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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66 - 주 1000불 생활

 그의 계획은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그는 오후 2시 ~ 새벽 2시 이후까지 육가공 공장에서 일하고, 새벽 4시~8시에는 청소일을 한다. 청소는 시간을 조금 단축해서 7시~7시 30분 사이에 끝난다. 청소일이 끝난 뒤에는 숙소로 돌아가 씻고, 아침 먹고, 공장에서 먹을 저녁 도시락을 싸고 바로 잔다. 자다가 12시 즈음 일어나 점심을 먹고 공장으로 출근한다.


 그는 공장에서 12시간, 청소 시간 4시간을 더해 하루 16시간 일한다. 숫자로 들으면 감이 잘 오지 않는다. 하루는 24시간이니, 16시간 일하고 남은 8시간 동안 잠자고 밥 먹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도 처음에는 이런 식으로 물렁하게 생각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다르다. 8시간이 남는다고는 하지만, 공장과 청소 Site에 왔다갔다하는 출퇴근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복병이었던 요인은, 낮과 밤이 뒤바뀐다는 점이다. 청소일을 새벽에 하기 때문에, 그는 8시 이후 해가 뜬 오전에 잠이 든다. 그는 체력에 나름 자신이 있지만,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과 16시간의 노동은 상당히 버겁다.


 육가공 공장의 시급은 세금 포함 22불, 야간 청소는 세금 없이 16불 정도다. 그는 공장에서 초과근무나 주말 근무를 할 때가 많으니, 육가공 공장과 야간 청소 시급을 20불로 평균 내서 계산해보면 16시간 X 시간당 20불 = 320불(27만 원) 하루에 버는 돈이 최소 320불이다. 잔업과 주말 근무는 차치하고, 5일 일한 것으로 계산해도 주급이 최소 1500불(127만 원)이 넘는다. 실제로 그의 통장은 일주일마다 1500~1800불(127만 ~ 152만 원)씩 돈이 늘어난다.


 워홀러들에게는 주 1000불이 상징적인 돈이다. 환율을 엄격히 따지자면 85만 원이지만, 그는 간단하게 1000불을 100만 원으로 인식한다. 일주일에 백만 원(엄밀히 따지면 85만 원), 저축도 저축이지만 자신이 제공한 노동의 가치가 그렇게 크다는 느낌이다. 돈 때문인지 자존감 때문인지, 많은 수의 워홀러들이 주 1000불 버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는 돈을 많이 벌어서 기분이 좋다. 하지만 돈으로 기분이 좋은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쌓이는 피로와 스트레스로 기분이 좋지 않다. 공장과 청소일 모두, 일할 때 의사소통이 거의 없다. 키친핸드 일을 할 때는, 돈은 적더라도 웃고 떠들며 일을 했으므로 재미가 있었다. 지금의 공장일은 귀마개를 껴서 떠들 수가 없고, 청소잡은 각자 맡은 청소를 빨리 끝내느라 마주치지도 않는다. 일을 하면서 얻는 재미나 의미는 없는 셈이다. 오로지 돈, 통장에 찍힐 돈만 생각하며 일한다. 그는 가뜩이나 애정이 없었던 공장일이 더 지긋지긋해지고, 잔업과 주말 근무도 하기 싫다. 하루만이라도 제대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그는 잘 알고 있다. 하루라도 쉬면서 휴식의 달콤함을 맛본다면 다시는 이 쳇바퀴 같은 생활로 돌아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그 달콤함을 모르는 채로, 상상만 하면서 참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그다. 피로가 쌓이면서, 사고가 느려지고 자신이 좀비같다고 느낀다. 조금만 더, 일주일만 더, 오늘 하루만 더 버티자고 생각하며 일한다.


  그가 노트에 적는 내용도 바뀐다. 이전에는 호주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적었지만, 돈 버는 데 집중한 이후부터 그런 내용들은 보류한다. 노트에 다른 것을 적을 시간도, 힘도 없다. 그가 노트에 적는 것은 돈에 관련된 단 한 가지, 가계부다. 그는 워홀 시작부터 가계부를 꽤 꼼꼼하게 작성하는 편이었다. 돈에 집중한 이후부터는 더욱 치밀하게 가계부를 작성한다. 새는 돈이 없어야 한다. 매일 16시간을 들이붓고, 때려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아가면서 번 돈이다. 어떻게 번 돈인데, 절대로 낭비할 수 없다. 그는 가계부를 하루 단위로 작성하다가, 성에 차지 않아 매일 일주일치를 반복해서 작성한다. 의미 없고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왠지 그렇게 하면 새어나갈 돈도 새어나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잠자기에도 바빴으므로, 그는 일주일에 한 번 식료품점에 방문해서 7일치 식재를 한 번에 사버린다. 쇼핑을 즐기거나 새로운 식재를 살필 시간은 없다. 어서 장을 봐버리고 집에 가서 자야한다. 그가 구입하는 식재는 항상 똑같다.  우유 1.5L 1개, 베이컨 1kg 1개, 치즈, 토스트 식빵, 시리얼, 파스타면, 파스타 소스용 홀토마토 1캔, 쌀, 진라면 매운맛 5개 묶음, 양파 한 망, 감자 한 봉, 당근 한 봉, 마늘 한 봉, 스팸 1개, 간식 빵과 과자(주로 팀탐) 조금. 이외 카레 가루나 짜장 가루, 된장 고추장, 김치, 계란 등은 고갈될 즈음 구매한다.


 이렇게 크게 장을 보면, 60불 후반에서 70불 선으로 나온다. 한인 쉐어하우스이므로, 조리는 편하게 할 수 있다. 그는 요리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무리하는 몸을 생각해서라도 억지로 요리를 한다. 요리의 큰 틀은 완전히 똑같다. 마늘, 양파, 감자, 당근, 베이컨을 썰어 볶으면 기본 상태다. 이 볶음을 그대로 먹으면 야채볶음이고, 카레가루나 짜장가루를 넣어 끓이면 카레나 짜장이 되고, 김치를 넣어 끓이면 김치찌개, 파스타를 삶아 넣으면 파스타, 밥을 넣고 볶으면 볶음밥이 된다. 한인 쉐어하우스에 살 때 그의 요리는 성공 확률이 높았다. 몸이 힘들어서인지 조리도구가 익숙해서인지, 식사는 괜찮다. 하지만 누적되는 피로와 스트레스로 그는 항상 날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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