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가족들은 전날 장을 볼 때, Rump(우둔살) 스테이크를 몇 덩이 구매했다. 호주는 소고기와 스테이크가 유명하니, 숙소에서 구워 먹을 생각이다.
한인 식료품점에서 김치도 구매했으니, 준비가 끝났다. 그와 어머니는 저녁으로, 숙소에서 스테이크를 구울 준비를 한다. 숙소 건물에 바베큐 장소가 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숙소 건물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건물 뒷편으로 나가니, 바베큐를 할 수 있는 그릴과 테이블 등이 마련되어 있다. 호주에는 바베큐 기계가 흔하다. 공원 등지에서도 공용 바베큐 기계를 자주 볼 수 있다.
건물 뒤편의 바베큐장에서 스테이크를 굽는 것은 재밌는 경험이지만, 이 바베큐장에는 조명이 없다. 해가 저물어서 주변이 어두컴컴하다. 핸드폰 라이트를 켜놓고서 고기를 구워야 할 판이다. 아쉽지만, 너무 어두우니 바베큐장은 포기하고 숙소 안에서 프라이팬에 굽기로 한다. 그의 어머니는, 호주 고기라고 다를 것 있겠느냐고 말한다.
다시 숙소에 들어와,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아버지와 동생은 짐 정리를 하느라 바쁘고, 그와 어머니는 스테이크를 굽고 식사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그는 비스트로에서 했던 것처럼, 고기에 기름을 바른 뒤 소금과 후추를 뿌린다. 그리고는 프라이팬에 그대로 굽는다. 숙소 주방에는 가스레인지가 있어서, 익숙한 가스불을 사용할 수 있다. 스테이크는 미디움과 웰던 사이인 '미디움 웰던'으로 굽는다. 스테이크는 원래 미디움 이하로 구워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의 가족들은 핏물이 많은 고기를 즐기지 않는다. 그도 미디움 스테이크를 먹으면 배가 아플 때가 있다.
구워진 고기를 한 점 먹어보니, 맛이 보통이다. 그는 비스트로에서의 경험을 살려 최상의 맛을 내보려 했는데, 그냥 고기 맛이다. 그의 어머니도 먹어보더니, 보통 고기 맛이라고 한다. 그는 속으로, 고기를 미리 양념에 재워서 냉장고에 넣어놨어야 했다며 후회한다. 비스트로에서 고기를 굽긴 했지만, 스테이크는 대부분 레너드가 구웠고 그는 튀김과 파미를 주로 했다. 그는 가족들을 위한 스테이크를 맛있게 굽지 못해 불만족스럽다. 버터라도 있으면 버터를 녹여 스테이크에 끼얹으며 풍미를 살렸겠지만, 그는 이런 고급 조리법을 알지 못한다. 어머니는 이 정도면 맛있다고 말한다.
식사 준비를 하다가, 그는 식재료를 건네주는 어머니에게 무심코 'Thank you' 라고 말하고서는 큰 혼란에 빠진다. 그는 영어가, Please / sir 등의 존칭을 제외하고는 경어가 배제된 언어라고 인식했다. 어머니에게 Thank you라고 말한 순간, 자신이 어머니에게 예의 없이 반말을 한 느낌이다. 그가 호주에 있는 동안 썼던 Thank you를 비롯한 모든 영어는,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상대방의 동등함을 전제하고 썼던 표현이다. 그는 자신이 영어를 대한 태도, 그리고 그렇게 사용했던 영어가 사고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저녁 식사 준비가 끝나고, 가족들이 모두 테이블에 앉는다. 밥, 김치 등 밥상은 한국식인데, 스테이크만 유일한 호주식이다. 그와 가족들은 스테이크를 썰어서, 밥과 김치와 함께 먹는다. 고기 맛이 특출나지는 않지만, 가족들과 함께 먹으니 맛있다. 갑자기 어머니가, 냉장고에 와인이 있다고 말한다. 그와 가족들이 입주하기 전부터,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배려인지 냉장고 안에는 와인이 한 병 들어 있었다. 그는 이 와인을 마셔도 되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아서,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냉장고 한 구석의 방향제, 장식품처럼 여기고 잊어버렸다. 어머니는 스테이크도 있으니, 와인을 한 잔씩 하자고 말한다. 그가 어떻게 할지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 어머니는 와인잔을 준비한다.
