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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159 - 정비소

 가족 여행 2일 차 아침이 밝았다. 그는 캠리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어서 캠리 문제가 해결되거나, 문제의 원인이라도 알아내야 이후의 가족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는 밤새 구글 맵으로 정비소를 알아본다. 아침에 일어나, 최대한 빨리 정비소를 다녀오고자 한다. 그때, 그의 아버지가 정비소에 같이 가겠노라고 말한다. 그는 혼자 다녀올 생각이었으나, 아버지는 한사코 같이 가겠다고 말한다. 결국 아버지와 함께 가기로 하고, 숙소 주위의 한인 정비소를 알아본다.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당장 방문하면 정비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정비소 사장의 말에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조심스럽게 캠리를 몰아 정비소로 향하고, 어머니와 동생은 그동안 먼저 트램을 타고 도심을 둘러보겠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와 정비소로 향한다. 그는 속으로, '아버지가 호주까지 와서 차량 정비소를 가시는구나' 생각한다. 죄송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다. 그동안 잘 달리다가, 하필 가족들이 온 시기에 이렇게 말썽을 부리는 캠리가 야속하다. 반복되는 과열과 연기 경험으로 인해, 그는 조심스럽게 캠리를 운전한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운전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정비소로 가는 동안, 캠리는 또다시 과열되어 계기판의 온도계가 붉은 부분을 가리킨다. 캠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직전에 정비소에 도착한다.

 

 

 그와 아버지가 방문한 정비소는 한인 정비소다. 사장 겸 정비공은 한국인이다. 그가 도착했을 때, 이미 차량 한 대가 정비 중이다. 사장은 그와 아버지를 정비소 사무실의 소파로 안내하고는,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다. 사무실은 컨테이너 박스로, 바닥에는 강마루 문양의 장판이 깔려있다. 강마루 문양의 장판인데, 신발을 벗는 공간이 아니어서 장판에는 흙과 먼지 등이 많이 묻었다. 이 장판 위에 푹신한 소파와 무릎보다 낮은 높이의 유리 테이블이 있다. 한인 정비소여서 그런지 장판도, 소파도, 테이블도, 전체적인 느낌도 익숙하다. 그와 아버지는 익숙한 정수기를 이용해서 믹스 커피를 타 마신다. 정비소와 컨테이너 박스 사무실은 천장만 있는 외부나 다름없다. 전체적으로 서늘한 공간을 데우는 것은 조그만 온풍기밖에 없다. 그와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기다린다. 그는 기다리면서, 마찰열로 붉은 온풍기를 바라본다. 온풍기도 왠지 한국에서 많이 본 듯한 모양이다. 

 

 먼저 온 차량의 정비가 끝나고 정비공이 들어온다. 정비공은 한국인,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다. 인상이 괜찮고 친절하다. 인사를 나눈 뒤, 정비공에게 캠리의 증상을 설명한다. 그와 아버지의 진단은, 모종의 냉각수 문제로 인한 엔진 과열이다. 엔진이 과열됐으니 보넷트에서 연기가 날 것이라는 추측이다. 실제로 그의 캠리는 몇 달 전부터 냉각수 통을 매일 채워야 했다. 그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정비공이 캠리 보넷트를 열어보니, 역시나 냉각수 통이 비어있다. 정비공은 두 가지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1. 냉각수가 차량 바깥으로 새는 것이라면, 라디에이터 문제이다. 이 경우는 수리도 빠르고 가격도 싸다.

 2. 냉각수가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것이 아니라면, 내부 결함일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수리는 오래 걸리고 가격도 비싸다.

