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둘째 날이 되어서야 그가 청소하는 건물의 정체를 파악한다. 이 건물은 무도회장이다. 서양 영화에서 남녀가 서로 껴안은 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왈츠 등의 춤을 추는 곳이다. 이곳은 도심 외곽으로, 호주 어르신들을 위한 무도회장이다.
젊은 사람들은 클럽을 선호하기 때문에, 무도회장에 가진 않는다. 이는 청소잡 측면에서는 대단히 다행인 일이다. 그가 본 청소 후기 중, 클럽 청소잡이 가장 고역이다. 클럽이라는 장소는, 어두운 조명 아래서 신나게 춤을 추면서 담배도 피우고, 침도 뱉고, 여기저기 구토를 하기도 한다. 클럽을 청소하는 워커들에게 토사물은 일상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르신들이 주로 사용하는 무도회장은 클럽에 비해 깨끗하다. 다행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청소가 쉽지는 않다. 호주는 땅이 넓고 사람은 적기 때문에, 건물이 낮고 넓게 퍼지는 경향이 있다. 그가 청소하는 무도회장도 부지가 꽤 넓다. 무도회장 홀 / 남녀 화장실 각 4개 / 간단한 주방 / 간단한 사무실 / 그 밖에 앉을 수 있는 장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와 외국인 워커는, 모든 장소를 훑으며 청소한다. 빨리 청소를 끝낼수록 이득이다. 청소를 30분 하던, 1시간 하던, 6시간 하던 상관없다. 받는 돈은 4시간에 해당하는 돈이다.
새벽이므로, 건물에는 그와 외국인 워커 뿐이다. 감시하는 사람이 없으니, 들어갔다가 그냥 30분 뒤에 나오면 되지 않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이 무도회장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한 직원이 결코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 않는다. 그와 외국인 워커는 계약상 4시 ~ 8시에 청소를 하게끔 되어 있다. 사무실 책상들을 보니 직원이 여럿이지만, 유독 청소 상태에 민감한 직원이 있다. 아무래도 청결, 위생을 관리하는 직원인 듯하다. 평상시 청소 워커들은 아무도 마주칠 일이 없다. 하지만 만일 청소 상태가 불량하면, 위생 담당 직원이 여지없이 한인 매니저에게 전화를 했다. 여기여기가 너무 더러워, 청소를 한 건지 알 수가 없으니 당장 다시 청소하라는 전화다. 그러면 매니저는 그에게 전화한다. 그는 처음에는 상관없었으나, 다시 불러내는 전화가 갈수록 많아지자 짜증이 난다. 청소잡도 결국 운이다. 위생 기준이 느슨한 Site와 직원을 만나면, 정말 30분 만에 대충 청소를 끝내도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에게는 해당 사항이 아니다.
그는 그래도 최소한의 책임감이 있어서, 형편없이 청소할 생각은 없다. 맡은 일은 제대로 처리하자고 생각한다. Site마다 동선과 순서는 다르겠지만, 결국 청소잡 일은 비슷하다. 호주 건물 구조는 비슷비슷하며, 내부 인테리어도 일정한 패턴이 있다.
호주는 바닥재로 카펫을 많이 사용한다.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푹신하고 좋지만, 청소할 때는 번거롭다. 카펫 털 사이로 음식물 부스러기나 먼지 등이 쌓이는데, 위생 담당 직원은 이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2명의 워커 중 한 명은, 4시간 내내 진공청소기만 돌린다. 위생 담당 직원이 전화해서 다시 청소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는 십중팔구 카펫이다. 조그마한 부스러기라도, 직원은 절대 청소 도구를 잡지 않는다. 돈을 준 만큼 뽑아내려는 것이리라.
그가 일하는 Site의 카펫 청소는 까다롭기 때문에(직원의 기준이 높아), 이전부터 청소를 해온 외국인 워커가 진공청소기를 맡는다. 그는 진공청소기를 제외한, 주방 / 화장실 / 유리창 / 무도회장 등 건물 전체를 휩쓸며 청소한다. 그가 맡은 임무는,
- 건물에 존재하는 모든 쓰레기통 비닐 교체하기
- 화장실 변기 닦기, 타일 바닥 물걸레질
- 무도회장의 나무 바닥 물걸레질
- 문고리, 난간 등 금속으로 이루어진 것들 광내기
- 기타 각종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만들기
별 것 없어 보이지만, 장소가 넓고 잡다한 일이 많다. 일단 쓰레기통 수가 많다. 건물 구석구석을 포함해, 화장실 변기 칸칸마다 쓰레기통이 있다. 그는 처음에는 시간을 줄이지 못하고 4시간을 꽉꽉 채워 청소했다. 하지만 어서 일을 끝내고 쉬고 싶은 마음, 시간을 줄여 시급을 올리겠다는 마음은 그를 민첩하게 만든다. 5일째부터 속도가 붙는다. 그와 외국인 동료는 문을 따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청소를 끝내고 나가는 순간까지 의 동선과 순서를 정해 놓는다. 자잘하게 청소해야하는 부분이 많지만, 굵은 줄기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들어가자마자 각자가 맡은 파트를 훑어본다. 그는 교체해야 하는 쓰레기 봉투와 화장실 휴지 개수 파악.
2. 혼자서 들 수 없는 음식물 쓰레기통 등 무거운 쓰레기부터 함께 처리. 이후 각자 청소 시작.
3. 1에서 파악된 숫자만큼의 쓰레기 봉투와 휴지를 한꺼번에 들고, 다시 돌면서 쓰레기 봉투와 휴지 교체.
3. 청소 도구들을 건물 중앙에 세팅, 물걸레질 시작. 장소에 따라 써야 하는 대걸레 색깔이 다름.
4. 물걸레질 - 유리창 - 금속 광내기 순서로 청소. 각 단계의 청소가 끝날 때마다 해당 도구를 정리.
5. 1~4의 과정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더러운 곳이 있나 찾아다니며 걸레로 닦기.
6. 외국인 동료의 카펫 진공 청소가 끝나면 함께 마무리, 문 잠그고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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