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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154 - 공항 마중

 그의 가족들은 멜버른 도심에 가까운 멜버른 공항이 아닌, 도심에서 거리가 먼 아발론 공항으로 온다. 지도로 거리를 보면, 멜버른 도심에서 아발론 공항까지의 거리는 멜버른에서 Frankston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50km가 넘고 차로 50분을 가야하므로 상당히 멀다. 멜버른을 사이에 두고, Frankston과 아발론 공항은 반대 방향에 위치해 있다. 즉 그는 멜버른 도심을 거쳐서 운전해야 하고, 도착까지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멜버른 도심은 야간에 도로 공사를 많이 한다. 유동 인구가 많은 낮보다 밤에 하는 것이 공사에도 용이하고 교통량에도 영향을 덜 끼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이 공사들이 방해다. 세 블록마다 한 번씩 도로 보수인지 무엇인지 공사를 하고 있어서, 형광옷을 입고 형광봉을 가진 인부들이 길을 막고 우회 신호를 보낸다. 가뜩이나 네비게이션이 안돼서 핸드폰으로 GPS를 계속 보고 있는 그는, 우회하느라 GPS가 자꾸 경로를 이탈해서 신경이 거슬린다.

 

 계속된 우회로 인해, 직진해서 빠져나올 도심을 구불구불 간신히 빠져나온다.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던 그의 마음이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네비가 없어서 운전 속도가 느린데, 우회로 인해 시간이 더욱 지체된다. 다행히도 도심을 벗어나니 고속도로를 타기 시작했고, 고속도로의 커다란 표지판에 아발론 공항이 쓰여 있다. 그는 후련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내려놓고 표지판을 보면서 운전한다. 고속도로임에도 가로등 불빛이 약하고, 안개가 심하다. 도로 위의 불빛들 중 캠리의 라이트가 가장 밝다. 그는 새까만 주변과 안개 때문에 고속도로가 으슥하다고 느끼지만 서두른다.

 

 

 아발론 공항에 가까워질수록, 안개가 짙어진다. 그는 어느새 아발론 공항에 거의 다 와서, 고속도로에서 샛길로 빠진다. 샛길로 빠져나오니, 그와 캠리를 제외하곤 차가 단 한 대도 없다. 표지판도 사라지고, 아예 조명이 없어 새까맣다. 저 멀리 야구장같은 하얀 조명이 보인다. 핸드폰의 구글 맵을 보니, 공항이 멀지 않다. 새까만 가운데 유일한 하얀 조명이 있는 곳이 아발론 공항이다.

 

 시간은 어느덧 밤 11시를 넘었다. 그의 가족들은 약 5분 전에 비행기에서 내렸고,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그도 공항 바로 앞이므로, 입구를 찾고자 한다. 그런데 입구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공항은 그가 있는 도로보다 지대가 살짝 높아서, 하얀 조명만 보일 뿐 공항 내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천천히 차를 몰다가, 허름하고 좁은 철문을 발견한다. 열려있기는 한데, 허름하고 초라한 것이 뒷문 같다. 그는 아발론 공항이 인천 공항이나 멜버른 공항 같은 모습일 거라 생각한다. 정문을 찾기 위해, 철문을 뒤로하고 계속 달린다.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 캠리의 라이트가 전부다. 새까만 어둠과 안갯속에서 계속 달린다. 약 10분쯤 달렸을까, 달릴수록 공항으로 보이는 하얀 조명이 멀어진다. 이 길이 아니다. 그는 유턴한다.

 

 다시 같은 거리를 달려, 아까 봤던 조그만 철문에 도달한다. 정황상 이 철문이 공항으로 향하는 문인데, 다시 봐도 긴가민가하다. 그의 가족들은 이미 내려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가족들과 통화하면서, 철문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간다. 약간 높은 지대를 올라 철문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공항스러운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이 공항은 인천 공항이나 멜버른 공항과는 전혀 다르다. 아주 조그마한, 경비행기 이착륙장 정도의 규모다. 조명은 몇 없고 안개가 짙어, 공항 전체가 어두컴컴하다. 그는 바로 앞에 보이는 조그마한 건물로 향한다. 안개가 심해서 시야가 좁다. 안갯속으로 운전하면서 조금씩 가시거리를 전진시킨다. 건물에 가까워지자, 안개에 가렸던 건물 전체와 주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 텅 빈 건물 앞에 3명의 사람이 보인다. 그의 가족이다. 그는 단번에 가족들을 알아보고, 경적을 울린다.

