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레 워른의 집주인에게 이사 갈 것이라 말하고, 향후 여행 일정도 이야기한다. 처음으로 집주인과 5분 이상 이야기를 한다. 집주인은 그를 응원해주며, 그동안 즐거웠다고 말한다. 집주인은 그가 가족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날 따뜻한 쪽지를 써준 사람이다. 그는 무엇이라도 보답을 하고 싶었지만, 짐도 챙겨야 하고 이사도 해야해서 정신이 없다. 결국 별다른 보답은 하지 못한다. 그저 방을 깨끗이 청소한다. 집주인이 다른 세입자를 들이기 위해 굳이 청소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가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더 깨끗한 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방을 청소하고, 짐을 챙겨서 나오니 어느새 해가 떨어졌다. 그는 도심의 새로운 숙소까지 어떻게 갈까 하다가, 기차를 선택한다. 버스는 계단이 있어서 짐을 들고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그는 나레 워른 역으로 가서, 카드를 찍고 기차를 기다린다.
정신없이 움직이던 중, 기차를 기다리며 여유가 생긴다. 기차를 기다리는 그를 향해 비가 내린다. 항상 그랬듯이,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아니라 부슬부슬 떨어지는 촉촉한 비다. 그는 후드티의 검은 모자를 뒤집어쓰고 기차를 기다린다. 시원한 부슬비가 계속 내려서, 이내 기차역 전체를 촉촉하게 적신다.
해가 떨어져 깜깜한 밤, 외곽 지역이라 기차역만 밝다. 비에 젖은 역의 플랫폼이 불빛에 반사되어 더 매끄럽고 반짝인다. 이를 보며 그는 갑자기 감상에 젖는다. 캠리를 주차할 수 있는, 저렴한 주거지를 찾고 찾다가 선택한 주거지가 나레 워른이다. 처음에는 일자리만 안정되면 당장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에 맞는 주거지를 찾지 못해 눌러앉은 것이 어느덧 4개월이 넘었다. 인적이 드물고 할 것도 없는 심심한 외곽 동네였지만, 오래 머물다 보니 정이 들었다. 출퇴근하면서 이곳의 새벽과 노을, 어둠을 매일같이 봤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숙소 주변 눈에 익은 풍경이 보이면 마음이 놓이곤 했다.
가족여행이 끝난 뒤, 뒤숭숭한 마음을 진정시켰던 곳도 나레 워른이다. 그는 한 달 뒤 캠핑카를 타고 멜버른을 떠날 것이다. 이번에 떠나면, 그의 워킹 비자가 끝날 때까지 멜버른에 다시 돌아올 일은 없다. 그는 어느새 정이 든 나레 워른의 마지막 모습을 찍어둬야겠다고 생각한다. 핸드폰을 꺼내 들고, 비에 젖어 촉촉한 나레 워른 기차역을 찍는다.
기차역을 찍고, 또 찍을 것이 없나 찾는다. 그의 눈에, 자신의 짐이 들어온다. 그의 짐들은 나레 워른 기차역 벤치에 널브러져 있다. 조그만 캐리어 하나, 그의 분신인 배낭, 조그마한 쎅, 기름과 소금 등을 넣어둔 장바구니다. 배낭 위에는 담요를 말아 끼웠고, 아래에는 빨래가 담긴 주머니를 말아 끼웠다. 부피는 작지만 압축이 되어있어 무게가 꽤 나간다. 그는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무거운 짐들을 벤치에 던지며 해방감을 느꼈다.
그는 이미 이사를 수없이 많이 했다. 그와 함께한 배낭과 캐리어 등도 이사에 이골이 난 듯이 위풍당당한 모습이다. 그는 자신의 짐들에서 풍기는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포착한다. 왠지 이를 꼭 찍어놔야겠다는 느낌이 든다. 사진을 찍어야 하니, 널브러져 있던 짐들을 한 곳에 모아 세팅하고 각도를 잡아본다. 배낭과 캐리어의 위치를 바꿔보는 등 여러 시도를 하지만, 맨 처음 놓았던 각도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는 자신의 짐들을 보며,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뿌듯하다. 도심으로 향하는 기차는 약 15분 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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