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 시절의 그는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돈을 아꼈다. 헝그리 잭스에서 햄버거를 먹고 나면, 항상 너무 아쉽다. 하나만 더 먹을까, 저거 하나만 더 먹을까, 수없이 고민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진 않는다.
그렇게 참고 참다가, 결국 억눌렸던 스트레스가 폭발한다. 공장일이 끝났는데 배가 고프다. 청소잡 시작 전에 잠시 버거킹에 들른다. 드라이브 스루 입구 즈음에 서서 메뉴판을 본다. 5분, 10분, 그는 헝그리 잭스에 갈 때마다 메뉴판을 계속 훑는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고, 다 먹고 싶다. 그래도 그가 먹을 것은 정해져 있다. 20불짜리 커다란 햄버거를 정말 좋아하지만, 돈을 낼 때는 아깝다고 생각하는 그다.
그렇게 평소처럼 계속 메뉴판을 본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하다. 그는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한다. 지금 투잡으로 버는 돈이 얼만데,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데, 이깟 햄버거 하나에 벌벌 떤단 말인가. 메뉴판 앞에 서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그는 너무나도 화가 나서, 오늘은 마음껏 먹겠다며 드라이브 스루로 운전한다.
그는 무척이나 화가 났지만, 메뉴판의 가격을 보자 다시 냉정함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는 메뉴판을 잠깐 보다가, 홧김에 햄버거 4개 세트로 이루어진 패밀리 번들을 주문한다. 패밀리 번들은 큰 와퍼 2개, 작은 와퍼 2개, 감자튀김 4개에 콜라 2개다. 하지만 가격이 20불 중반대로 그렇게 비싸진 않다. 그는 화가 난 와중에도 가격을 보고 결정한 것이다.
야심한 새벽, 헝그리잭스 커다란 주차장에는 그의 차량만 덩그러니 있다. 주차장 한가운데에서 시동을 끈다. 그는 자신의 캠리 안에서 패밀리 번들을 먹기 시작한다. 차 안에서 햄버거를 먹는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면서 그런 생각은 사라진다. 그는 햄버거를 와구와구 먹는다. 그의 식사량은 정말 대단하다. 그렇게나 많아 보였던 패밀리 번들을 모두 먹어치웠다. 햄버거 4개, 감자튀김 4개를 다 먹고 나서도 배가 부른 느낌이 들지 않는다. 콜라를 두 개째 마시자, 그제야 그는 배가 부르다고 느낀다.
속이 허했는지 활동량에 비해 영양 섭취가 부족했던 것인지, 패밀리 번들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하지만 그는 패밀리 번들을 먹으면서도 햄버거 메뉴판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패밀리 번들이 양은 많지만, 그리 호화로운 메뉴는 아니다. 그는 패밀리 번들을 먹으면서도, 가장 비싸고 큰 햄버거들로 세네 개 시켰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한다.
이 날을 기점으로, 그는 폭식의 묘미를 알아버렸다. 2주에 한 번쯤 스트레스가 폭발할 시점에 다다르면, 그는 헝그리 잭스에 가서 폭식을 한다. 폭식 메뉴는 항상 패밀리 번들이다. 패밀리 번들을 먹을 때마다 후회하지만, 다른 것을 시키진 않는다. 패밀리 번들이 그가 설정한 마지노선이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먹을 바에는 차라리 번듯한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나 요리를 먹는 편이 양도 맛도 몸에도 좋을 터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혼자서 그런 레스토랑을 가는 것이 두려웠는지, 창피했는지, 귀찮았는지, 그는 헝그리 잭스에 갈 뿐이다. 공장일과 청소일을 병행하는 외국인 노동자, 자신에게 어울리는 음식은 헝그리 잭스 햄버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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