 

 

 해당 건물은 이착륙 대합실을 모두 겸하는 건물이다. 아발론 공항은 국내선만 운영하고, 공항 규모가 경비행기 이착륙장처럼 작다. 가족들이 멜버른 공항이 아니라 아발론 공항으로 온 이유는, 멜버른 공항보다 아발론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의 가격이 더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는 건물 앞 도로에 차를 세워놓고, 재빨리 내린다. 드디어 그는 가족들과 만난다. 그, 부모님, 동생까지 온 가족이 만났다. 그는 너무나도 반가워서, 인사하며 가족들과 포옹한다. 그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한 이래 8개월 만에 드디어 가족의 얼굴을 본다. 어머니와 동생은 그에게 잘 지냈느냐고 말하고, 아버지는 그가 살이 쪘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했던 가족 상봉의 순간이 많았지만, 막상 가족들의 얼굴을 보니 반가움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웃고 포옹하며 가족들을 맞이한다.

 

 인사는 그리 길지 않다. 인사를 하면서, 캠리 트렁크에 짐을 싣기 시작한다. 가족들은 커다란 캐리어를 각자 하나씩 가져왔고, 중간 크기의 배낭이 두세 개, 작은 크기의 가방이 두세 개다. 캠리는 4인용 세단이기 때문에, 자리와 트렁크가 넓다. 그와 가족들의 짐이 트렁크에 전부 들어간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운전석으로 향한다. 아버지는 그에게, 한국에서 국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 왔으니 대신 운전하겠다고 한다. 그는 별로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를 막을 순 없다. 아버지가 운전석, 그가 조수석, 동생과 어머니가 뒷자리에 탑승한다. 그는 자신이 운전해도 된다고 연거푸 말했지만, 아버지는 그가 피곤할 것이라며 차를 몰기 시작한다. 가족들의 핸드폰은 당연히 스마트폰이며 네비게이션이 잘 된다. 그는 자신의 핸드폰과는 달리 너무나도 빠르고 선명한 네비게이션 안내를 보며,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그의 아버지는 운전에 능하다. 오토, 수동 모두 가능하고 차종도 상관없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도 호주의 운전석과 좌측통행은 처음이다. 한국에서의 운전이 익숙한 사람들이 처음에 가장 많이 헷갈리는 것은, 깜빡이와 와이퍼의 위치다. 운전석, 차량 진행 방향과 마찬가지로 깜빡이와 와이퍼 스틱의 위치도 정반대다. 한국을 생각하고 무심코 깜빡이를 키면, 와이퍼가 작동되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주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으나, 숙소로 향하면서 와이퍼를 계속 작동시킨다.

 

 

 그와 가족들은 숙소로 향한다. 숙소까지는 약 50분 정도 소요된다. 그는 어둡고 안개가 자욱한 상황에서 처음으로 호주차를 운전하는 아버지를 내심 불안하게 주시하면서, 가족들과 이야기한다. 가족들은 시드니를 3일간 잘 여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국내선을 타고 아발론 공항에 도착했는데, 밤이 늦어서인지 한 공항 직원이 기계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고 한다. 청소기를 돌리기에, 안에 있기가 뭐해서 밖에 나와 기다렸다고 한다. 그가 철문을 지나치지 않고 바로 공항으로 들어왔다면 가족들이 밖에서 덜 기다렸을 터다. 그는 여러 감정이 느껴지지만, 반가움과 기쁨이 가장 크다. 가족들과 함께 하니, 마음이 든든하다. 그가 혼자 왔을 때 도로와, 가족들과 함께 갈 때 도로의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캠리의 라이트에 의지해야 하는, 어두컴컴하고 안개 낀 으슥한 도로가 갑자기 운치 있게 느껴진다. 그와 가족들이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을 넘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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