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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호주

170 - Apollo bay, 저녁식사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문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서 숙소까지는 거리가 꽤 멀다. 중간에 식사를 할 장소도 마땅치 않다. 그와 가족들은 아예,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시작 지점이라 할 수 있는 아폴로 베이에서 저녁을 먹고 출발하기로 한다. 만일 그레이트 오션 로드 일정을 이틀로 잡는다면, 숙박을 고려했던 장소가 바로 아폴로 베이였다. 숙박을 잡는 일정은 무산되었으니, 그는 아쉽지만 아폴로 베이에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해가 저물기가 무섭게, 호주의 카페와 상점들은 문을 닫는다. 그와 가족들이 12 사도에서 출발했을 때만 해도 노을이 지는 무렵이었으나, 아폴로 베이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완전히 져서 깜깜하다. 아폴로 베이의 상점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와 가족들은 아폴로 베이 시내에서, 멀리 불이 켜 있는 건물로 향한다. 호주에서 해가 진 후에도 불을 킨 곳은 쇼핑센터 아니면 식당이다. 그의 예상대로, 불이 켜진 건물은 저녁에도 운영하는 식당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푸드 코트와 식당이 혼합된 형태다. 상점이 두세 개 정도 나란히 있는데, 주문을 받는 카운터는 하나다. 직원들은 서로 친해 보인다. 몇몇은 생선을 손질하는지, 코팅되어 번쩍이는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있고, 몇몇은 서빙과 조리를 하는지 줄무늬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그와 가족들은 메뉴판 앞에서 음식을 고르고 있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는 직원은, 안경을 끼고 코가 크며 머리가 갈색인 중년의 백인 아주머니다. 그가 몇 마디 나눠보니, 쾌활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성격이다. 그는 직원에게 몇 가지를 물어본 뒤, 피쉬 앤 칩스 / 치킨 / 스테이크 샌드위치 / 커피 등을 주문한다. 스테이크 샌드위치와 치킨은 해당 직원의 추천으로 결정한 메뉴다. 

 

 고급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호주 로컬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음식도 맛과 퀄리티가 괜찮다. 피쉬 앤 칩스의 튀김이 바삭하며 오징어 튀김도 서비스로 들어 있다. 치킨은 데이빗과 먹었던, 한국의 통닭과 비슷한 치킨이다. 샌드위치는 그가 비스트로에서 만들었던 스테이크 샌드위치와 비슷하다. 대부분의 상점이 닫은 상태여서, 불빛만 따라 들어온 식당이라 걱정했지만 다행히 맛이 괜찮다. 가족들도 맛있게 식사한다.

 

 

 식사가 끝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숙소로 출발한다. 아폴로 베이에서 숙소까지는 약 3시간 거리다. 호주는 도심 주변을 제외하면 가로등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구간이 꽤 있다. 그는 상향 라이트를 켜고 운전한다. 가끔씩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상향 라이트를 껐다가 차가 지나가면 다시 킨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여정에, 부모님은 피곤해 보인다. 동생이 조수석에 타서 음악을 튼다. 어머니, 동생과 이야기를 하면서 운전한다. 아버지는 피곤하셨는지 잠을 잔다.

 

 어머니, 동생과 호주 여행 이야기를 한다. 여기저기 가본 곳들, 아까의 그레이트 오션 로드 등 이야기다. 그가 어머니에게 여행이 즐겁냐고 물으니, 너무 즐겁다고 답한다. 어머니의 대답에 그는 속으로 기쁘면서도 안도가 된다. 동생은 옆에서 스피커로 이런저런 한국 음악을 틀고 있다.

 

 고속도로이고, 차가 거의 없어서 그는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린다. 가끔씩 커다란 로터리가 나오고, 반대편에서 차량이 오면 상향 라이트를 껐다가 다시 킨다. 도심에 가까워질 무렵, 그의 아버지가 깬다. 아버지는 속도계를 보더니, 아들이 시속 100km로 운전하는 동안 자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에서는 장롱 면허 상태였기 때문에, 항상 아버지가 운전했었다. 호주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가 이 정도로 운전을 숙달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여행 초기에는 아버지도 불안해서였는지 그를 위해서였는지,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운전을 했다. 하지만 호주의 커다란 로터리, 정반대의 운전석과 차로는 한국에서의 운전이 익숙한 아버지에게는 꽤나 피로한 일이었을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그가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는 그의 운전 실력을 신뢰하게 된 듯하다. 그는 한국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철부지였지만, 호주에서는 작게나마 아들 노릇을 하는 것 같아 뿌듯하다.

 

 

 도심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공사 중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심에 진입하는 커다란 육교에서 공사를 진행 중이다. 도로 차선을 막고, 차들을 시속 40km로 통제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시속 80km 이상으로 쌩쌩 달릴 구간을 40km로 달리니, 차량들이 거북이처럼 느껴진다. 그는 40km로 천천히 운전하면서, 처음으로 다리 위에서 멜버른 시내의 전경을 본다. 밤이긴 하지만, 멜버른 도심은 불빛이 많다. 그는 멜버른이 넓게 퍼진 도시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를 제대로 목격한 것은 처음이다. 느릿느릿 서행하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건물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육교 자체도 길다. 너무 길어서, 육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외곽에서 뻥 뚫린 도로와 초원만 보며 통근하던 그이기 때문에, 멜버른의 기나긴 육교와 도시가 더 커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한국의 서울과 비교했을 때도, 이 오르락 내리락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방향까지 바뀌는 육교 정도의 길이는 본 적이 없다. 시속 40km로 기나긴 육교를 간신히 빠져나와 속도를 높인다. 하지만 멜버른을 격자무늬로 나누는 도로 곳곳에서도 여전히 야간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는 왜 이렇게 공사를 많이 하냐고 궁시렁거리며 우회해서 도시를 빠져나온다. 

 

 

 마침내 그와 가족들이 숙소에 도착한다. 다들 씻고, 잠들 준비를 하는데 어머니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한다. 그와 동생이 바깥으로 나가, 세븐일레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온다. 바 모양의 아이스크림이다. 그도 호주에서 아이스크림을 산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가 원했던 아이스크림은 이런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투게더나 베스킨라빈스 같이 숟가락으로 떠먹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아이스크림 시식이 있은 뒤, 다들 잠자리에 든다. 그는 누워서도 눈이 말똥말똥하다. 가장 굵직한 일정인 필립 아일랜드와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무사히 마무리했다. 그와 가족들은 멜버른에서 가장 유명한 두 관광지를 성공적으로 다녀왔다. 이제 차를 쓸 일정은 없다. 이틀간 함께한 빨간 홀덴 렌트카는 다음날 아침 곧바로 반납할 예정이다. 그는 가족 여행이 계획대로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기뻐서 밤잠을 설칠 정도다. 하지만 동시에, 끝을 생각할 때가 오고 있다. 호주 멜버른에서의 가족 여행은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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