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날 아침이 밝았다. 빨간 홀덴 렌트카를 반납해야 한다. 혹시 몰라 오후 2시 정도까지 여유 있게 빌렸지만, 그는 어서 빨리 렌트카를 반납해버리고 싶다. 그는 렌트카를 빌리는 순간부터, 커다란 골칫거리가 생긴 것처럼 신경이 쓰였다. 렌트카는 그의 캠리와는 달리 빌린 차량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차가 상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그는 렌트카를 빌린 것이, 남의 돈을 빌린 것 같은 기분이다. 어서 반납해버리고 싶고 불안하다. 그는 2박 3일 동안 렌트카를 운전하는 동안,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캠리를 운전할 때보다 더 피곤함을 느낀다.
그의 아버지와 함께, 아침부터 차를 반납하러 간다. 시간이 조금 남아있긴 하지만 어차피 차를 쓸 일정은 끝났다. 처음 차를 빌렸던 숙소 주변의 렌트카 지점으로 차를 몰고 가서 주차한다. 주차를 하고 차를 반납하자니 시원섭섭하다. 남의 차이고 골칫거리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와 가족들의 중요한 일정들을 함께한 자동차다. 필립 아이랜드와 그레이트 오션 로드, 왕복 거리만 해도 거의 10시간이다. 그는 빨간 홀덴 렌트카를 눈에 한 번 담고 반납한다.
여섯째 날은 그가 가족들 몰래 이벤트를 준비한 날이다. 이벤트는 바로 트램 레스토랑 식사다. 트램이 많은 멜버른에는, 내부를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트램 레스토랑이 있다. 트램 레스토랑은 코스 요리를 대접하는데, 식사를 하는 동안 정해진 코스를 계속해서 돈다. 멜버른 도심을 구경하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출발지와 도착지는 같다. 재밌는 것은, 여러 사이트를 검색하며 혹시나 할인이 있나 찾아보니 네이버가 할인 티켓을 제공했던 점이다. 트램 레스토랑 홈페이지보다 약 5불 정도 싼 가격이다. 5불 할인이면 그를 움직이게 만들기 충분하다. 그가 네이버를 통해 전화를 거니, 한국인이 받는다. 그는 트램 레스토랑 식사를, 여행 막바지인 여섯째 날 점심 식사로 예약한다. 원활한 실행을 위해, 그는 동생에게만 이 사실을 살짝 알렸다.
트램 레스토랑은 정해진 시간에 정류장에서 탑승해야 한다. 부모님께는 비밀로 했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탑승지로 가야 한다. 그가 탑승지 주변에 볼 것이 있나 찾아보니, Saint Kilda(세인트 킬다)가 있다. Saint Kilda는 그에게 썩 인상이 좋은 지역은 아니다. 그가 멜버른에 처음 도착했을 때 묵었던, 밤낮없이 대마초 연기가 자욱했던 첫 번째 쉐어하우스가 Saint kilda에 위치한다. 첫인상은 첫인상일 뿐, 세인트 킬다는 꽤 유명한 관광지다.
세인트 킬다는 멜버른 근교 지역으로 바다를 끼고 있다.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위치에, 세인트 킬다의 관광 명소인 Luna Park(루나 파크)가 있다. 그와 가족들은 바다를 보며 걷는다. 멜버른의 날씨는 역시 변덕스럽다. 안개가 꼈다가 해가 나고, 그러다가도 부슬비가 내린다. 가족들도 어느새 이런 변덕스러운 날씨에 적응한다. Saint Kilda의 모래사장을 쭈욱 걷는다. 오전인데도 바람이 강하다. 바닷가를 따라 걷다 보니, 독보적일 만큼 유난히 눈에 띄는 장소가 보인다. 루나 파크다.
루나 파크는 조그만 놀이 공원이다. 놀이 공원이라기보다는, 놀이동산이다. 여러 놀이 기구들이 있긴 하지만 커다란 놀이 기구는 없다. 조그만 바이킹, 빙글빙글 도는 그네, 번지 드롭 등 아기자기한 놀이 기구 위주이며 전체 부지도 작은 편이다. 루나 파크의 메인 타겟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인 듯하다. 어른들도 탑승할 수 있는 기구들이 있긴 하지만, 아이들이 더 즐거워 보인다. 그와 가족들은 루나 파크에도 들어가 보고자 한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놀이 기구를 탈 생각은 없다. 자유 이용권이 아닌, 그냥 입장권만을 구매한다.
루나 파크는 세인트 킬다의 얼굴이다. 비유적인 표현의 얼굴이기도 하고, 글자 그대로 얼굴이기도 하다. 루나 파크는 담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메인 출입구로 입장해야 하는데, 이 메인 출입구가 얼굴 모양이다. 커다란 광대 얼굴로, 광대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이용객들은 광대의 입을 통해 루나 파크로 들어가야 한다. 5m는 되는 듯한 높이의 거대한 광대 얼굴, 얼굴 중에서도 비정상적으로 쩍 벌어져 있는 입은 어찌 보면 섬뜩하기도 하다. 그는 섬뜩하다고 느꼈지만, 루나 파크의 이 얼굴은 인기가 많다. 다른 이들은 전혀 섬뜩함을 느끼지 않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담백하고 조금은 밋밋한 세인트 킬다의 풍경 속에, 생뚱맞을 정도로 알록달록하고 과장된 크기의 얼굴은 섬뜩하긴 해도 사진을 남길 만한 장소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는 루나 파크의 광대 얼굴 앞에서 새똥을 맞는다.
그와 가족들은 입장만 가능한 티켓을 구매해서 안으로 들어간다. 광대의 입 속으로 들어가니, 재밌고 아기자기한 루나 파크가 펼쳐진다. 부슬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놀이 기구를 타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 그와 가족들은 놀이 기구를 탈 생각은 없지만,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이리저리 루나 파크를 구경한다. 규모는 작아도 놀이 공원이니, 핫도그 등 간식을 파는 곳도 있다. 동생은 루나 파크 입구에서부터 사진을 많이 찍는다. 광대 얼굴 앞에서 독사진을 찍어달라고도 한다.
루나 파크를 전체적으로 돌아보고 나온다. 어느새 시간은 점심시간을 향해 가고 있다. 그의 비밀 일정으로 가족들을 안내해야 한다. 그와 동생은, 부모님을 데리고 트램 레스토랑 탑승지로 슬금슬금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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