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야간조 인원들을 감시했다. 매니저는 야간조 인원들이 앉거나 가만히 서서 쉬는 것을 보기 못한다. 쓰레기를 치우고 잠시 쉰다거나, 쓰레기가 비교적 적어서 잠시 쉬고 있다고 해도 매니저는 용납하지 않는다. 야간조는, 매니저가 나타나지 않는지 항상 주위를 둘러봤다. 쉬고 있다가도 매니저가 보이면 일어나서 괜히 뭔가 치우는 척을 했다. 하지만 날이 지나면서, 일이 능숙해지면서 야간조 인원들도 가만히 참고만 있지는 않았다. 둘째 날부터, 나이가 많은 20대 후반의 야간조 워홀러들이 매니저와 말다툼을 했다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다. 그는 100% 야간조 워홀러의 편이다.
매니저는 페스티벌 폐장 후에도 잔소리가 많다. 일렬로 서서 쓰레기를 줍는 워홀러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계속 잔소리를 한다. 여기 쓰레기가 남았다. 자꾸 놓친다. 왜 이렇게 많이 놓치느냐 등의 소리다. 그도 처음에는 이러한 잔소리가 무섭고 신경에 거슬렸으나, 시간이 갈수록 무감각해져서 결국은 신경쓰지 않는 경지에 이른다.
일이 익숙해지면서, 야간조 워홀러들은 이제 매니저의 폭정과 갈굼을 제대로 파악했다. 어떤 워홀러는 자신이 총대를 맬 테니, 다 같이 일을 안 하겠다고 파업하고 돈을 올려받자고 제안한다. 제안을 한 워홀러는 20대 후반으로, 매니저의 상황을 어느 정도 꿰고 있다. 지금 워홀러들이 일을 안 해버리면 가장 난감한 게 매니저일 테니, 워홀러들이 파업하면 매니저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나름 일리가 있다. 그는 잘은 모르겠지만, 돈을 더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심 기대한다.
워홀러 총파업은 꽤나 과격한 제안이었으므로, 실행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야간조 워홀러들은 이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결집되었고, 점점 더 끈끈하게 뭉치기 시작한다. 이것이 매니저가 의도한 바인지, 아니면 무리하게 군기를 잡으려다가 터진 역효과인지는 알 수 없다. 계속된 비로 인해 더해지는 노동 강도와 워홀러들 사이의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매니저의 갈굼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마지막 이틀 동안은 매니저의 입에서 오히려 격려와 응원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얘들아 힘들지, 조금만 힘내자. 그래도 워홀러들은 속지 않는다.
주도권이 매니저에게서 워홀러에게 넘어온 이유는, 매니저의 실수도 있겠으나 야간조 워홀러들의 직무 수행 능력이 가장 컸다. 야간조 워홀러들은 점점 일을 완벽하게 해내기 시작한다. 뒤에서 꼬투리를 잡으려는 매니저의 입을 닫게 만들 정도다.
4박 5일 동안, 유독 밤에만 비가 내렸다. 우비를 입긴 했으나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소용이 없다. 그저 몸에 걸친 또 다른 비닐일 뿐이다. 쓰레기들은 비, 진흙과 일체가 된다. 야간조 워홀러들은 땅에 묻혀 있는 비닐봉투를 한눈에 알아보고 파낸다. 그렇게 땅을 파내면, 쓰레기가 한참동안 나온다. 땅에 묻혀있는 쓰레기는 짙은 갈색의 구정물을 머금고, 이상한 냄새를 풍겼다. 야간조는 신경쓰지 않는다.
야간조 15명 중 누구 하나 꾀병 부리지 않고, 남에게 쓰레기를 떠넘기지도 않는다. 쓰레기가 눈에 보이면 스스로 조금 더 움직여서 주웠다. 1열로 서서 페스티벌장을 휩쓸면서, 그는 자신의 영역에 속하는 쓰레기를 옆사람이 먼저 가서 줍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았다. 쓰레기를 많이 줍는 사람에게 포상이 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야간조는 이기심을 버리고 일을 하고 있었다. 쓰레기가 보이는 순간, 멀리 있던 가까이 있던 누군가가 반드시 다가가 이를 주웠다. 쓰레기가 떨어져 있는 모습 자체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움직였다. 그는 솔직히 한걸음 덜 움직이고 싶고, 귀찮고 넘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민폐가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야간조 인원들 모두 같은 생각이었는지, 빗속에서 모두들 말은 없지만 서로를 배려하며 일한다. 그는 이렇게 모두가 스스로를 희생하는 상황을 본 적이 없고, 이후에도 이때의 야간조 한국인들만 한 워커들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1열로 묵묵히 전진하면서 쓰레기를 줍는다. 그는 초한지 만화에서 보았던, 유방과의 전투에서 대패했지만 끝까지 살아남았던 항우의 일당백 병사들이 생각난다. 그는 야간조가 항우와 함께 살아남았던 10여 명의 병사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매니저는 항우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는 일하면서 괜히 양 옆의 야간조 인원들을 돌아보곤 한다. 자신과 다른 워홀러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소속감과 전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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