 

 정비공은 일단 냉각수가 어디서 새는 것인지를 테스트해보겠다고 한다. 그런데 테스트 가격이 100불이라고 한다. 그는 테스트하는 데만 100불이라는 말에, 어안이 벙벙하다. 달리 방도가 없다. 일단 문제의 원인을 알아내야 한다. 정비공은 냉각수를 채우고 시동을 걸어 테스트를 시작한다. 약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와 아버지는 다시 익숙한 컨테이너 박스 사무실에서 30분을 대기한다. 그는 원래 아버지와 친한 편이 아니다. 기다리는 동안, 어색하지만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의 아버지는, 정비공이 제시한 시나리오 중 라디에이터 문제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라디에이터는 냉각수 통에 이어진, 엔진 주위를 휘감는 관이다. 냉각수는 이 라디에이터 관을 통해 돌면서 엔진을 냉각시킨다. 라디에이터는 부품도 싸고 보넷트 앞쪽에 바로 노출되어 있어서, 수리가 편하고 인건비도 싸다. 그도 라디에이터 문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원체 아버지랑 어색한 사이이니, 대화는 매끄럽지 않고 끊긴다. 하지만 평상시, 특히 한국에 있었을 때보다는 훨씬 많은 대화가 오간다. 그는 아버지가 정비소에 같이 가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극구 말렸다. 호주까지 여행 와서 정비소를 가신다는 게 마음에 걸렸고,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단둘이 가는 것이 조금 어색하고 불편한 것도 없지 않았다. 차라리 혼자 가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낯선 정비소에 와서 이렇게 초조하게 앉아 기다리고 있자니, 같이 와준 아버지에게 의지가 된다. 그는 호주에서, 정비소까지 같이 와주신 아버지에게 깊은 감사를 느낀다. 

 

 

 30분 뒤, 정비공이 사무실로 들어온다. 정비공은 손에 캠리의 라디에이터 부품을 가져왔다. 정비공은 라디에이터 부품을 보여주며 손가락으로 누른다. 부품이 눌렸다가, 자체 스프링으로 인해 다시 펴진다. 정비공은, 캠리의 라디에이터 부품이 잘 작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뜻인데, 그는 정비공이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감을 잡지 못한다. 정비공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정비공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와 아버지의 기대를 무너뜨린다.

 

 라디에이터 부품이 잘 작동한다는 뜻은, 냉각수가 밖으로 새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라지는 냉각수는, 차량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유실되는 것이다. 내부라면 엔진 문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우려한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정비공은, 자세한 내용은 엔진을 뜯어봐야 알겠지만 엔진 실린더에 크랙(균열)이 생겨서, 그 균열로 냉각수가 새면서 증발하는 듯하다고 말한다. 정확한 진단을 원한다면, 또 수리를 원한다면 엔진을 뜯어야 한다. 그런데 엔진을 뜯는 행위 자체가 1000불이다. 엔진 부품 교체는 시간과 비용이 또 얼마가 더 들지 모른다. Rego를 빼면 그는 캠리를 2200불에 구매했다. 2200불짜리 캠리가 엔진 진단비만 1000불, 엔진 부품을 교체하면 아예 그가 샀던 차값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다. 문제의 원인은 대강 알았지만, 그뿐이다. 정비공이 언급하는 수리비를 듣자, 그는 차라리 캠리를 폐차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정비공에게, 수리를 하지 않을 시 캠리의 남은 수명을 묻는다. 정비공은 그의 질문에, 아주 모호하고 보수적으로 대답한다. 자신은 정비공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대해서는 무조건 안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꼭 대답해야 한다면, 차는 당장 멈출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너무 보수적이고 위험회피적인 대답이라 그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와 아버지는, 알겠다고 하고 테스트에 대한 100불만 지불한다. 

 

 그와 아버지가 숙소로 돌아오기까지, 캠리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연기는 피어올랐다. 그는 캠리를 몰고 숙소로 향하면서, 허탈감이 밀려든다. 캠리의 문제는, 가족 여행은 물론 향후 그의 워킹홀리데이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그와 아버지는 돌아오는 동안, 캠리에 대해 계속 이야기한다. 라디에이터와 냉각수, 엔진 등 정비공이 한 이야기들을 이전에 일어난 상황들에 맞춰본다. 

 

 

 캠리는 캠리고, 가족 여행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이미 피 같은 가족여행 시간의 일부가 정비소에서 흘러갔다. 그는 우선 가족들과의 여행을 즐길 방법을 찾는다. 캠리는 이후 가족 여행 기간 내내 숙소 아래 지하주차장에서 휴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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