다른 가족들은 와인에 크게 관심이 없는 듯하다. 다들 식사하고 있는 사이, 그의 어머니는 와인 준비에 분주하다. 그런데, 갑자기 쨍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의 어머니가 와인잔을 닦으려 손을 집어넣었는데, 와인잔이 너무 얇아서 금이 간 것이다. 어머니는 금이 간 유리에 손을 약간 베었다. 그는 깜짝 놀라며, 자신이 넋 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머니가 와인잔 등을 준비하는 것을 도와드리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면서 넋 놓고 앉아만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상처는 얕고 작다. 가족들은 어디선가 반창고를 가져와서 어머니 손에 붙인다. 그는 어머니에게 손의 상처도 나아야 하니, 여행 기간 동안 설거지를 절대 하지 마시라고 말한다. 이후 가족여행 기간 동안 숙소에서의 설거지는 모두 그와 동생이 담당한다.
한바탕 소란이 있은 후, 모두들 와인잔을 손에 든다. 와인의 이름은 모르겠고, 붉은 와인이다.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다들 건배를 한다. 스테이크에서는 일반적인 고기 맛이 나고, 와인은 달고 시고 떨떠름하지만, 어느 때보다 단란하고 근사한 저녁 식사다.
식사가 끝난 뒤, 그의 이발이 시작된다. 동생은 공항에서부터, 그의 머리가 너무 덥수룩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바리깡을 가지고 있으니, 동생에게 이발을 부탁한다. 하지만 동생은 다른 사람의 머리를 깎아본 적이 없다. 손놀림이 서투르자, 그는 아버지에게 부탁한다. 아버지의 바리깡 놀림은, 동생보다는 낫다. 하지만 아버지도 다른 사람의 머리를 깎아본 적은 없는 듯하다. 차라리 그가 제일 낫다. 그는 군대에서, 이발병 몰래 동기의 머리를 밀어준 적이 있다.
이발 초보인 세 사람이 모여서 머리를 깎으니, 그의 머리가 점점 산으로 간다. 그는 깔끔한 투블럭 스타일을 원한다. 윗머리는 길게 남기고, 뒤와 옆은 바리깡으로 짧게 밀어버리는 머리다. 쉬운 머리지만, 문제는 경계부다. 짧은 머리와, 긴 윗머리의 경계가 어색하지 않도록 손목 스냅 등을 이용해서 다듬어줘야 한다. 그와 가족들은, 경계부를 다듬다가 망쳐서 아예 밀어 올리고, 올라간 경계부를 다듬다가 또 망쳐서 밀어버리는 것을 반복한다. 몇 차례 반복되다가, 간신히 마무리가 되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머리 스타일이 어떤지, 가족들이 오고 나서 처음 봤다. 가족들이 찍어준 자신의 사진을 보며, 그는 자신감이 급격히 낮아진다. 그는 호주에서 자신이 꾸미진 않더라도, 나름 멋있고 봐줄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찍어준 사진을 통해 그는 자신의 모습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봐버리고 만다. 그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화장실에서 머리를 깎고, 머리카락을 샤워실 배수구에 버린다. 머리카락들이 엉키면서, 배수구가 막힌다. 동생이 샤워를 끝내고, 물이 안 내려간다고 말한다. 그는 샤워를 하면서, 배수구를 발로 이리저리 문지른다. 발로 해결이 되지 않아, 아예 배수구 망과 부품들을 분해해버리자 물이 시원하게 내려간다. 그는 자신이 해결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다.
가족들은, 머리를 말려야 하는데 드라이기가 없다고 말한다. 에어비앤비 안내에는 드라이기가 구비되어 있다고 쓰여 있다. 그도 한참을 찾다가, 드라이기가 보이지 않아 호스트에게 메세지를 날린다. 그의 메세지에 호스트는 드라이기가 구비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가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려는 찰나, 아버지가 화장실 세면대 아래에 숨겨져 있던 드라이기를 발견한다. 그는 호스트에게, 찾았다고 메세지를 보낸다.
와인잔이 깨져 어머니가 손을 다치고, 머리를 깎은 뒤 배수구가 막히고, 드라이기가 보이지 않아 한참 동안 찾는 등 조용한 날이 없다. 그는 숙소에서 가족들의 민원을 해결하느라 분주하고, 가족들도 각기 무언가를 하느라 시끌벅적하다. 그는 이 시끌벅적함이 좋다. 워킹홀리데이 기간 동안 혼자 지내면서, 심심함을 넘어 외로움까지 느끼던 그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끌벅적함 속에서 그는 웃는다.
'회상 > 호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4 - Eureka Tower (0) | 2021.09.15 |
---|---|
163 - 보타닉 가든, 야라강 (0) | 2021.09.15 |
161 - Hosier Lane, 시티 (0) | 2021.09.15 |
160 - 트램,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 (0) | 2021.09.15 |
159 - 정비소 (0) | 2021.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