알 수 없다.
버스는 대자연을 한참 달려, 조금씩 근교로 진입한다. 저 멀리 브리즈번 도심의 빌딩들이 보인다. 빌딩이 보이는 순간, 소리를 지르는 이들도 있다. 그는 그 모습이 과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덩달아 웃음이 난다.
처음 집합했던 공터에 도착한다. 버스와 매니저는 별 말없이 떠난다. 야간조 워홀러들은 이제 다시 각자의 위치로 돌아갈 때다. 다들 정겹게 인사하며 떠난다. 모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썬글라스를 끼고 차를 타고 떠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다가, 모두가 떠난 뒤 자전거를 탄다.
그는 이 워홀러들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하다. 카카오톡 단톡방이라도 만들자고 제안할까 생각한다. 그는 정말로 그러고 싶지만, 왠지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다른 이들도 모두 서운해하는 눈치지만, 왜인지 단톡방을 만들어 계속 연락하자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렇게 아쉬움 속에서 어찌어찌 인사하면서, 모두들 각자의 위치로 떠난다. 그는 생각했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온 이들은 어떻게 보면 한국, 기존의 인연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성향이 약간이나마 있다. 그렇게 결심하고 워킹홀리데이를 온 이들에게, 단체 카톡방을 만들자고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수 있다. 지금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는다면 아마 다시는 못 볼 것이다. 아쉽긴 하지만, 이 인원들과는 여기서 마무리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는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자신이 믿고 의지하며 계속 연락하고 싶은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을 떠나보내며, 그는 다시 자신의 워킹홀리데이로 돌아간다.
2주 뒤, 이름 모를 곳에서 그의 계좌로 돈을 송금했다. 이벤트 청소에 대한 보수다. 돈은 400불 정도의 금액이다. 상관없다. 숙식을 제공받았고, 먹을 것(특히 과일)을 원 없이 먹었다. 무엇보다 다리가 나았다는 것과, 함께 일했던 야간조 워홀러들과의 추억을 생각하며 그는 액수에 관계없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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